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Cover Story] 신부가 미사나 보지 사회 활동 왜 하냐고? 지역 사회의 환풍기 역할 때론 성당 짓기보다 더 중요

Cover Story 20년간 환경·교육공동체 운동한 정홍규 신부

지난 11일 오전, 대구가톨릭대 교정에서 만난 정홍규 신부. 그는 인터뷰 내내 “종교가 있는 곳엔 지역사회가 풍요로워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일 오전, 대구가톨릭대 교정에서 만난 정홍규 신부. 그는 인터뷰 내내 “종교가 있는 곳엔 지역사회가 풍요로워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생태 운동이란 말만 들어도‘빨갱이’란 말을 듣던 1990년. 정홍규(60) 신부는 성당 밖으로 나왔다. 지구의 날(4월 22일), 천주교 월배교회 신자 500여명과 환경을 살리겠다며‘푸른 평화 운동’에 나선 것이다.‘ 평화 운동’이라 하자니 너무 종교적이었고, 녹색보단‘푸른’지구가 좋았다. 그가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은 독특했다. 91년 낙동강 페놀유출사건이터졌을땐,‘ 폐식용유로만든비누’를 히트시켰다. 합성세제를 쓰지 말자는 뜻이었다. 처음엔 공짜로 가져가라고 했지만,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돈 내고 가져가시라”그랬다. 미용실에서도 비누로 머리를 감길 정도였다. 지금은 수제 비누 만들기가 일상적인 취미로 자리 잡았지만, 그땐 신기한 풍경이었다.

“신부가 성당 미사나 지낼 것이지, 사회문제에 관심은 왜?”라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다. 신자들도 어리둥절했다. 정 신부는“종교란 성당을 더 짓기보단 지역사회의 ‘환풍기’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인이 사회에서 해야 할 몫이‘소통’의 역할이라고도 생각했다.

환경 다음 단계는‘먹거리’였다.‘ 우리밀 살리기’‘유기농산물 직거래’를 외쳤다. 20년 전 얘기다. 환경 운동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수입밀·제초제 문제를 좌시할 수 없었다.

정 신부는 93년 대구시 달서구 상인성당 옆에 10평짜리 작은 매장을 열었다. 신자들 중심으로 100명이 알음알음 조합원 역할을 했다. 출자금 개념도 없었다. 우유팩 모아서 재생 휴지도 만들고, 기금을 내면 폐식용유로 만든 비누를 주는 등 물물교환 수준이었다. 성당 마당이 직거래 장터가 됐다. 배추도, 쌀도, 감자도 팔았다. 아이들 먹거리에 관심이 있던 주부 신자들이 주축이었다. 핵심은 지역 농산물을 지역 사람이 살린다는 것. 로컬푸드(local food) 거래를 원칙으로, 대구·경북 지역 생산자를 대상으로 했다. 매장에선‘밥상 먹거리’를 중심으로 물품도 구비했고 점차 정회원·준회원·예비회원 등 시스템을 만들었다. 임대료를 내고 사용했던 점포도 이젠 생협 소유의 건물이 됐다. 정 신부는“처음엔 직원들 월급도 못 줄 정도로‘운동’의 성격이 강했는데, 지금은 4대보험까지 준다”고 했다. 정 신부가 만든 푸른평화생협은 한살림생협(86년)에 이어 둘째로 오래된 생협이다. 대구·경북 시내 6개 매장을 운영하며 1500여명의‘지역 조합원’을 거느린다.

◇산골 폐교에서 살았던 10년…“아이들은 속도가 다를 뿐”

지난 2003년, 경북 영천 산골 마을로 들어가 폐교에서 대안교육을 시작했을 때도 비판적인 시선은 여전했다. 처음엔“사이비 종교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지배적이었다.

환경, 먹거리, 다음엔 왜‘교육’일까. 환경 운동을 하다 보니 미래 세대를 준비하는 일도 숙명(宿命)처럼 느껴져서다. 주말마다‘자연체험형’학교를 열었다. 이름은‘산자연학교’. 황토 염색하자, 감자 구워 먹자, 반딧불 보러 가자…. 자연 속 소소한 재미를 찾게 해주고 싶었다. 콘크리트 속에서 온종일 경쟁 모드인 아이들에게 생명에 대한 감성을 키워주고자 했다.

