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시민 장터’ 서울 곳곳에 활짝 피었습니다

미상_사진_사회적경제_서울13개시민장터_2014지난달 20일, ‘서울시민장터협의회’가 출범했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1년가량 서울 시내 곳곳에서 장터를 열고 있는 일상예술창작센터, 쌈지농부, 방물단, 마을공동체 ‘품애’ 등 15곳의 민간단체가 모인 것이다. 이들의 핵심 키워드는 ‘지역 활성화’와 ‘대안문화 제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場)’을 열면서, 지역문화를 새롭게 만들어보겠다는 의미다. 민간단체들은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거나, 사회적기업끼리 파트너를 맺으면서 장터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민장터협의회 공동대표인 천재박(35) 쌈지농부 실장은 “작년부턴 지역 곳곳에서 장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면서 “그동안 장터 운영에 관한 법령도 마련되지 않아 장소 문제·지자체와의 관계 등 행정적인 어려움을 겪었는데 ‘시민장터’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개선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김영등(46) 일상예술창작센터 대표는 “한때 ‘아나바다 알뜰장터’ 시장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지만 공감대가 확산되지 못해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면서 “장터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문화로 깊숙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색다른 장터의 중심에 뛰어든 이들은 사회적기업·협동조합에 빠진 청년이 대다수다. 21세기판 도심 명물 장터 현장을 찾아, 그 의미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미상_그래픽_사회적경제_서울13대명물장터_2014

계단서 펼쳐지는 이색장터 ‘이태원 계단장’

“차 지나갑니다. 비켜주세요!”

지난달 31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이태원 우사단 마을의 이색장터 ‘계단장’ 오픈 30분 전, 스태프들의 외침이 귀를 때렸다. 장터 개장을 준비하는 차들이 오고 가는 사이, 이미 줄은 10m가량 늘어서 있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서울의 유일한 이슬람 사원 뒤쪽 60여개 계단은 ‘장터’가 된다. 이름하여 ‘계단장(場)’이다. 계단의 폭은 성인 10명이 나란히 서면 꽉 찰 정도. 가운데에 있는 난간을 두고 왼쪽과 오른쪽 양 끝에 판매자들이 서서 물건을 판다. 사람이 너무 몰릴 땐, 특히 계단에 진열된 물건이 밟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신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수아(36)·최진하(30)씨는 소형 밴을 개조한 ‘맥코이버스’에서 직접 만든 레몬청과 자몽청을 팔고, 계단 중간쯤에는 디자이너인 김하늘(26)씨가 취미로 만든 산딸기 젤리를 보여줬다. 아들 성대훈(11)군과 함께 계단장을 찾은 엄마 백현숙(47)씨는 “경기도 이천에서 페이스북을 보고 찾아왔는데, 창의적인 에너지가 많아서 좋다”고 했다. 오후 1시에는 우사단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보는 1시간 30분짜리 ‘동동투어’도 시작됐다. 가짜 콧수염을 붙이고 수염 콘테스트에 참가한 심우상(32·경기도 의정부시)씨는 “단순히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장터와 달리 ‘계단장’은 ‘문화’까지 만드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계단에서 펼쳐지는 이색 장터 '이태원 계단장'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청년기자단
계단에서 펼쳐지는 이색 장터 ‘이태원 계단장’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청년기자단

