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反기업 정서 깨는 가장 큰 힘, 나눔

“이제 시작인데요, 뭐.”

지난 7일 아산나눔재단 창립 3주년 기념식장에서 정몽준 명예이사장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산나눔재단은 아산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정몽준 전 의원이 2000억원을 쾌척하고 범현대가(家) 기업들이 총 600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재단입니다. 이날 행사에는 정몽준 명예이사장 부부 외에도 정몽진 KCC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얼마 전 딸이 사관후보생으로 해군사관학교에 입영해 화제가 된 SK 최태원 회장의 부인 노소영 관장(아트센터 나비)도 참석해 축하해줬습니다. 축사만 하고 VIP들이 우르르 빠지는 행사만 봐오다 1시간 30분 가까이 이어진 행사에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고 따뜻한 박수와 웃음이 이어지는 걸 지켜본 건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몇 차례 실패와 턱걸이 끝에 ‘정주영 창업경진대회’를 통해 입상한 예비 청년 창업가 “너희가 복지를 알아”라며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시작했다 비영리에도 전략과 경영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사회복지사, 중국 기업 글로벌 인턴을 하는 동안 북한의 아버지와 전화 통화 끝에 “자랑스럽다”는 얘기를 듣고 울먹인 탈북 대학생 스토리까지…. ‘청년 창업 활성화’와 ‘비영리 인재 육성 사업’이라는 두 축을 대표하는 수혜자들의 생생한 소감에 참석자들은 때로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 목이 메었습니다. 정진홍 이사장은 마지막 인사에서 “5년 후 신문 기사에 ‘아산나눔재단이 1조원을 출연한 재단이 됐다’는 걸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돌아오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기업 정서를 누그러뜨리는 확실한 방법은 ‘나눔’이라는 것이고, 이제 곧 국내에도 1조원대 재단이 출연할지 모른다는 기대였습니다.

삼성꿈장학재단(8202억원), 현대차정몽구재단(8500억원), 관정이종환교육재단(8000억원 남짓) 등 국내에도 출연금 5000억원이 넘는 재단이 몇몇 있지만, 아직 1조원대 재단은 없습니다.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은 42조원이 넘고, 포드재단은 12조원, 록펠러재단은 3조4000억원 규모입니다. 정몽준 명예이사장은 “남을 도와주기 위해선 실력이 있어야 한다”며 “미국엔 ‘록펠러’ 이름을 가진 재단이 수십 개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내엔 ‘아산’이 들어간 3개의 재단이 있는데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아산정책연구원, 아산나눔재단이 선전해 성공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변칙 상속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던 부정적인 옛 과거를 씻고, ‘부자들의 기부와 자선 재단이 대한민국을 바꾼다’는 기획 기사를 싣게 될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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