5년이 지나자, 지역 주민들도 인정해줬다. 2007년엔 종일반 대안학교로 전환했다. 초·중·고등학생 누구나 올 수 있는 열린 학교였다. 마음이 아픈 아이, 소통이 어려운 아이들도 왔다(정 신부는 자폐증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는 아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학생들은 기숙생활을 하면서 직접 유기농법으로 텃밭도 가꾼다. 지열을 이용해 기숙사 냉난방을 하고, 박테리아를 활용해 화장실 인분을 처리한다. 영어, 수학 같은 기초 과목과 함께 도예, 농사등 대안 교과목도 배우고 감성을 키우는 예체능을 특히 강조한다. 첫해 입학생은 7명이었는데, 재학생이 많을 땐 70명에 달했다. 정 신부는 아이들과 전국 모든 산지를 누비며 좋은 먹거리를 찾아다니고, 공도 차면서 산자연학교 교장으로 10년을 보냈다. 아이들과 함께 뒹굴었던 10년, 정 신부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가슴에 눈이 하나 더 생긴 게 전부야. 아이들 어리석음을 보면서도, 기다려주고 또 기다려줘야 하거든. 2007년에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이가 학교에 들어왔는데, 석 달 동안 한마디 말을 안 했어. 그러다가 100일 만에 처음 말을 한 게‘아저씨, 모자 주세요’였어. 얘가 말을 할 줄 아는지 전혀 몰랐어. 부모도, 선생도 아이를‘아스퍼거 장애(일종의 자폐성 장애)’라고 규정했었어. 마음을 여니깐 점차 달라지더라고. 이 아이는 지금 대구의 한 일반고에서 공부하고 있어. 처음엔상상도못한일이야.‘ 얘는제발나갔으면좋겠다’고하는 말썽꾼도 있었지. 우리가 안 품으면 누가 품어주겠나 싶어서 기다렸어. 그런데 얘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운동장에서 큰절을 하고 가더라고. 까칠하고, 힘들고, 소위 못됐다고 말하는 애들일수록 회복 가능성이 있는 애들이야. 몰아치면 회복이 불가능하지만 기다려주면 가능해. 아이마다 속도가 다를 뿐이야.”

산자연학교에선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가 회복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정 신부는“인위적으로 아이들을 ‘사육’하다시피 교육하니 무기력, 우울증, 짜증, 폭력이란 부작용이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작년엔 선천적 신경섬유종이란 병을 가진 아이가 입학했는데, 1년 만에 병도 깨끗이 나았다.

한 달에 한 번은 응급실에 가서 3박 4일씩 링거 주사를 맞을 정도로 심각한 아이였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외식도 거뜬할 정도다. 그는 “자연이 그대로 자연이듯, 사육이 아닌 교육 본연의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2014년부터 산자연학교는 교육부에서 정식으로 인가된 중등부 대안학교로 새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정 신부는 홀연 학교를 떠났다.

◇인생 제2막의 핵심, 젊은이들이 ‘일하는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

“올해가 60이야. 아이들이 흰머리보다 까만 머리를 좋아하더라고(웃음). 신부는 70세가 정년인데, 나머지 10년은 내 삶을 정리해 봐야겠다 싶어. 미래 세대에게 기회를 자꾸 ‘패스(pass)’해주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그래야 젊은이들도 웃을 수 있어. 축구에서도 자기가 공을 잘 찬다고 혼자 공을 가지고 있으면 공을 못 차는 사람은 평생 골을 넣을 기회조차 못 얻어. 어리숙해 보이고, 불안해 보여도 전달해줘야 해. 기득권을 가진 50~60대 선배들이 청년들한테 멋있게 공을 패스해줘야 해. ‘너희 스스로 돈 벌어’라고 말하는데, 예전엔 대학 졸업장만 있어도 다 먹고살았지만 지금은 달라. 종잣돈 한 푼 없으면 어렵거든.”

정 신부가 지금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일자리 문제’다. 산자연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늘어날 때마다 ‘삼포 세대(연애·결혼·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란 신조어가 마음에 더 아프게 와 닿았다. “요즘엔 직장 들어가는 게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들 하지?” 이 때문에 올해부턴 대구·경북 지역에서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비영리 법인인 ‘커뮤니티와 경제’ 이사장을 맡아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역사회 안에서 청년들이 일자리를 ‘직접’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오는 9월 경북 경산 하양역 근처에 고등교육 대안학교인 ‘소나무학교’ 개교를 준비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산자연학교의 중등부만 정식 대안학교로 인정을 받으면서 고등학생 연배인 아이들(17~19세)은 갈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년 과정과 대학 2년 과정을 합친 5년제 교육과정으로 ‘직업학교’를 만들 예정이다.

“공부에 흥미가 있는 애들은 대학 진학을 하지만, 아니라면 일찌감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해. 단, 인문학적 소양은 중요해. 포창마차를 열어도 철학이 있어야 성공하거든. 내가 잘하는 게 뭔지 발견하는 과정을 3년으로 잡고 있어. 예술이면 예술, 요리면 요리, 수공예면 수공예. 다양한 직업군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되 인문학이 필수 교양인 거지. 대학 가서 졸업장만 따려고 하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서 ‘일을 하라’는 것이 핵심이야. 그게 행복한 삶을 사는 길이야.”

경북 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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