이태원 ‘계단장’의 기획은 동네 아티스트와 주민들의 친목 모임인 ‘우사단단’에서 시작됐다. 2012년 7월, 청년 창업단체인 ‘청년장사꾼’은 우사단로 언덕에 카페 ‘벗’을 열었다. 이들의 고민은 지역이 활성화되고, 지역 상권과 더불어 성장하는 것. 오픈한 지 한 달 후 바로 ‘우사단단’ 마을 모임을 만든 이유다. 오단(25) 우사단단 대표는 “우사단 마을이 재개발 지구(한남개발촉진구역 제3구역)로도 지정된 낙후한 마을이라 ‘무서운 동네’라는 인식이 있어서, 살기 좋고 재밌는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초기엔 지인들을 판매자로 끌어왔지만, 장터를 다녀간 사람들의 블로그 리뷰·입소문 덕에 참여자가 갈수록 늘었다. 매회 60~70팀을 신청받는데, 지금은 600팀이나 지원한다. 참가자 수수료는 없고, 개인 판매자가 부스나 판매 물품 등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 찾는 사람이 많아 5월 말부터 경찰까지 요청했고, 동네를 청소해야 계단장 자리 배치 우선권을 줬다. 계단장을 연 지 1년, ’10초 캐리커처’를 그리던 한 판매자는 동네 명함 디자이너까지 됐다. 우사단 마을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전아미(31)씨는 지난주에 아예 이사를 왔다. 전씨는 “계단장이 열릴 때면 손님은 4~5배가량 늘고, 매출은 2배 이상 껑충 뛴다”면서 “젊은 사람도 많고 서로 정이 많아 살기 좋은 동네”라고 소개했다.

경의선 폐선 부지가 도심장터로 ‘공덕동 늘장’

서울시 마포구 공덕역(지하철 5·6호선, 공항철도) 1번 출구 인근 경의선 폐선 부지(3280㎡·약 1000평)엔 항상 장이 열린다. 지난해부터 ‘늘장(늘 열리는 시민의 장터)’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개장 준비)을 제외하곤 상설 시장이 열리고 있다. 지난 1일 늘장에서 만난 김빛나(27·서울 은평구)씨는 진주 팔찌와 목걸이 등 직접 만든 수공예품 브랜드의 장점을 일일이 설명하며, 능숙하게 흥정에 나섰다. “이거 백화점에서는 6만8000원에 파는 거예요. 여기서 사면 5만원까지 해 드려요!”

늘장은 친환경과 문화가 어우러진 장터다. 늘장에 자리를 잡은 13개 상설 업체 중 ‘와우북 살롱’의 늘샘(31) 매니저는 “한 달에 한 번씩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그림책 읽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살롱 안에는 ‘임대책장’도 마련해 인근 주민들이 책 판매를 위탁하기도 하고, 책 5권을 기부하면 음료 한 잔을 무료로 주는 등 ‘책 기부 문화’도 만든다. 늘장에 참여하는 단체들의 고민은 ‘이 공간을 지역민들의 실질적 수요에 맞춰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이다. 참가비 5000원을 내면 수공예품·회화·농작물 판매 등 ‘손작업’을 하는 예술가들과 시민들은 주말 벼룩시장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마포구 주민은 절반 가격이다). 친환경 재활용 제품은 우선 선발 대상이다. 늘장에서 ‘마켓인유’ 재사용 물품점을 운영 중인 박현진(42) 늘장협의회 대표는 “북카페에선 책도 보고, ‘자연의 부엌 마음먹기’ 카페에선 햇빛 건조기로 사과·귤 조각을 말려보기도 하고, 저녁엔 ‘늘씨네’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며 “주민들의 생활 깊숙이 닿아있는 열린 장터이자 놀이 공간을 지향한다”고 했다(‘자연의 부엌 마음먹기’ 카페는 전기를 쓰지 않는 비전력 로스터기로 커피콩을 볶거나, 흙으로 만든 화덕에서 피자나 채소가 구워져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친환경을 바탕으로 하는 ‘적정기술’ 공작소다).

젊은이도 어르신도, 장터에서 영화 보고 웃도 만들고

직접 생산한 물품 사려면 ‘연남동 동진 7일장’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3번 출구. 번화한 홍대 거리를 등지고 골목을 따라 10여분 걷자, 주위 건물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며 1층짜리 상가가 이어졌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공방 서너 곳을 지나자 동진시장 초입에 다다랐다. 좁은 통로를 지나 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각종 농수산물·옷·잡화 등 다양한 물품이 놓인 노란색 평상 4개가 눈에 들어왔다. 매주 화요일마다 열리는 ‘동진 7일장’은 가게 10곳이 둘러싼 직사각형의 ‘공동마당’을 활용한 직거래 장터다. 강원도 횡성의 농부협동조합인 ‘농부애뜰’이 친환경 사료로 키운 한우와 유기농 두부, 유정란, 충남 예산 농장의 복숭아와 오디로 만든 자연산 식초 등 10여종의 농·축산물이 소박하게 진열됐다. 장터에 드나드는 사람들 모두 “직거래라 믿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목~토요일에는 폐목재로 가구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이 동진시장 내에서 목공·수리 작업 공간을 운영한다.

