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제주에서 혁신을] 골칫거리 폐어망을 운송용 플라스틱 박스로

‘신한 스퀘어브릿지 제주’ 2기
사회성과 최우수상 ‘포어시스 연합팀’ 인터뷰

지난 17일 인천 서구의 환경산업연구단지. 18만㎡ 규모의 너른 부지에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소와 시제품을 제작하고, 성능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단지 내 1층 짜리 낮은 건물인 파일럿테스트 A동 앞 공터에는 누군가 버린듯한 헤진 그물망과 두꺼운 밧줄들이 쌓여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원종화(42) 포어시스 대표는 “제주 바다에서 어민들이 쓰던 폐로프와 폐어망”이라며 “플라스틱 소재인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등을 뽑아내 재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어시스는 해양폐기물 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기 위해 2017년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하천의 부유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고, 바다에서 수거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사업을 한다. 지난해 5월에는 제주로 내려갔다. ‘신한 스퀘어브릿지 제주’ 2기로 참여해 제주 바다에서 나온 해양폐기물의 자원순환체계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다.

‘신한 스퀘어브릿지 제주’는 혁신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주축으로 다양한 주체가 협력해 더 큰 영향력, 즉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를 내는 플랫폼이다. 신한금융그룹과 신한금융희망재단이 2021년부터 제주의 사회적·경제적 가치 창출을 위해 조성했다. 포어시스는 ‘신한 스퀘어브릿지 제주’에서 제공하는 물적·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포어시스 연합팀’의 리드플레이어가 되어 폐어망·폐로프에서 나온 PP와 PE로 자동차 엔진 운송용 박스를 제작했다. 제주 폐기물 재활용 업체와 제주도청, 제주 환경단체, 경기 김포의 해양플라스틱 펠릿 생산업체, 대기업인 현대자동차 등이 힘을 합쳤다.


원종화 포어시스 대표는 "'신한 스퀘어브릿지 제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주 환경단체, 도내 기관, 민간 업체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인천=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원종화 포어시스 대표가 제주에서 가져온 폐어망 위에 앉아있다. 원 대표는 “‘신한 스퀘어브릿지 제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주 환경단체, 도내 기관, 민간 업체 등과 협력해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천=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이번 프로젝트 기간 총 1만50kg의 폐어망과 폐로프가 6000개의 플라스틱 박스로 재탄생했다. 신한 ESG 밸류 인덱스(ESG Value Index)로 측정한 결과 기존에 사용하던 종이박스 제작·소각 비용 4억4000만원, 온실가스 배출량 3만6600kg을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2기로 선발된 8개 팀 중 가장 큰 사회성과를 내 최우수상을 받았다. 원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는 제주의 해양폐기물을 자원으로 활용하는 순환경제의 선례를 만들었다는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원 대표와의 일문일답.

-제주 해양폐기물 문제는 육지 지역과 어떻게 다른가.

“계절별로 다른 방향에서 쓰레기가 흘러들어온다. 정말 다양한 쓰레기가 섞여 있다. 여름철에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넘어오는 쓰레기가 제주 서남해안 쪽에 쌓인다. 중국어가 적힌 생수병이 가득하다. 겨울이 되면 북쪽 바다로 육지 쓰레기가 내려온다. 하천 쓰레기도 많다. 제주는 해안지역 고도가 낮고 중앙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지형인 데다가, 지반이 현무암이라서 건천인 하천이 많다. 바람이 불면 쓰레기가 건천에 쌓이고, 비가 오면 바다로 쓸려온다. 이밖에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어민들이 쓰고 버린 폐어구들도 나온다.”

-육지폐기물과 해양폐기물이 다른가.

“그렇다. 육지 쓰레기는 바다로 들어가는 순간 처리 비용이 비싸진다. 염분과 이물질이 묻기 때문이다. 재활용도 어렵다. 그래서 포어시스에서는 하천 부유물부터 관리한다. 육지에서 나온 쓰레기가 바다로 떠밀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하천과 바다의 경계에 부유 쓰레기 차단 구조물을 설치한다. 쓰레기 확산을 예측해 최적의 위치를 선정한다.

-이미 바다로 간 해양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하나.

