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혁신의 목격자] 당신의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올해 가을, 나는 새로운 서사를 만났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서사의 위기’에서 “문제 풀기에만 몰두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서사만이 비로소 우리로 하여금 희망하게 함으로써 미래를 열어준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앞으로의 방향을 알려줌과 동시에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기에 삶의 여정마다 경험하는 서사는 이전과 이후를 다르게 만드는 독특한 분수령이자 갈림길이 되곤 한다.

이번에 경험한 서사는 지난 9월 싱가포르에서 만난 제러미 린(Jeremy Lin)과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하버드대학교 졸업 후 최초의 대만계 미국인 NBA 선수로 활동하며 전세계에 ‘Linsanity'(미친 린)라는 돌풍을 일으킨 제러미. 주목받지 못한 벤치 플레이어던 그가 타임지 표지 인물과 ’21세기 최고 농구 이야기 중 하나'(자세한 이야기는 ‘38 앳 더 가든’이라는 다큐멘터리 참고)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여정은 사실 고난과 인종차별 등으로 가득했다.

임팩트투자를 시작한 그가 초대한 자리에서 린은 자신의 미래 비전이나 현재 영향력이 아닌 과거 자신의 두려움을 먼저 이야기했다. ‘이번 경기에서 별로면 오늘이 NBA에서 마지막 게임이 될 거야.’ 에이전트는 매 게임에 앞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경기장 건물에 들어설 때 경비원들이 검지 손가락을 흔들며 입장을 막는다. 동양인이 NBA 선수일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번 이러한 ‘경기 전 불안감’(pre game anxiety)에 괴로워하던 그는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더 노력하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못함을 깨닫는다.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게임이 잘되든 안되든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집중할 때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에게 정체성은 바로 ‘사랑(love)’. 놀랍게도 두려움의 반대말은 ‘두렵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바로 ‘사랑’이었다.

나는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들로 인해 제러미 린이 앞으로 임팩트투자에 있어 특별하게 관심을 가지는 영역이 있을지 질문했다. 돈이 없어 학교 교재를 사지도 못했던 경험, 열악한 주거 경험, 정신건강의 위협과 유색인종의 차별 경험 등 그는 경험했던 온갖 장애물과 차별을 해결하는 분야들을 예시로 들었다. NBA에서만이 아닌 임팩트투자에서도 ‘Linsanity’를 기대하게 하는 그의 서사에 나는 푹 빠져들었다.

몇 주 후 싱가포르에서 그 서사를 이어 가보기로 결심했다. 싱가포르 테마섹 트러스트가 설립한 CIIP(Center for Impact Investing and Practices)와 MYSC가 함께 개최한 ‘글로벌 임팩트 챕터’(Global Impact Chapter) 컨퍼런스 중 엄선된 8개국 10명 이상의 임팩트 벤처캐피털리스트(VC)들이 참여한 워크숍이 시작됐다. 모더레이터인 나는 첫 질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 각자의 두려움은 무엇이며, 그 두려움이 없다면 담대히 무엇을 도전하고 싶나요?” VC들의 모임에서 두려움에 대해 한 명씩 차례차례 나눈 사례는 아마 전례가 없을 것이다. 향후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장기적인 벤처투자 생태계를 만들어갈 우리들은 각자의 두려움을 나눴고, 우리가 상호의존적임을 확인했고, 각자의 취약성이 서로를 신뢰하고 함께 할 더 큰 이유가 됨을 신비롭게 경험했다. 그렇게 ‘임팩트 형제자매들’(Sisters and Brothers of Impact)이 시작됐다.

지난주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임팩트투자자 컨퍼런스 SOCAP23에 참여하며 이 새로운 서사의 한 챕터가 완성되는 것을 목격했다. ‘Facing Urgency’라는 주제 밑의 부제 ‘Impact at the speed of trust’(신뢰라는 속도로 창출되는 임팩트)가 눈에 띄었다. 제러미 린이 두려움을 먼저 이야기한 것은, 두려움과 취약성을 나누고 서로 공감할 때 관계가 자라고 신뢰가 쌓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와 신뢰로 인해 우리가 뛰어든 게임이 잘되든 안되든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의 게임을 ‘미친 듯’이 지속할 수 있게 된다. 그 시작은 단순한 질문을 서로에게 묻고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신의 두려움은 무엇인가?’ 그리고 ‘두려움이 없다면 담대히 행동할 그것은 무엇인가?’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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