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민간단체 보조금 향한 왜곡정보 바로잡아야”

尹정부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대응 긴급간담회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에 대해 너무 편향적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언론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비영리 민간단체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풀어야 합니다.” (정란아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정책위원장)

“감사에서 밝혀진 0.46%의 부정사례에 대해서는 단체명을 명확히 밝히고 엄중한 처분을 내려야 하지만, 민간단체 모두가 부정을 저지른 것처럼 매도하는 프레임으로 시민운동이 위축될까 우려됩니다. 함께 연대해서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 목소리를 내야합니다.” (박동순 한국YWCA연합회 조직혁신지원국장)

5일 서울 중구 한국YWCA연합회관에서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관련 긴급간담회’가 열렸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한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시민사회활성화전국네트워크의 주관 하에 12개 단체에서 3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5일 서울 중구 한국YWCA연합회관에서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관련 긴급간담회’가 열렸다. /최지은 기자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투명성 강화’를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정부의 민간단체 보조금 지원 현황을 전수조사했다. 지난달 4일 대통령실은 “2020~2022년 1만2000개 민간단체를 대상으로 지급된 보조금을 감사한 결과, 1865건의 부정과 비리를 적발했다”며 “보조금 6조8000억원 중 약 314억원이 부정사용됐다”고 발표했다. 0.46%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 날 “국민 혈세가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감시하고 관리해야 한다”며 “보조금 비리에 대한 단죄와 환수조치를 철저히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정부는 내년도 민간단체 보조금 예산을 올해 대비 5000억원 이상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류홍번 시민사회활성화전국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과거 정권에서 보조금 감사는 시민단체의 반정부 운동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활용되고는 했다”며 “그럴 때마다 시민사회는 더 큰 갈등을 조장하지 않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정권에서는 선제적으로 공격적인 감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민간단체 전체를 부패집단으로 매도하는 등 그 강도와 수위가 심각하다고 판단돼 공동대응책을 강구하기 위해 긴급 간담회를 소집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감사 대상이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보조금법 제2조 제1호에서 정부의 민간보조금은 영리와 비영리, 법인, 단체, 개인 등에 지급될 수 있다고 명시된 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번 감사의 대상을 ‘비영리 민간단체’라고 밝혔지만, 정부가 발표한 실제 위반 사례에는 봉제협동조합, 주식회사 등 영리조직이 포함돼 있다”며 “정부는 감사 대상인 조직과 사업 유형 등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 부정수급을 이유로 환수한 민간보조금은 사회복지분야가 72%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산업·중소기업 및 에너지분야가 18%로 비중이 컸다”며 “통일·외교 분야는 0.009%에 불과하지만, 정부 보도자료에는 통일 관련 단체의 적발사례가 집중적으로 제시돼 있다”고 했다. 채연하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시민사회활성화위원장도 “현 정부는 어떤 단체를, 어떤 목적으로, 어떤 항목을 조사했는지와 그 결과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다”며 “이런 방식으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확한 정보 공개가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시민사회가 ‘부정과 비리의 온상’으로 정치 프레임화 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정란아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감사 결과가 담긴 보고서를 정부에 요청했지만 ‘아직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그 와중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자료를 제공받아 이를 토대로 단체에 대해 폄훼하고, 이 발언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도 보조금 사업에 참여한 단체들을 ‘이권카르텔’이라는 용어로 지칭하고, 이들 때문에 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하고 있다”며 “시민들에게 이런 프레임이 계속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현장 활동가들은 체감하는 변화를 공유했다. 이필구 한국마을엽합 이사장은 “민선 8기에 들어서면서 주민자치의 일환인 마을공동체 활동이 진보세력의 운동으로 정치 프레임화돼 활동이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마을공동체 사업과 관련된 정책과 예산이 축소되면서, 24개 자치구에 설치됐던 중간지원조직은 7곳을 제외하고 모두 폐쇄된 상태다. 이 이사장은 “마을공동체 사업은 1990년대에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지역 풀뿌리 운동을 활성화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됐다”며 “주민들의 공동체 활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에는 진영논리에 흡수돼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하재찬 사회적경제연대회의 상임이사는 “윤석열 정부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청년창업지원)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예산은 9% 이상 감소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다수의 사회적경제 기업이 코로나, 소비위축 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압박은 조직의 생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역할과 민간 보조금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필구 이사장은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 등 경제 조직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처럼,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민간과 협력하기 위해 지급하는 것이 민간 보조금”이라며 “정부, 시민들은 보조금을 ‘어려운 단체를 도와주는 것’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재은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정책센터장은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 기후위기 같은 문제 상황에 정부 힘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며 “시민사회를 지원의 대상이 아닌 협력 대상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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