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어디서도 못했던 얘기 기선 말할 용기 생겨요

현대해상의 ‘아주사소한고백’ 캠프
각자 고민 털어놓는 고백엽서 쓰고 다른 친구 얘기 들으며 소통하는 캠프
레크리에이션·그룹활동 등을 통해 서로 마음 열고 공감하는 것이 취지

“아빠한테 ‘미안하다’는 말 듣고 싶어요….”

무대 위에 선 오진아(16·가명)양이 조그만 목소리로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우리 부모님이 결혼을 약속하기 전에 생겼대요. 그래서 아빠는 절 미워했죠. 아빠가 원망스러웠어요. 얼마 전 아빠가 부정맥으로 쓰러져 지금은 많이 위독하세요. 아픈 아빠를 보며 이런 마음을 갖는 내가 정말 싫은데…. 더 늦기 전에 사과를 받고 싶어요.” 숨죽여 흐느끼는 오양을 따라 객석에서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회를 맡은 권영찬(44·방송인)씨가 “진아는 아빠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며 다독이자, 객석에서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양은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기 힘들어서 괴로웠는데, 이제부턴 용서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며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지난 11일부터 3일간 충남 태안에 위치한 한양여대 청소년수련원에서 진행된 ‘아주사소한고백’ 캠프.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함께 고민을 나누는 둘째날 ‘토크타임’ 시간은 이 캠프의 백미(白眉)다. 한데 모인 48명의 참가자들은 용기를 내준 친구에게 공감의 눈물과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최영복(16·성신여고1)양은 “엄마나 선생님에겐 ‘벽’ 같은 게 느껴졌는데 여기서 다른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며 마음을 열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아주사소한고백'(이하 ‘아사고’)은 현대해상의 청소년 대상 사회공헌 캠페인으로, 2012년 5월 처음 출범했다. 같은 해 실시된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하 청예단)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으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한 학생은 전체 49.3%로 전년 대비 15%나 높아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해상과 청예단, 기획 광고업체 ‘피당(P堂)’이 힘을 모은 것이다. 박주한 청예단 나눔사업부 팀장은 “학교폭력에 대한 원인을 분석했는데, 소통의 문제 때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며 “학생들이 마음을 열고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아주사소한고백' 캠프의 둘째 날‘토크타임’현장. 학생들은 평소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던 고민을 털어놓고, 전문 상담사와 함께 해결방안도 찾아본다. 2 학생들이 좋아하는 가수‘아웃사이더’가 함께한‘유명인사의 멘토 강연’프로그램.3 팀별로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획득해 직접 저녁을 만들어보는'마스터셰프'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 /현대해상 제공
1’아주사소한고백’ 캠프의 둘째 날‘토크타임’현장. 학생들은 평소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던 고민을 털어놓고, 전문 상담사와 함께 해결방안도 찾아본다. 2 학생들이 좋아하는 가수‘아웃사이더’가 함께한‘유명인사의 멘토 강연’프로그램.3 팀별로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획득해 직접 저녁을 만들어보는’마스터셰프’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 /현대해상 제공

‘아사고’는 ‘고백엽서’와 ‘캠프’, ‘카운슬링 콘서트’ 등 3가지 핵심 사업으로 이뤄져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고백엽서’. 강정훈 현대해상 사회공헌팀 차장은 “고해성사와 자신의 고민을 같이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나쁜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청예단은 청소년 관련 사업을 진행할 때마다 ‘아사고’ 부스를 만들어 청소년들로부터 고백엽서를 받았다. 어느 우체통에 넣어도 받을 수 있는 엽서를 전국에 배포하기도 했다. 영국과 중국에도 전달됐다. 그렇게 수집된 엽서가 벌써 수 만여 통. 올해 안에 8만 통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등 SNS를 통해 공개된다. 이 공간을 공유하는 21만 명의 청소년은 또래 친구의 고민을 토닥인다.

엽서가 담은 사연은 현재 청소년들의 갈증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자료가 된다. 박주한 팀장은 “8111장의 엽서를 수거해 분석보고서를 만들었는데, 대상은 엄마와 친구가 가장 많았고, 듣고 싶은 말은 ‘사랑해’와 ‘공부 그만해’였다”며 “이런 자료에 발맞춰 학교폭력 예방에 대한 캠페인이나 연구 자료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해상도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올해 말 부모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캠프’와 ‘카운슬링콘서트’는 고백엽서에 대한 답장의 차원으로 마련된다. 윤승현 피당(P堂) 팀장은 “엽서는 익명을 기본으로 ‘너희 얘길 털어놔봐라’는 취지인데, 그렇게 쌓인 고민들을 정기적으로 정리하는 자리도 필요했다”며 “1년에 4차례 정도 직접 만나 문화예술 활동, 레크리에이션, 그룹 활동, 상담 활동 등을 하며 마음을 나눈다”고 말했다.

이번에 열린 제3회 아사고 캠프에선 2박3일 동안 ‘힐링드라마’, ‘유명인사의 멘토 강연’, ‘토크타임’ 등을 진행하며 청소년들의 산적한 고민을 하나하나 풀어냈다. 멘토로 참여한 이지영(21·성신여대 심리학과3)씨는 “오늘 아침 식사 후 한 아이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어느새 수많은 아이들이 동그랗게 모여 대화에 참여하고 있더라”며 “겨우 하루 사이에 서먹했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을 보면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들어주는 프로그램’인 ‘아사고’의 강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정훈 차장은 “자신들에게 귀 기울여주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이 캠페인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며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다보면, 꾸준히 사랑받는 캠페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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