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화)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⑤ ‘신고의무자’ 책임 묻기 전 예방 교육 먼저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5)신고의무자, 촘촘한 안전망 역할 하려면

‘상세 불명의 두개골 내 손상’ ‘대퇴부 골절’ ‘양쪽 손·발 2도 화상’…. 지난해 10월 계모의 학대로 세상을 떠난 울주군 서현양의 병원 진단 기록이다. 여덟 살 아동이 “그냥 다쳤다”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다. 불볕 더위에도 긴 소매 옷을 입고 등교했고, 육안으로 멍 자국이 보였으며, 잦은 결석이나 지각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초등학교 교사 2명, 병원 의사 2명, 간호사 1명, 학원장과 학원교사 2명 등 총 7명이 서현양의 학대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현행법상 모두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유치원집 및 학교 교사·의사 등 신고의무자들의 아동학대 신고율이 30%대에 그친다.

지난해 12월 31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 특례법)’과 개정된 아동복지법이 통과된 이후, 정부는 “신고의무자 역할을 강화시켰다”고 발표했다. 교사·의료인 등 22개이던 신고의무자 직군도 24개 직군 140만명으로 확대하고, 300만원이던 과태료도 500만원으로 올렸다. 과연 이 특례법이 시행되면 ‘제2의 서현이’는 주변 안전망을 통해 걸러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법안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려면 3가지 맹점을 잘 극복해야 한다고”고 주장한다.

◇맹점 1. 신고의무자 증명 어떻게 할까… ‘몰랐다’고 하면 땡?

“한번은 ‘어떤 집에서 부부 싸움을 심하게 해 아이들이 걱정된다’며 기관으로 신고가 들어왔다. 부모 모두 알코올 중독이었다. 현장에 가보니 엄마가 싸우면서 던진 유리병이 깨져,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여자아이의 팔뚝에 깊이 박혔다. 응급수술을 하러 병원에 가보니 둘째는 머리가 빡빡 밀려 있었고 초등학교 6학년인 언니는 귀가 찢어져서 봉합수술을 한 상태였다. 2주 전에도 부부가 크게 싸우다 분에 못 이겨,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었다. 괘씸한 마음에 학교 선생님과 봉합수술 의사를 ‘신고의무자’ 과태료 부과로 신고하려 했는데, 지자체에서는 ‘조사 규정이 없어 못한다’고 하더라.”(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신고의무자가 신고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이 2013년 통과된 이후 지금까지 딱 1건만 과태료가 부과됐다. ‘신고의무자가 학대 사실을 알고 있었다’거나 ‘의심할 여지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경상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돼서 조사하다 보니 아이 주변 어린이집 교사, 사회복지 공무원, 방과후학교 지도사 등 정황상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게 명백했지만 계속 상담만 해주고 묵인하던 상황이었다”며 “‘신고 절차’ 자체를 모르거나 본인이 ‘신고의무자’인지 모른다고 하면 무턱대고 부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고, 지자체에서도 흐지부지 넘겼다”고 했다.

‘누가’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는가를 두고도 ‘책임 떠넘기기’가 이뤄지는 형편이다. 통상 과태료 부과의 주체는 지자체이지만, 법조문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다 보니 지자체는 경찰서로, 경찰서는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책임을 넘긴다는 것. 한 현장 전문가는 “같은 지역사회 내에서 호흡해야 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서 다른 기관 관계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기엔 부담이 크다”며 “구체적으로 부과 주체를 명시하지 않으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의사·교사 등 아이들을 둘러싼 ‘지역사회 안전망’이 제 기능을 하도록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내 주변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어른들의 당연한 책무’라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 계모 살인사건 피의자 공판 당시 서현양 친모는 ‘처벌 강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주완중 기자
의사·교사 등 아이들을 둘러싼 ‘지역사회 안전망’이 제 기능을 하도록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내 주변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어른들의 당연한 책무’라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 계모 살인사건 피의자 공판 당시 서현양 친모는 ‘처벌 강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주완중 기자

