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사회 구석에 관심 돌리니 길이 열렸다

청년, 사회적기업에 뛰어들다
국제 구호서 소외된 남미의 빈곤에 관심 이면지 재활용 노트 선물·수공예품 판매
예술가와 대중을 서로 잇는 다리 역할 페스티벌·소액 예술품 마켓 개최
비빔밥 홍보 위해 세계 돌며 시식행사 장차 서구 식습관 문제 해결이 목표

“청년들아, ‘재미없게’ 돈 벌지 말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재밌는 일’에 나서라.”

사회적기업가의 대부(大父)인 무하마드 유누스의 일침이다(무하마드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을 세워, 방글라데시 빈민들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 운동을 펼친 공로로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청년 실업자 100만명 시대에 이렇게 ‘재밌게 돈 버는’ 일에 뛰어든 청년 사회적기업가 3인방을 만났다. 이들은 카이스트 경영대학 사회적기업 MBA 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이기도 하다.

고귀현씨는 힐링여행을 떠난 남미에서 빈곤을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비빔밥유랑단·어도네이션·위누 제공
고귀현씨는 힐링여행을 떠난 남미에서 빈곤을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비빔밥유랑단·어도네이션·위누 제공

☞ “수공예품 판매로 남미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겠다” ―’어도네이션’ 고귀현 대표

고귀현(28)씨는 2012년 초, 남미로 홀연 배낭여행을 떠났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법학’을 전공하며 진로 고민은 커져갔고, 오랫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와도 이별한 직후였다. “인생의 답을 얻겠다”며 떠난 여행지에서 고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구걸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엄마가 만든 수공예 제품을 팔기도 했다. 고씨는 “여행자로서 관광지를 즐겼지만, 그 땅의 주인인 현지인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아 죄의식이 느껴졌다”고 했다. 3개월의 힐링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우연히 참석한 행사에서 사회적기업가(시지온 김미균 대표, 트리플래닛 김형수 대표, 프리메드 강지원 대표)의 강연을 들었다. 사회를 바꾸는 전혀 다른 방식을 알게 됐다. 게다가 발표자들은 고씨와 거의 동갑내기였다. 도전이 됐다.

이틀 후 바로 실행에 옮겼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소셜벤처 대회가 단기 목표였다.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할 팀원을 꾸리고, 아이디어를 논의했다. 남미 아이들이 노트가 없어 쓰고 지우기를 수십 번 반복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버려지는 이면지를 선물상자로 만들고, 이 상자를 펼치면 공책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박스링크 프로젝트’를 생각해냈다. 결과는 우수상.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상금으로 실제 제품을 개발, 300권의 공책도 전달했다. 지난해엔 ‘어도네이션(Addonation)’이라는 소셜벤처를 창업, ‘크래프트 링크(http://www.craft-link.co.kr)’ 서비스까지 론칭했다. ‘크래프트 링크’는 남미 수공예품 구독 서비스로, 소비자가 한 달에 1만원의 돈을 이체하면(최대 6개월까지) 수공예품이 담긴 랜덤박스를 한 달에 한 번 배송받는다. 일정한 수익은 다시 아이들에게 축구공과 같은 놀이도구로 전달됐다. 해먹, 쿠션 등 쇼핑몰형 주문서비스도 있다. 현재 과테말라의 현지 NGO 및 수공예협동조합과 파트너십을 맺어, 가정에서는 수익이 증대되고 아이들은 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모델도 개발 중이다.

“UN이 발표한 영유아 영양실조 순위를 보면, 과테말라가 4위입니다. 아프리카 국가가 상위권을 다 차지할 것 같은데, 그건 착각이죠. 그만큼 남미에도 심각한 사회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에만 집중된 구호 활동 틀을 깨고 싶었습니다. 수공예품 구매가 세상을 바꾸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여행 마니아인 허미호씨는 해외 아티스트 생태계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위누’를 창업했다. /비빔밥유랑단·어도네이션·위누 제공
여행 마니아인 허미호씨는 해외 아티스트 생태계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위누’를 창업했다. /비빔밥유랑단·어도네이션·위누 제공

☞ “예술작가와 대중 사이의 ‘브리지’를 만들겠다” ―’위누’ 허미호 대표

허미호(33)씨가 사회적기업 ‘위누’를 창업한 지는 벌써 7년째다. 그동안 아이 둘이 생겼고, 워킹맘이자 사회적기업 무대에서 손꼽는 여성 CEO가 됐다. 창업 초기엔 ‘사회적기업’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그저 ‘돈을 못 버는 예술 작가들의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50개국이 넘는 해외 도시를 여행하며 수많은 아티스트를 만났지만, 한국만큼 작가와 대중이 만나는 접점이 적은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술작가의 26.6%가 연수입이 ‘0원’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허씨는 대학교 재학 시절, SK텔레콤 인턴으로 함께 일했던 친구 3명과 함께 아티스트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올리고 판매하는 오픈마켓형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었다. 결과는 참패였다.

