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소아암 어린이와 가족, 미소 되찾아주려 여행을 선물해요

선물공장 프로젝트
소아암 환자 가족여행 프로그램

“얘들아, 여기 바다거북이 헤엄을 치고 있어. 진짜 크다. 책이나 TV로는 보기는 했는데 이렇게 실물로 보니까 신기하다. 그렇지?”

지난달 20일, 푸른 빛이 감도는 한화 아쿠아플래닛 제주의 수족관을 거닐던 우점자(46)씨가 한 유리벽 앞에 서더니 들뜬 목소리로 가족을 향해 손짓했다. “응, 해양생물을 직접 보니까 아주 좋아요.” 검은색 비니 모자를 쓰고 새하얀 마스크로 입을 가린 박민성(17)군도 어머니의 옆으로 천천히 다가오더니 휴대폰을 꺼내 수족관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박군이 10년째 소아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여느 가족 관광객과 다를 바 없는 단란한 풍경이다. 이들은 지난달 19일부터 21일까지 비영리단체 ‘선물공장 프로젝트’에서 진행한 소아암 환자 가족여행 프로그램에 참가한 가정이다.

‘선물공장 프로젝트’는 매년 저소득 소아암 환자 가족 다섯 팀을 선정, 2박3일간 제주도 여행 기회를 제공한다. /선물공장 프로젝트 제공
‘선물공장 프로젝트’는 매년 저소득 소아암 환자 가족 다섯 팀을 선정, 2박3일간 제주도 여행 기회를 제공한다. /선물공장 프로젝트 제공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소아암 진료 인원수는 2006년 7798명에서 2012년 1만457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소아암 치료 기술이 발달하고 국가의 의료비 지원이 이뤄지면서 소아암 환아의 완치율은 80%대까지 올라갔지만, 통원치료와 병원 입원을 반복해야 하는 탓에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정서적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차준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기획사업국 국장은 “소아암 환자 가족은 서로에 대한 죄책감과 경제적 부담, 사회 구성원들과의 고립을 경험하면서 수많은 심리적 상처를 입게 된다”면서 “지역사회나 병원 등에서 개별적으로 심리정서 치료 사업을 수행하지만 지속적인 활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아직까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에서 10년 넘게 일한 경력을 가진 손은정(37) ‘선물공장 프로젝트’ 대표는 2013년 소아암 가족들에게 작은 힘을 주고자 단체를 창립했다. “많은 사람이 큰 재단이나 기관들만 소아암 환자 가족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가족들에게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선물공장 프로젝트는 매년 저소득 소아암 환자 가족 다섯 팀을 선정, 2박3일간 무상으로 제주도의 명소를 자유로이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프로젝트의 취지가 조금씩 알려지자 개인과 기업의 나눔도 늘어났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유캔펀딩’에서 온라인 모금을 진행한 결과 20일 만에 78명의 네티즌이 296만원을 지원했고, 엔씨소프트도 후원사로 동참했다.

행사 3일 차를 맞은 21일 아침, 긴장감이 가득했던 소아암 환자 가족들의 얼굴은 어느새 웃음꽃이 가득 핀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열일곱살 된 딸과 함께 행사에 참가한 윤재삼(54)씨는 “가족들과 여행을 가고 싶어도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려웠다”면서 “레일바이크를 타고 바닷가를 함께 걸으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삶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됐다”는 소감을 남겼다. 자원봉사자 조용래(33)씨는 “한 어머니가 손을 잡고 ‘우리 가족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씀하신 것이 눈에 선하다”면서 “평소 무관심하게 생각하던 일상의 나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손은정 대표는 “더 많은 소아암 환자들이 함께 여행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부모님들의 마음과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면서 “앞으로 지속적이고 책임감 있는 단체로 만들고 싶다”는 작은 꿈도 함께 내비쳤다.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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