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장애인 채용 전담 직원도 있어… 중증 장애인 82명이 근무하는 비결은

유니클로 장애인 채용 현장
업무평가 통한 정규직 전환도 33명 본사 직원 주 1회 각 점포 방문해 점장과 장애인 사원
부모와 면담 업무 분석과 꾸준한 인식개선 결과 ‘점포와 장애인 사원 모두 만족’

‘전국 69개 매장에서 중증 장애인 사원 82명 채용.’

해외 대기업 사례가 아니다.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형) 회사 유니클로 한국 지사(에프알엘코리아)의 장애인 사원 채용 실태다. 이들 중 업무 평가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원도 33명이나 된다. 지난 5월부터는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와 협약을 맺고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을 채용하는 등 과감한 장애인 고용 정책을 보이고 있다. 수많은 기업이 장애인 고용 의무 비율을 지키는 대신 장애인고용부담금으로 때우는 상황에서, 유니클로는 어떻게 ‘한 점포당 한 명 이상 장애인 직원 근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걸까.

유니클로 신림포도몰점의 장애인 사원 한정범 씨가 동료 직원과 함께 일하는 모습./에프알엘코리아 제공
유니클로 신림포도몰점의 장애인 사원 한정범 씨가 동료 직원과 함께 일하는 모습./에프알엘코리아 제공

◇장애인 사원이 편히 일할 수 있는 직무 환경 마련에 노력 기울여

지난 16일, 서울 신림동의 복합쇼핑몰 포도몰 지하 2층에 위치한 유니클로 매장. 사은행사를 맞아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이 직원들과 상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보랏빛 폴로 티셔츠와 청바지를 차려입은 남자 직원 한 명이 창고에서 의류 도난을 방지하는 보안 태그(Tag)를 한 아름 들고 나왔다. “현종씨, 방금 매장 입구에 새로 전시된 청바지에 태그를 붙여 주세요.” 박세희 유니클로 신림포도몰 점장의 지시를 들은 김현종(28·지적장애 3급)씨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방긋 미소를 지으며 청바지에 태그를 척척 붙이기 시작했다. 일손이 비어 있던 비장애인 직원 한 명도 그의 옆에 다가와 함께 작업을 거들었다.

현재 유니클로에 채용된 중증 장애인 82명의 유형을 보면 지적장애인이 82%, 정신장애인 9%, 기타장애인 9%(뇌병변, 자폐성장애)이다. 장애인 사원은 적게는 직원 15명, 많게는 100여명과 함께 매장에서 일한다. 이들은 무슨 일을 할까. 유니클로는 아예 장애인 채용을 담당하는 전담 직원을 두고, 2010년 7월부터 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매장의 전체 업무 과정을 분석했다. 장준혁 총무&ES(Employee Satisfaction)추진팀 사원은 “SPA 브랜드는 상품 수가 많고 회전율도 높기 때문에 보안 태그 부착, 상품 보충 및 진열 준비, 가격 변경 작업 등 정확하고 신속한 매장 관리 업무가 필수인데 장애인 사원이 여기서 강점을 보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2010년 10월, 업무 분석을 끝낸 후 유니클로 명동점은 지적장애인 3명을 시험 채용해봤다. 긍정적인 반응을 접하자 6개월 후 중증 장애인 채용이 본격 확대됐다. 업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근무 시간은 주 5일 5시간으로 제한했고, 채용 초기에는 장애인 사원이 매장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한 점포에 2명 이상 장애인 사원을 고용하기도 했다. 2010년 0.53%를 기록하던 유니클로의 장애인 고용률은 2013년 6% 가까이 수직 상승했다(중증 장애인 1인을 채용할 경우 경증 장애인 2명을 고용한 것으로 계산하는 ‘더블카운트’가 적용된다). 2010년 1억5000만원 가까이 지출했던 고용부담금 액수도 현재는 ‘0원’이다. 황현식 총무&ES추진팀 매니저는 “앞으로는 장애인 사원을 대상으로 한 근무 만족도 향상 프로그램, 고충상담 및 심리케어 도입 등 질적인 측면도 더욱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니클로는 연 2회 점장을 대상으로 한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갖는다. /에프알엘코리아 제공
유니클로는 연 2회 점장을 대상으로 한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갖는다. /에프알엘코리아 제공

◇장애에 대한 편견 없애기 위해 정기 인식 개선 교육을 도입해

이 과정이 물론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신현영 유니클로 명동점 점장은 “처음 회사에서 장애인 사원을 고용할 때 ‘업무를 가르치면 이해할 수 있을까’ ‘매장에서 이들이 실수를 하지 않을까’라는 사원들의 우려가 많았다”고 밝혔다. 실제 초기에는 ‘장애인 사원이 비장애인 사원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한다’ ‘장애인 사원이 대화를 할 때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특정 신체 부위를 바라보는 것 같다’는 의견이 본사로 접수된 적도 있다. 장준혁 사원은 “채용 전에 점포를 대상으로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진행했지만, 사원 평균 나이가 20대 초반이다 보니 장애인과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모르거나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발생했다”며 “직장을 가족처럼 여기는 정신장애인의 특성상 시간을 가리지 않고 직원 및 점장에게 개인적인 연락을 하는 것 등도 힘든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사에서는 주 1회 점포를 방문해 점장과 장애 사원, 장애 사원 부모님과 면담을 통해 의견을 조율했다. 황현식 매니저는 “장애인 사원에 대한 불만이 자주 발생하는 점포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점포 관리자의 장애 인식이 크게 부족한 지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이후 장애인고용공단 등과 협력해 점장 대상으로 연 2회 정기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고, 또 직원 채용연수 때 장애 사원에 관한 교육 과정을 넣어 점포에 배치되기 전 미리 인지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했다”고 말했다.

꾸준한 인식 개선 결과, 현재는 ‘장애인 사원이 성실하게 일을 해 만족스럽다’ ‘우리 점포에서도 장애인 사원을 채용하고 싶다’는 의견이 들어올 정도다. 신현영 명동점 점장 또한 “몇 개월 동안 함께 일을 해보니 장애 사원들은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고, ‘이렇게 해주세요’ 하면 반드시 그걸 지키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고 책임감이 강하더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게 됐다” “일을 더 하고 싶다”…장애인 사원들에게 찾아온 변화

업무 평가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장애인 사원의 수는 어느덧 33명에 달한다. /에프알엘코리아 제공
업무 평가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장애인 사원의 수는 어느덧 33명에 달한다. /에프알엘코리아 제공

유니클로의 장애인 채용 덕분에 82명의 인생이 바뀌었다. 목에 걸린 직원 명찰을 자랑스레 들어 보이는 한정범(22·지적장애 3급)씨도 그중 하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번번이 일자리 찾기에 실패한 한씨는 한 빵집에서 시급 6500원을 받으며 1년 동안 빵 포장과 가게 청소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2012년 유니클로 신림포도몰점에 입사하면서 한씨의 삶은 변하기 시작했다. 한씨는 “처음에는 비장애인 사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무섭고 두려워 ‘일을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다”고 했다. 유니클로에서 일한 지 2년이 지난 올해 1월, 한씨는 고대하던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월급을 100만원 가까이 받게 돼서 기쁜데 소득공제도 전보다 많이 나가서 안타깝다”는 농담을 던진 한씨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1년 반 전부터 디제이(DJ) 공부를 시작했어요. 월급으로 장비를 빌려 연습도 하고 있고요. 기회가 된다면 작곡을 해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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