다른 농산물 직거래 장터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동진 7일장’을 운영하는 모자란협동조합의 최희진(31) 상임이사는 “농사, 목공일 등 손노동으로 이뤄지는 생산의 가치가 인정받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모자란협동조합은 서촌공방협동조합, 쌈지농부,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등 ‘손노동’과 관련된 10개 단체가 연합한 협동조합이다. 최 이사도 2011년부터 공정 무역 기업 ‘어스맨(Earthman)’을 운영하며, 라오스 지역의 마을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만드는 스카프·파우치 등을 판매하고 있다.

연남동의 독특한 마을 분위기도 한몫했다. 오래되고 낡고, 비활성화된 지역이었기에 더 관심이 갔다. 최 이사는 “15년 전부터 동진시장은 사실상 장터로서의 기능을 멈췄다”면서 “젊은층과 노인층 중심으로 1인 가구가 많은 동네라 신구(新舊) 세대가 어울리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장터를 구경하는 사람도 20대 젊은이부터 60대 노부부까지 다양했다. 45년 동안 철물점을 운영한 상인 정순애(67)씨는 “가까이에 장이 열리니깐 구경도 할 수 있고 마음에 들면 살 물건도 있다”면서 “젊은이들이 장터 주위로 많이 오고 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①연남동 마을시장 따뜻한 남쪽 장터 /일상예술창작센터 제공 ②명동 명랑시장 /일상예술창작센터 제공 ③공덕동 늘장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청년기자단
①연남동 마을시장 따뜻한 남쪽 장터 /일상예술창작센터 제공 ②명동 명랑시장 /일상예술창작센터 제공 ③공덕동 늘장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청년기자단

예술이 있는 문화 장터 ‘홍대 앞ㆍ연남동ㆍ명동’

장터 문화의 선구자인 사회적기업 ‘일상예술창작센터’는 서울 시내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 장터를 기획한다. 10년 전부터 홍대 놀이터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홍대 앞 예술시장 프리마켓’도 이들의 작품. 김영등 일상예술창작센터 대표는 “예술가가 작업실이나 하얀 갤러리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했다. 매주 참가비 1만원을 내고 참여하는 아티스트는 무려 120여명, 평균 1만명 이상의 시민이 장터에 들른다. 이미 홍대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김 대표는 지난해부터는 마포구 연남동 길공원 앞에서 두 달에 한 번씩 ‘연남동 마을시장 따뜻한 남쪽’ 장터를 연다. 이 장터에는 동네 주민과 연남동을 기반으로 하는 단체, 예술가까지 10명이 ‘마을시장기획단’을 꾸려 주민 참여 프로그램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지난 4월엔 주민들이 함께 국밥도 만들어 먹고, ‘대충 대강 수선집’이란 프로그램 이름으로 70대 할머니가 젊은이들과 함께 원피스를 만들었다. 오는 13일(금) 밤부터는 매주 명동 외환은행 삼각공원 안에서 ‘명랑시장’을 운영하며 명동만의 ‘야(夜)시장 문화’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온가족과 사회적 경제 체험을 ‘영등포 달시장’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백현(36)씨는 ‘마을 작가’다. 지난 2011년,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 앞마당에서 열린 ‘달시장’에 참여하면서 생기게 된 직업이다. 처음엔 평범한 주부로 장터에 참여했던 백씨는 그간 취미로 배웠던 페이스페인팅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서였다. 재활용품과 미술의 결합을 고민하던 그녀는 아이스크림 막대 바에다 그림을 그려 책갈피로 만드는 등 창의적 활동을 펼치는 어엿한 ‘예술가’다. 요즘엔 달시장에서 작가 섭외 일순위를 다툴 정도고, 두 아들은 조수로 참여한다. 달시장을 주관하는 ‘방물단’의 김영수(43) 대표는 “우울증을 앓던 할머니도 장터의 행복한 분위기를 느낀 후 전환점을 맞이하는 등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방물단’은 3년 전, 하자센터 청년들을 중심으로 ‘재밌는 사회적 경제 장터를 만들어보자’며 달시장을 시작했다. 초창기엔 트래블러스맵, 터치포굿, 영화제작소 ‘눈’ 등의 유명 사회적기업들이 참여했고, 요즘엔 의료사회적협동조합이 주민들의 건강을 체크하면서 지역민과 어우러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자전거 발전기를 이용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집에 모아놓은 종이가방 10개를 가져오면 에코백 하나로 교환도 가능하다. 일명 ‘친환경 장터’다. 매달 한 번, 장터에 참여할 80여개 업체를 선정하는데 3배 수 이상이 지원할 정도로 관심도 높아졌다. 참가비는 5000원이며, 매회 평균 1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문화 축제’다.

