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⑥ 24세 상담원, 폭행 진술·폭언에 트라우마 “학대 부모와 아동의 삶, 제가 감당하긴 너무 버거워요”

[아동학대 예방체계, 이대로 괜찮은가] (6)현장 떠나는 아동보호상담원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 싶어서 그만뒀어요. 계속하다간 제정신이 아닐 것 같아서….”

박지연(가명·26)씨는 지난달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떠났다. 입사 후 2년 4개월 만이었다. 2012년 3월, ‘아이들이 아주 좋아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는 박씨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들어갔다. 한 달간의 수습기간, 3주에 걸친 ‘100시간’ 교육을 받자마자 실전에 투입됐다. 24세 사회 초년생 앞에 ‘어마어마한 사례’들이 쏟아졌다. 의붓오빠에 의한 성 학대 사례, 심각한 정도의 신체 학대, 방임…. 더욱 힘든 건, 가해자들을 만나 학대를 조사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가해 의심자나 피해 아동과 어떻게 의사소통하는 게 맞는지, 내가 내리는 ‘학대’ 판정이 맞는지 틀린지 불안했어요. 3주간 받은 교육은 행정적인 법 체계나 DB 입력법을 익히는 것이 주였고요.”

‘자녀를 학대한 부모와 아이를 분리해야 한다’는 결정을 해야 하는 것도 감당하기 버거웠다. 박씨는 “사회복지사인 내가 한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게 무거웠다”고 했다. 분리하면 한 대로 “네가 가정을 파탄냈다”는 폭언과 협박이 따라왔고, 가정에서 보호하기로 결정하면 ‘혹시 아이가 잘못되는 건 아닐지’ 늘 불안했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2년 4개월 동안 담당했던 아동 학대 사례는 총 142건. 한 달에 새로운 학대 사건이 최소 6건 생겨난 셈이다. 부족한 인력, 야근은 당연지사였고, 주말에도 전화기를 잡고 동동거려야 했다. 새벽 2~3시에도 신고받아 나가는 일이 수두룩했다. 심리적 보상도 없었다.

“아동 학대 사건에 개입을 잘해서 ‘우수 사례’라고 생각했던 게 딱 한 건이었거든요. 그런데 또 재신고가 들어오더라고요. 인력이 너무 부족하니 몸은 몸대로 너무 지치고 자꾸 마음도 다치고, 변화는 안 보이는데 보상받을 지점이 없었어요. 나중엔 제가 분노조절이 잘 안 되더라고요. 정신과 진료도 받아봤는데, 한 회기에 40만~50만원 하니까 감당할 수도 없었죠.” 결국 박씨는 사표를 던졌다. 박씨는 “이제 다른 사람 인생에 개입하는 일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박씨가 떠난 자리는, 대학을 갓 졸업한 또 다른 25세 사회 초년생이 메웠다.

◇아동 학대 예방 체계의 최전선, 상담원들이 현장을 떠나간다

아동 학대 예방 체계의 최전선에 있는 상담원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 50곳의 ‘상담원 이직·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한 42개 기관에서 올해 1월부터 6월에 이르기까지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떠난 상담원은 총 184명에 이른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을 제외한 전국 325명 상담원(4월 기준) 중 절반 이상이 지난 6개월 동안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떠난 셈이다.

떠난 자리를 채우는 건 신규 상담원들. 자연히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도 낮다. 지난 2월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조사 자료에 의하면, 상담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2년 10개월이다. 대부분이 채 3년이 되기 전에 현장을 떠나는 셈이다. 전라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한 상담팀장은 “오랜 경력자들은 다들 아동보호전문기관 발령을 꺼려, 막 입사한 초년생들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먼저 보내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했다. 오는 9월 아동학대 특례법 시행을 앞두고 신고가 폭증하자 “더는 못하겠다”며 떠난 상담원들도 많다.

지난 7월 초, 4년 6개월간의 근무를 끝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떠나 다른 기관으로 옮긴 이기호(가명·29)씨는 “특례법 시행을 앞두고 관내 경찰에서부터 파출소, 지구대, 치안센터로부터 신고가 급증하는 걸 상담원 5명이 맡아야 했는데, 앞으로 더하면 더하지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며 “경찰이랑 동행하는 사례가 늘면서 그 과정에서 역할 간 갈등도 심해졌다”고 했다. “한번은 친모가 아이를 심하게 신체 학대해 경찰이랑 동행해서 분리하길 결정했어요. 이후 어머니 상담을 하려고 하니 ‘이제 와서 무슨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며 ‘다신 아이도 안 보겠다’고 해서 몇번씩이나 찾아가서 빌기도 하고, 책을 두고 오기도 했지만 상한 마음을 돌려 개입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어요. ‘내가 사회복지사인데 이런 일을 하는 게 맞나’ 하는 갈등이 심했습니다.”

지난해 12월, 1년 8개월간 근무했던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떠나 지역복지관으로 옮긴 이수희(가명·27)씨는 “친부의 신체 학대로 신고된 중학생 아동을 분리했는데, 친부가 아이와 연락을 끊으면서 아이가 연락 와 ‘이제 가족이 없다’며 원망하기에 그간 참았던 것들이 무너졌다”며 “이 일을 오래 한다고 해도 같은 일들이 반복될 것 같아 그만뒀다”고 했다.

학대 판정부터 보호까지 3주에 걸친 100시간 교육이 전부, 바로 현장 투입돼

300여명 중 절반 이상은 6개월 못 하고 떠나

한 달에 6건 이상 사례 맡아… 외국은 일 년에 사례 10건 남짓

전문가 “상담원들의 심리적 보상·교육 지원 절실”

◇현장의 상담원 떠나지 않도록… 인원 증대하고 ‘아동학대 보호·예방체계’ 재정비해야

보건복지부에서는 지난 1일, ‘아동복지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배치 기준을 현행 6명에서 최소 10명으로 확대하는 안을 내놨다. 그러나 인력 확충과 더불어 ‘아동학대 보호·예방 체계’가 재정비되지 않는 한, 떠나가는 상담원들을 붙잡기는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선희 전남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궁극적으로는 상담원들을 위한 치료프로그램을 비롯한 재교육이나 보수교육 등이 제때 이뤄져 정신적으로 힘을 기르고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현 인력으로는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해도 업무에 치여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적 영역’에서 이뤄져야 할 일을 ‘민간 기관’에서 맡아 하다 보니, 아동학대 상담원들이 신변 위협이나 감정적인 소진 등 상충하는 역할 간의 어려움이 크다”며 “인원을 대폭 증대해 업무량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현장조사와 상담을 이원화해 상담원은 가족개입 서비스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체계를 잡아가야 한다”고 했다.

전국 300여명의 상담원이 933만명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학대 사건을 모두 커버해야 하는 나라. 상담원 한 명의 어깨에 ‘아동학대’ 예방과 보호의 모든 짐이 지워져 있는 나라. ‘아동학대 예방 체계’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시급히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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