2024년 5월 15일(수)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한국도 비영리에 대한 신뢰자산 쌓아야

지난 5일 ‘국제 나눔문화 선진화 콘퍼런스’에 참석했다가, 예정에 없이 티모시 제이 매클리몬 아멕스재단 이사장, 도요타재단 디렉터 등과 함께 점심을 먹게 됐습니다. 이야기 주제가 기업과 비영리의 파트너십으로 흘러갔습니다.

도요타재단은 1974년에 만들어졌으니, 생긴 지 올해가 꼭 40년이 됩니다. 재단은 시민사회 및 NPO(비영리단체)를 지원하는 다양한 연구 및 공모·배분 사업을 하는데, 200억원이 넘는 돈을 씁니다. 아멕스재단은 NPO의 역량 강화를 위한 리더십 프로그램에 지금까지 약 326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한국의 젊은 층은 NPO분야로 진출하려는 관심이 높은가” “한국에선 대학이나 대학원에 NPO 리더십 과정을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한국의 기업과 NPO의 파트너십 관계는 어떤가” …. 어느 질문 하나에도 속 시원하고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갈 길은 멀지만 그렇기에 더나은미래 같은 매체의 존재 이유가 있다”며 농담 섞인 진담으로 얼버무렸습니다.

다만 두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요타재단은 만들어지고 나서 10년 동안 무조건 직접 사업을 벌였지만, 이후부터는 NPO를 간접 지원하는 형태로 방향을 틀었다고 합니다. 아멕스재단 또한 NPO의 역량이 높아지고 NPO에 좋은 인재가 많이 뿌리 내려야만 실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닫고 리더십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몇 달 전 한 대기업 CSR 담당 임원이 “함께 사업을 하는 비영리단체의 역량이 부족해서, 우리 직원들의 글로벌 사회공헌 사업 투입량이 너무 많아 고민”이라며 “비영리단체는 왜 이렇게 자주 사람이 바뀌는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비영리단체의 사정이 왜 열악한지 사정을 설명하자, 그 임원은 “몰랐다”면서 “우리 사업을 담당하는 비영리단체 직원만이라도 제대로 대접을 해줘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는 NPO와 파트너십을 할 때, 행정 운영비의 제한이 어느 정도인지 룰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기업이나 정부가 공모 사업을 할 때 비영리단체의 행정 운영비를 15% 이상 넘기면 안 되는 게 불문율이고, 실제로는 10% 이내로 제한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매클리몬 이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럼 규모가 작은 비영리단체는 실제로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텐데, 아예 지원받을 가능성이 없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룰 때문에 비영리단체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며 “비영리에 대한 사회적 신뢰 자산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습니다.

미국이나 영국도 처음부터 잘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기업·정부와 비영리의 파트너십이 늘면서, 자연스레 이 분야의 생태계를 고민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다행히 우리에겐 ‘좋은 것이라면 금방 따라 하는 DNA’가 있으니, 머지않아 선진국 못지않은 신뢰 자산이 쌓이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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