“해외엔 예술 작품이 쉽게 거래되는 엣지(etsy.com)라는 서비스가 히트를 쳤어요. 처음 서비스를 만들 때, 미국 샌프란시스코 본사까지 찾아가서 운영 노하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달랐고, 신생 벤처인 우리가 ‘플랫폼’ 서비스를 하기엔 시기상조였습니다.”

실패의 자산은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허씨는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난 500~600명의 작가가 결국 오프라인 예술교육 프로젝트의 핵심 인재들이 됐다”고 했다. 위누는 서울시·경기도 등과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아트 상품을 제작한다. 이들은 아티스트와 프로젝트를 잇는 ‘브리지’ 역할을 한다. 올해로 3년째인 ‘아트업 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100명의 작가는 1박2일간 20여t의 폐자원을 활용해 예술작품으로 만들고, 이 과정에서 20만~30만명의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만난다(첫해에는 일산호수공원, 지난해에는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진행했다). 99%의 아티스트와 99%의 대중을 만나게 하겠다는, 그녀의 꿈이 이뤄진 셈이다. 4월부터 12월까지는 문래 창작촌에서 ‘헬로 문래’ 마켓을 열어, 5만원대의 작품을 월 1회 직거래 및 위탁 판매도 진행하고 있다. 네이버 문화재단과 연계, 시각예술작가들을 발굴해서 네티즌들에게 소개하는 ‘헬로우 아티스트(http://bit.ly/1qSnhE2)’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그녀는 “지금은 사업 첫해 실패했던 온라인 플랫폼 사업을 준비 중”이며 “이젠 차근차근 준비가 된 것 같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강상균씨는 서구의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비빔밥’전파를 선택했다. /비빔밥유랑단·어도네이션·위누 제공
강상균씨는 서구의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비빔밥’전파를 선택했다. /비빔밥유랑단·어도네이션·위누 제공

☞ “팝업레스토랑으로 창업의 성공 발판을 마련하겠다” ―’비빔밥 유랑단’ 강상균 단장

‘비빔밥 유랑단’은 2011년 4월부터 8개월간, 세계 15개국 23개 도시를 돌며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100번의 비빔밥 시식 행사를 열어 화제가 된 청년 단체다. 이들은 대기업·외국계 은행 등 잘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비를 털어 세계여행을 다니며 비빔밥을 홍보했고, 이 아이디어의 중심에는 강상균(33)씨가 있었다. 대학생 때 오토바이로 세계 일주를 하며 독도를 홍보했고, 대기업 영업직을 박차고 나와서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며 비빔밥 유랑단을 만든 청년이다. 지금까지 대학생·청년을 모집해 세계 명문대, 실리콘밸리 IT기업 등지를 방문해 ‘웰빙음식’으로서의 비빔밥을 알렸고, 지난 15일에는 비빔밥 유랑단 4기로 선발된 대학생 7명이 미국인의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캠페인을 펼치러 한국을 떠났다.

아직은 청년들의 활동이고 홍보회사에 가깝지만, 강씨가 발전시키고 싶은 모델은 ‘사회적기업’으로서의 비빔밥 유랑단이다. 특히 육류 위주의 서구 식습관을 해결하는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해외 사회적기업 버전에 가깝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식당을 빌려 팝업레스토랑(pop-up restaurant·하루에서 길게는 1~2달 정도로 단기간만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이틀 동안 운영해 수익을 냈던 경험은 또 다른 아이디어로 발전됐다.

“은퇴한 시니어층 중에는 장사를 시작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1억의 자금이 있다면, 원래 5000만원은 운영 자금으로 남겨둬야 합니다. 하지만 창업 관련 지식도 전무할뿐더러 인테리어비, 권리금이며 초기에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갑니다. 몇 달 운영하다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고, 마이너스 대출받아서 연명하다 결국은 빚 더미에 앉게 되는 것이 섣부른 창업의 사이클입니다. 작은 성공을 계속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팝업레스토랑이 운영된다면 작은 자본으로 대중에게 사업 아이템을 검증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물건을 많이 파는 것보다 ‘나의 생각·가치’가 팔릴 때 보람을 느낀다”면서 “비빔밥 유랑단이 가지는 ‘도전’의 상징성이 청년·시니어층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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