예술작가와 직접 소통하는 ‘헬로우 문래’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지하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부터 문래창작촌에 이르는 길이 ‘갤러리’로 변한다. 신진 예술 작가들의 작품을 평균 5만~10만원에 구입할 수 있는 ‘헬로우문래’ 장터가 열리기 때문이다. 예술의 대중화와 신진 작가들의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사회적기업 위누, 사회적기업 안테나, 사회적기업 방물단이 힘을 합친 것. 이들은 ‘헬로우문래협동조합’을 만들어 예술가와 대중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고자 힘쓰고 있다. 작품을 선보이고 싶은 아티스트들은 이메일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이 가능하며, 내부 심사를 거쳐 작가를 매회 25명 선발한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10차례가량 장터를 열면서, 아티스트 사이에 공감대도 얻고 있다. 예술가들의 작품 판로를 개척하는 사회적기업 위누 허미호(33) 대표는 “100만원이나 되는 작품은 대중이 선뜻 구매하기에 부담스러웠는데, 장터를 통해 대중이 살 수 있는 형태의 작품 시장이 개척됐다”고 했다.

장터 왔다 기부도 ‘피프티ㆍ뚝섬 아름다운 장터’

‘피프티 서울(FIFTY SEOUL)’은 마켓 수익금의 50%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벼룩시장이다(지금은 판매자들의 수익을 고려해 ‘자율 기부’로 운영 중이다). 패션업계 종사자(패션 저널리스트 홍석우씨, 패션지 크래커(cracker) 편집장 장석종씨, 아트디렉터 강민구씨) 3인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을 돕고자 시작한 장터다. 현재는 매월 둘째 주 토요일 한남동의 카페 겸 전시 공간인 ‘선인장 스페이스 웨이즈 오브 씽’에서 열린다. 홍석우(31)씨는 “지금까지는 세이브더칠드런·청소년단체 ‘두드림’ 등에 수익금을 기부했다”면서 “오는 14일 토요일에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1000만원의 누적 기부금(2014년 5월까지 970만원)이 모이면 새로운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와 아름다운가게가 함께 운영하는 ‘뚝섬 아름다운장터’에서도 판매금액을 기부한다. ‘뚝섬 아름다운장터’는 일반시민장터, 단체 장터(최소 10인 이상)뿐만 아니라 어린이 장터(초등학생)까지 개설해 ‘재사용 문화’를 체험하는 ‘녹색 장터’다. 지난 2004년부터 누적된 판매 기부금은 3억4500만원, 관람객은 400만명에 이른다.

※이 기사에는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현대해상이 함께하는 소셜에디터스쿨 ‘청년, 세상을 담다’ 과정에 실습 중인 권순완, 김민정, 이예림, 이담미, 김지현 청년기자단이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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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호 202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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