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세월호 성금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안 되려면… 분배창구 일원화하고 特委 구성해 다양한 이해 조정해야

재해구호협회 성금 합하면 1200억원…
중복 지원·지원 누락 없게 하려면 누군가는 큰 밑그림을 그려야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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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역에서 한 지적장애 남성이 뿌린 휘발유가 지하철 객차 전체를 태웠다. 등굣길·출근길이던 192명의 사망자를 비롯, 300여명의 사상자를 낳았던 ‘대구 지하철 참사’다. 전국 각지에서 희생자·피해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성금이 모여들었다. 안전행정부 승인을 받은 재해구호협회(현 희망브리지 재해구호협회)에서 국민 성금을 총괄했다. 40여일 만에 모인 성금은 672억원. 최초 모금 목표액이었던 200억원을 3배 이상 넘어섰다.

이렇게 모인 성금은 ‘잘’ 쓰였을까.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11년이 지났지만, 100억원이 넘는 성금은 여전히 대구시에 묶여 있다.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한 ‘특별 위로금’이 지급됐지만, ‘추모 재단’을 설립하는 것을 두고 대구시와 유가족 간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재단 출연 여부를 두고 유가족 단체 간에도 의견이 엇갈렸다. 대구시와 유족 단체 사이에 고소가 오가고, 유가족 단체 간에도 고성이 오갔다. ‘선한 취지’에서 선뜻 돈을 내놓은 대다수 국민의 성금 또한 참사로 끝나버린 셈이다.

◇세월호 모금, ‘대구’처럼 끝나지 않으려면

세월호 모금 분배와 관련해서 사람들의 관심과 우려가 쏠리고 있다. 모금액도 역대 최대 규모다. 모금액 기준 상위 세 곳에 해당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대한적십자사, 희망브리지 재해구호협회의 성금을 합하면 1200억원대에 달한다 (17일 기준). 전례 없는 규모의 모금액, 배분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모금 기관 관계자들은 “아직 실종자들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 ‘돈 얘기’를 시작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상황”이라면서도 “피해자 가족들을 위해 쓰겠다는 큰 틀을 가지고, ‘배분’의 방향성과 방법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규모가 큰 기관 간에는 ‘분배 창구 일원화’에 대한 논의도 시작됐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현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재해구호협회는 공동으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분배 창구를 일원화하기 위한 비공식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협의체 구성 방안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의 경우, 유족·부상자 가족 간 합의를 이끌어낼 조정 역할이 부재했기 때문. 희망브리지 재해구호협회 관계자는 “국민이 모아준 성금을 투명하게 전달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유족들 간의 다양한 이해를 조정하는 역할이 부재해 성금이 제대로 배분·운용되지 못했다”며 “단체 간 공동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때, 당사자 외에도 각 단체의 배분 전문위원, 공익 전문가, 정부 관계자 등을 포함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들어간 정·재계의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 기부금의 귀추도 관심 대상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지난달 20일, ‘세월호 사고 유족 지원 및 국가 안전 인프라 구축’을 위해 성금 모금을 시작한다고 밝히고, 경제계의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했다. 삼성그룹(150억원), 현대자동차그룹(100억원), SK그룹(80억원), LG그룹(70억원) 등 대기업들의 ‘통 큰 기탁’이 뒤따랐다. 이를 두고 “정부가 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할 부분이나, 국가 안전망 구축을 위해 ‘기업들 옆구리를 찌른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도 제기됐다. 강학봉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일반모금사업본부장은 “사회복지를 위한 모금회이니만큼, ‘인프라 구축’에 돈이 쓰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 기금 역시 특별위원회를 통해 유가족과 기부자의 합의점을 찾아내서 쓸 방법을 모색할 것이며, 국가 보상금 부분과도 혼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 성금, 큰 그림 그리고 장기적으로 집행해야

모여진 성금은 어떻게 쓰이는 것이 좋을까. 비케이 안 한국기부문화연구소장은 “해외의 경우 이렇게 모인 기금은 크게 3가지 목적 사업으로 나누어, 안전 등에 대한 범국민적 인식 개선과, 사고 발생 시 대처법에 대한 교육, 살아남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장기 트라우마 치료 등에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3가지 분야의 비중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중복 지원이나 지원 누락 사각지대가 없게 하려면, 누군가는 큰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해외와 달리 정부와 민간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의 경우, 정부를 중심으로 한 비공식 협의체가 구성돼 기본 계획을 짜고, 모인 돈을 취지에 맞게 쓰도록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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