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협동조합 창업교육 해주고 임직원엔 3%대 금리 대출… 진화하는 신협

지역 주민 신뢰 얻으려 다시 변하는 신협
협동조합 특례보증·1신협1협동조합 추진 신규조합 자금 부족 문제는 과제로 지적

“70년대 시골은 춘궁기를 버티기 위해 쌀을 빌렸죠. 50%의 고리(高利)였어요. 모두가 가난해졌죠. 그래서 동네 청년 24명이 800원씩(당시 8만원 정도의 가치) 거둬 제일 어려운 사람 먼저 빌려줬어요.” 1977년 4월 정식 인가를 받은 전남 ‘보성신협’이 탄생한 배경이다. 당시 기틀을 다졌던 이는 임정빈 현 동작신협 이사장. 임 이사장의 설명은 이어졌다. “점점 사람이 모이니 이자도 모였죠. 마을 사람들과 상의해 동네 화장실을 개량하고, 우수한 돼지 종자를 들여왔어요. 돼지가 많아져 파리가 들끓자 마을 소독도 했죠. 학생들이 통학하는 강가엔 다리를 놨고요. 이게 신협입니다. 다 함께 행복해지는 거죠.”

매년 4월 진행되는 동작신협의‘고추 모종 나누기’행사. 지역 사회 기여를 최우선으로 하는 신협은 연중 내내 주민 조합원과 함께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동작신용협동조합 제공
매년 4월 진행되는 동작신협의‘고추 모종 나누기’행사. 지역 사회 기여를 최우선으로 하는 신협은 연중 내내 주민 조합원과 함께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동작신용협동조합 제공

우리나라에 신용협동조합(이하 신협)이 생긴 건 1960년 5월 미국 메리가브리엘라 수녀가 만든 ‘성가신협’이 처음이다. 국내 최초의 민간 주도 비영리 금융협동조합이었다. 주주 이익이 아닌 상호 이익을 위한다는 게 은행과 달랐다. 1972년엔 신협특별법도 제정됐다. 현재 전국 935개의 신협이 580만명의 조합원과 57조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4위, 아시아에선 가장 큰 규모다. 소상공인, 저신용 근로자, 지역 주민들이 주고객이다. 5년째 신협을 이용한다는 구자숙(62·서울 동작구)씨는 “(은행에 비해) 소액 대출이나 예금 문의를 훨씬 편하게 할 수 있고, 봄철 기생충 약이나 김장철 소금 같은 것들을 공동구매 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법 제정 이후 규모가 커지긴 했지만 수많은 신협이 난립하면서 문제도 생겼다. 일부 임원들의 ‘돈놀이’ 창구가 되거나 ‘이율’만 좇는 조합원들도 늘었다. 본래 가치를 잃으니 경영도 악화됐다. 이는 IMF 외환 위기와 맞물리며 600여 부실 조합의 청산으로 이어졌다. 관리·감독권이 금융위원회로 이관되며 자율성도 잃었다. 임정빈 이사장은 “초창기 신협은 사회성에 더 큰 비중을 뒀지만 IMF 이후엔 사업성만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져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가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지역 주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신협의 존재 가치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본질적 질문들은 신협을 다시 움직이고 있다. 2012년 12월 발효된 협동조합기본법이 불을 지폈다. 김홍길 한국사회투자 팀장은 “북서울·동작·논골신협 등 4~5개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 조직들에 임차금 및 운영 자금을 대출해주는 등 신협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북서울신협은 지금까지 도봉·노원·강북·성북구 내 사회적 경제 조직 9곳에 약 2억8000만원을 빌려줬으며, 사회적기업 임직원, 자활 근로자 전용 대출을 3%대 저금리로 진행한다. 동작신협은 동작구 내 지역 협동조합 네트워크를 구축해 협동조합 창업과 운영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1억7000만원의 사회적 경제 조직 전용 대출도 집행했다. 논골신협도 협동조합 중국집 ‘블랙앤압구정’ 같이 성동구 내 신설되는 협동조합에 대한 금융 지원을 펼치며 지역의 협동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개강한 사회적 금융 아카데미는 신협 서울본부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한국사회투자 제공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개강한 사회적 금융 아카데미는 신협 서울본부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한국사회투자 제공

지난 3월 선출된 문철상 신협중앙회 신임 회장도 사회적 경제 기여에 힘을 싣고 있다. 신협중앙회는 제도권 금융기관에선 유일하게 ‘협동조합 특례보증’ 대출 상품(금리 연 3.5% 내외, 지원 한도 최대 3000만원)을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영세 협동조합 및 사회적기업의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한 판로 및 홍보 지원, ‘1신협1협동조합’ 자매결연 등도 추진하고 있다. 안인숙 행복중심생협연합회 회장은 “신협이 자발적으로 협력과 연대에 나서는 건 매우 반가운 일”이라며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앙 금융으로서의 역할도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산적한 과제는 많다. 기존 금융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게 1순위다. 지난해 한국사회투자가 실시한 ‘사회적 경제 조직 자금 수요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신규 협동조합들은 ‘담보·보증 부담’과 ‘재무성과 입증’ 등으로 인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금융위의 관리·감독을 받는 신협 입장에선 이런 기준을 간과할 수 없다. 아직은 제도권 금융제도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해석해 대출하는 수준에 그친다. 유영우 논골신협 이사장은 “신생 사회적 경제 조직은 담보나 신용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업 평가에 사회적 경제의 특수성을 감안하는 체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협의 역할을 단순한 여신(돈을 빌려주는 것)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은 “신협은 농협과는 달리 타 법인에 대한 출자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는데, 좀 더 다양한 사회적 경제 조직들의 육성·발전을 돕기 위해선 직접 출자하거나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며 “인큐베이팅 할 수 있는 출자 기간을 미리 정한다거나 건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상의 조건을 명확히 하면 부정이나 비리로 이어질 위험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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