◇맹점 2. 신고의무자 ‘신원 보호’ 어떻게 하나… 언론 취재과정 신원 노출 잦아

신고의무자들의 고충도 있다. 법적으로 ‘신고의무자’의 신원이 100% 보장된다고 해도, 작은 지역사회 안에서 누가 신고했는지 추측이 가능해 ‘신원 보호’가 어려운 상황이 많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신고의무자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서현이를 최초 신고한 유치원 교사의 경우 오랜 경력을 지닌 보육 전문가였고, 이전부터 서현이 친부와 계모에게 전화해 “딸을 때리지 마라”며 수차례 이야기했지만, 막상 기관에 신고하려고 할 때에는 “개인적인 생활에 위협을 주진 않을까 겁이 났다”고 전했다는 후문이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동 학대가 심해 아이를 보호기관에 맡겨야 했던 할머니가 학교로 찾아가 담임교사에게 ‘네가 그랬냐’며 ‘데려오지 않으면 유서에 네 이름도 적고 자살할 것’이라고 협박해 신고한 교사가 힘들어했다”며 “신고의무자에겐 보복 위협이 적지 않은 부담”이라고 했다. 언론 취재 과정이나 경찰과의 공조 과정에서 신원이 노출되는 경우도 잦다. 경기 지역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은 “학대 행위자가 현직 검사여서 신고자가 많이 부담스러워하는 걸 한 시간여 동안 설득해서 겨우 신고를 받았는데, 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신고자 신분이 드러날 뻔했다”며 “파출소와 지구대, 형사들에게까지 일일이 전화해 신고자 신원을 철저하게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2013년 의무자 역할 강화 법 통과 후 실제 과태료 부과한 사례는 단 1차례

무턱대고 부과 어려워… 보복 위협도 부담

외국은 관련자 대상으로 지속적인 교육… 책무 다하지 않으면 자격 박탈까지

◇맹점 3. 신고의무자들의 신고가 급증한다면?… 그 아래 그물망엔 구멍이 ‘숭숭’

“신고의무자들로부터 신고가 계속 증가해도 문제다. 9월 특례법 시행을 앞두고, 취약 계층을 담당하는 사회복지 공무원이나 경찰로부터 신고율이 급증하고 있다. ‘괜히 문제 생기면 책임 소재 물을 일 만들지 말고, 고위험군 아동 사례는 최대한 빨리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넘기자’는 분위기다. 문제는 현 상태로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소화해 낼 여력이 없다. 드림스타트센터만도 전국 211개. 경찰서·파출소는 수십만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국 다 합쳐야 50개다. 쏟아지는 신고를 어떻게 감당하겠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한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올해 9월 특례법 시행을 앞두고 아동학대 신고유입률은 급증하는 추세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신고량은 총 495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781건보다 30% 이상 증가했다. 저녁 7시 이후 경찰로부터의 야간 신고 접수 사례는 200% 이상 증가했다. 지방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더는 못한다’며 관두는 직원들도 많고, 근래 한 아동보호기관 관장님도 일을 그만뒀다”며 “신고망 그물이 촘촘해진다 해도, 그 아래 받쳐줄 그물망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특히 모든 신고의무자를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 인식 개선 교육이 이뤄져야 하지만, 당장 신고된 사건 처리에만 급급하다 보니 장기적인 교육은 엄두도 내기 힘든 실정이다. 김정미 경기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현재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140만 신고의무자에게 메일을 보내고 교육 자료를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리긴 했지만, 모든 신고의무자를 대상으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사건 나고 ‘누가 과태료 얼마냐’고 책임을 따져 묻기 전에, ‘예방’을 위한 교육이 강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외국에서는 교사나 사회복지사, 의사 등 아동 관련 직군 교육과정에선 ‘아동학대’에 대한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책무를 다하지 않으면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한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예비 의사나 사회복지사 교육과정, 보수교육 과정 등에서 ‘아동학대 교육’을 의무화해 확대 민감도를 높이는 게 필수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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