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미리 보는 사회문제… 2015년 新사각지대를 살피다]② Ⅱ 청소년 – “게임 캐릭터 레벨업 해라” 이것도 폭력?

미리 보는 사회문제… 2015년 新사각지대를 살피다
사이버 공간으로 확대된 학교 폭력 무대
채팅방에서 집단 욕설·게임 아이템 셔틀 늘어… 맞춤형 예방·체험형 공감 교육 확대돼야

“우리 반에서 A가 제일 꼴도 보기 싫어.” “맞아. 얼굴도 못생긴 게 비굴하기까지 해.” “ㅋㅋㅋ” “그렇게 당하고도 계속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가 신기하지 않아?” “진짜 X같은 게 쳐다보지나 말지.”

얼마 전,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초대받은 A군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채팅방엔 A군을 향한 험담으로 가득 차 있었다. A군의 얼굴에 외계인 사진을 합성해 올리면서, 서로 웃고 떠들기도 했다. 당황한 A군이 채팅방에서 ‘나가기’를 눌렀지만 소용없었다. 반 친구들이 끊임없이 채팅방으로 다시 초대했기 때문. 참다 못해 카카오톡을 탈퇴했지만, “다시 어플을 깔아라”라는 이들의 엄포로 A군은 지금도 집단 욕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의 ‘안전’이 사이버 공간에서 위협받고 있다. 스마트폰 3500만 시대. 초·중·고등학생의 77.1%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 온라인·모바일 접근성이 높은 만큼 사이버 폭력에 노출될 확률도 크다. 전문가들은 “최근 학교 폭력의 무대가 급격히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학교 폭력을 경험한 학생의 42.1%가 자살을 생각하는 나라. 사회 이슈가 된 학교 폭력을 주제로 청소년들이 연극을 하는 모습.
학교 폭력을 경험한 학생의 42.1%가 자살을 생각하는 나라. 사회 이슈가 된 학교 폭력을 주제로 청소년들이 연극을 하는 모습.

◇청소년 신(新)사회문제, 이제는 사이버 폭력이다

지난해 청소년폭력예방기관인 ‘푸른나무 청예단(이하 청예단)’이 전국 청소년 61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교 폭력을 경험한 학생 중 42.1%가 ‘자살을 생각했다’고 답했다. 학교 폭력의 장소 및 유형도 달라지고 있다. ‘학교 교실’에서 폭력을 당했다는 학생이 2012년 50%에서 2013년 34.6%로 무려 15.4%가 줄어든 반면, ‘사이버 폭력을 당했다’는 학생이 4.5%에서 14.2%로 3배 이상 급증했다. 임종화 청예단 교육센터 소장은 “학교 폭력은 일대일, 많아야 4대1로 발생하지만, 사이버 폭력은 반 전체가 한 명을 대상으로 하는 등 ‘일대다(多)’가 대부분이라 피해자와 가해자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면서 “정부나 기업 사회공헌이 교내 폭력 신고·상담·예방 교육에 집중되고 있는 반면, 최근 현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사이버 폭력’에 대한 관심은 적다”고 설명했다.

푸른나무청예단_그래픽_청소년_사이버폭력_2014

◇현금 대신 게임 아이템 ‘삥 뜯는’ 아이들

“수업이 끝나면 온종일 게임만 해야 해요. 같은 반 ‘일진’이 게임 캐릭터를 ‘레벨업 시켜놓으라’고 했거든요. 정해진 시간까지, 원하는 만큼 레벨을 올리지 못하면 때려요. 정기적으로 비싼 게임 아이템도 바쳐야 하고요.”

얼마 전 청예단에 접수된 김민수(14·가명)군의 상담 사례다. ‘빵 셔틀(매점에서 빵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강요하는 것)’은 이제 옛말이다. 만만한 친구를 불러 게임을 시키고, 현금 대신 게임 아이템을 상납받는 청소년들도 늘고 있다. 일명 ‘게임 폭력’이다. 실제로 지난해 청예단 조사 결과, 사이버 폭력을 경험한 학생의 10명 중 1명꼴로 ‘게임 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때리지 않으면 학교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현장에선 게임 폭력 역시 심각한 범죄 유형임을 교육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임수정 청소년 미디어중독예방센터 팀장은 “우리 세대엔 인터넷을 사용하기에 바빠 온라인 매체를 어떻게 사용해야 좋은지 깊이 고민하지 못했다”면서 “어릴 때부터 올바른 미디어, 사이버 활용 교육이 이뤄져야 장기적으로 청소년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관자를 적극적 예방자로… 사이버 공감 교육 필요해

문제는 ‘사이버 폭력’에 대한 관심과 교육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학교 폭력을 목격한 청소년들의 절반 이상이 모르는 척하고, ‘관심이 없어서(31.2%)’ ‘도와줘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25.4%)’란 이유로 폭력을 방관하고 있다(2013 전국 학교폭력실태 보고서, 청예단). 의지가 있으나 두려움 때문에 혹은 방법을 몰라 선뜻 돕지 못하고 있는 것. 이에 전문가들은 “같은 반 친구의 학교 폭력을 방관하던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맞춤형 예방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최근 1년간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받아봤다’고 답한 청소년들은 91.9%에 달했지만, 이 중 해당 교육이 ‘도움이 됐다’고 한 청소년은 28.8%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임종화 청예단 교육센터 소장은 “캐나다의 한 학생이 학교 폭력을 함께 목격한 친구들에게 핑크색 티셔츠를 나눠주면서 ‘학교 폭력을 못 본 척하지 말자’는 서명을 벌였는데, 반 전체가 핑크색 티셔츠를 입었고, 캐나다의 한 주에서 정기적으로 ‘핑크셔츠데이’를 진행할 정도로 학교 폭력 발생률이 감소했다”면서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학교 폭력 예방자가 될 수 있도록 문화 예술, 스포츠 등 ‘체험형’ 공감 교육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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