“원칙적으로는 따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제주에는 해양쓰레기 처리 시설이 없다. 폐어망과 폐로프에서 PE, PP, 나일론 등 다양한 소재를 뽑아낼 수 있는데, 비용이 높은 나일론 소재는 전남 등 육지로 보내고 나머지는 육지쓰레기와 함께 매립, 소각된다. 포어시스에서는 해양쓰레기를 세척해서 재활용 하는 기술을 2020년부터 개발했다.”

-이번에 제주에서 ‘순환경제 밸류체인’을 시범적으로 구축했다.

“여러 기관과 협력해 제주 어민들이 사용하던 폐어망·폐로프를 수거해 선별하고, 세척한 다음 플라스틱 원료로 만들어 제품화까지 하는 데 성공했다. 매출 1억5000만원이 목표였는데 8억원으로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폐어망과 폐로프는 어민들에게 돈을 주고 사온 건가.

“해양폐기물은 해양수산부나 지자체에서 수거한다. 제주에서는 수협이 어촌계에서 모아둔 폐어망과 폐로프를 수매한다. 사용자에게 폐기 비용을 부과하면 바다에 버리고 무단투기 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협에서는 폐기물을 폐기물 처리업자한테 넘기면서 또 처리비를 준다. 해양폐기물 재활용 비용이 올라가는 이유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폐기물 처리업자들을 만나 협조를 구했다. 두 군데 업체에서 적극적으로 폐기물 처리량을 공개하면서 도와줬다. 그중 한수풀환경산업이 협력 플레이어가 됐다. 한수풀환경산업에서 확보한 폐로프와 폐어망을 PE, PP로 선별하는 작업을 맡아줬다.”

원종화 포어시스 대표가 인천 환경산업연구단지에 있는 초음파 전처리 시설 ‘포어소닉(Fore-sonic)’에서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인천=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원종화 포어시스 대표가 인천 환경산업연구단지에 있는 초음파 전처리 시설 ‘포어소닉(Fore-sonic)’에서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인천=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선별 후에는?

“세척, 분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포어시스의 기술인 초음파 정밀세척 시스템으로 염분과 이물질을 제거했다. 안경을 닦을 때 쓰는 초음파 세척기와 같은 원리다. 다음은 경기 김포에 있는 일신케미컬에서 세척한 재료들을 분쇄해 플라스틱 펠릿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요청한 분량이 너무 소량이라서 수익을 따진다면 일신케미컬 입장에서는 달가운 제안이 아니었을 텐데 기꺼이 참여해줬다. 포어시스가 이 펠릿으로 플라스틱 박스를 제작했다. 해양플라스틱은 아직 위생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있어서, 사람 몸에 닿는 제품 생산에는 사용하기가 어렵다. 다른 아이템에 적용해서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현대차에서 많은 물량을 생산해서 성능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부품 운송용 플라스틱 박스를 제안해줬다.”

-최근 대기업에서도 해양폐기물을 활용하는 흐름이 있다. 그래서 공급이 부족하다는 말도 들린다.

“해양폐기물 재활용량을 늘리려면 해양폐기물 처리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시장성을 가지려면 첫 번째는 가격이 저렴해야 하고, 두 번째는 균일한 품질이 담보돼야 한다. 가격을 낮추려면 해양폐기물 수거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포어시스 같은 재활용 업체에 배출자가 폐기물을 직접 전달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지금은 수거 단계도 복잡하고 여러 종류가 섞인 채 배출되기 때문에 선별 비용이 많이 든다. 선별이 어려운 것들은 결국 소각해 버린다. 처리장에 보내면 쓰레기지만, 재활용 업체로 바로 오면 자원이 된다.”

-품질을 끌어올릴 방법은.

“경북 경주에 포어시스 공장을 짓고 있다. 해양폐기물을 세척하고 펠릿까지 만드는 세계 최초 스마트팩토리를 구성할 예정이다. 공장에서 세척되는 단계별로 모니터링을 한다. 염분과 이온, 온도, 산도 등을 일일이 확인하는 거다. 그럼 균일한 품질을 낼 수 있다. 오는 6월까지 시운전하고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제주에서도 사업을 이어가나.

“이제 곧 봄이다. 봄에는 대만 바다에서 제주 바다로 괭생이 모자반이라는 해초가 몰려온다. 이 해초들이 육지로 밀려오면 썩어서 악취를 풍기고 경관을 해친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또 제주지역의 프로젝트 성공 사례를 동남권 등 다른 지역으로 확장하는 가능성도 확인할 계획이다.”

인천=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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