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Cover Story] 얼어붙은 사회공헌 예산키워드는 글로벌·환경·문화

매출액 기준 30대 기업에 2014 신규 사회공헌 전략 묻다
올 한 해 경기 침체 여파로 30대 기업 중 19곳 매출 감소해
이 중 15곳, 사회공헌 예산 동결·축소
가장 중요한 사회이슈 3가지 물으니… ‘아동 정서지원·건강·안전·청년 창업’
30대 기업 중 절반 200억 책정 문제 해결 위한 분야에 집중해야

미상_그래픽_기업사회공헌_기업사회공헌설문조사결과_2014

올 한 해 경기 침체의 여파로 기업들의 사회공헌 비중도 축소될 전망이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국내 매출액 상위 30대 기업〈표 참조〉을 대상으로 ‘2014년 신규 사회공헌 전략’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기업(28곳) 중 2014년 사회공헌 예산이 ‘전년도 수준(13곳)’이거나 ‘감소했다(5곳)’는 곳이 64%에 달했다. 사회공헌 예산을 축소한 기업들은 “기업 수익이 낮아진 만큼 사회공헌 예산을 줄였다” “경영 상황 변동을 고려해 예산을 편성했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고, 대내외 경제 환경이 불확실한 2014년. 얼어붙은 사회공헌 예산 속 각 기업이 제시한 돌파구는 ‘글로벌’ ‘환경’ 그리고 ‘문화예술’이었다. 해당 설문에는 매출상위 30대 기업 중 삼성생명보험과 삼성디스플레이를 제외한 모든 기업이 참여했다.

◇30대 기업 70%가 매출액 감소… 사회공헌 예산 축소는 필연?

지난 5일까지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000대 기업의 2013년 매출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000대 기업의 전년 대비 매출액이 줄어든 것은 1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매출액 감소는 고스란히 사회공헌 예산에 반영됐다. 더나은미래 설문조사에 참여한 매출액 상위 30대 기업 중 무려 19곳 (70%)이 매출이 감소했고, 이들 중 15곳 (79%)이 사회공헌 예산을 동결 또는 축소했다. 매출이 줄었는데도 사회공헌 예산을 늘린 기업은 포스코, 우리은행, kt, 기업은행 등 4곳에 불과하다.

한편, 매출이 증가한 8개 기업 중 사회공헌 비용을 늘린 곳은 삼성전자, 한국가스공사, 삼성물산뿐이고 나머지 62.5%는 예산을 동결했다. 이에 각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은 “기업 실적이 악화되면 가장 눈치 보이는 부서가 사회공헌팀”이라면서 “적은 예산으로 효과 높은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실제로 내부 공감대 형성의 어려움, 사회공헌 전략의 ‘선택과 집중’으로 인해 올해를 기점으로 중단된 프로그램들도 많았다. kt는 2014년 사회공헌 전략을 ‘ICT를 통한 사회격차 해소’로 집중하면서, 지난 3년간 여성들의 꿈을 지원해온 ‘드림위드’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NH농협은 농촌 청소년들에게 악기를 보급하는 ‘플레이 더 드림(Play the dream)’ 사업을 종료했다. 농촌 지역에 악기 교육을 지도할 수 있는 교사를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임직원의 만족도가 낮아서” 또는 “기존에 계획했던 사업 기간 종료”로 인해 프로그램을 중단했다는 답변이 있었다.

미상_그래픽_기업사회공헌_국내30대기업2014년신규사회공헌프로그램_2014

◇유독 글로벌 프로그램 많아

올해 새롭게 추진하는 사회공헌 중에는 유독 ‘글로벌’ 프로그램이 많았다. 포스코는 베트남 빈민지역에 주택을 건립하는 드림빌리지(Dream Village) 사업을 시작했고, LG화학도 베트남 청소년을 위해 도서관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기존에 진행해온 글로벌 사회공헌을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는 흐름도 생겼다. LG전자는 중남미 고객 대상 온라인 CSR 캠페인(LG Creating Smiles)을 추진 중이다. 중남미 지역 주민들이 웃는 모습을 찍어 온라인에 올리는 사진 수만큼 LG전자가 빈곤층을 위한 집을 짓는 캠페인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중남미는 저소득층이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빈부 격차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중남미 지역 내 LG전자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자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아차는 탄자니아, 모잠비크, 말라위에서 중등학교와 자동차정비기술훈련센터를 건립하고 지역 주민의 자립을 지원하던 사업을 올해 아프리카 2개 지역으로 추가 확대할 예정이다. 그동안 기업들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소외됐던 환경 이슈가 2014년을 기점으로 주목받는 흐름도 눈에 띈다. 지속가능성이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의 핵심 가치로 떠오르면서, 친환경 프로그램이 고려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한국가스공사는 대기환경개선 및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삼성물산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업사이클링(upcycling·폐품을 재활용해 예술적 가치를 높인 작품으로 만드는 것) 교육과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기업은행은 장애인·독거노인 등 소외계층 8000여명에게 환경바우처를 제공해 전국 21개 국립공원에서 자연환경해설사와 함께 테마별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복지 이슈를 넘어 문화예술 키워드를 선택한 기업들도 늘었다. 현대차는 전국 1만여명 청년 예술인들의 공연 제작을 지원하는 ‘H-Star Festival’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LG디스플레이는 전국 저소득 가정에서 예체능 꿈나무를 발굴해 후원할 계획이다. kt는 동자동 쪽방촌에 IT 카페, 공방, 교육장 등 융합 공간을 마련한다. 이 기업들은 “문화 격차 해소와 정서 지원에 대한 니즈(필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었다.

◇사회 이슈 반영한 사회공헌으로 복지 사각 메운다

2014년 정부의 보건복지 예산이 46조8995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4.2% 늘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 빈곤층이 줄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사회공헌을 그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더나은미래 설문조사 결과, 30대 기업들은 국내 사회 이슈와 니즈를 반영해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해당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이슈 3가지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대해 ‘아동 정서지원·건강·안전(40%)’과 ‘청년 창업 및 일자리 창출(36%)’을 꼽은 기업이 가장 많았다. 농촌 등 지역사회 자립 지원(29%), 장애인·노인복지(25%)가 뒤를 이었다. 선정 이유에 대해 “세 모녀 자살 사건으로 비롯된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최근 아동 학대 등 안전·정서 문제가 가장 큰 사회 이슈이기 때문”이란 답변이 많았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30대 기업이 2014년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집중하는 분야도 사회복지(35%), 동반성장과 상생(17%), 일자리 창출(15%), 교육 및 학술연구(13%) 순서로 나타났다. 임태형 사회공헌정보센터 소장은 “정부가 예산 부족으로 돌보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를 기업들이 사회공헌 예산과 역량을 통해 메울 수 있다”고 말했다. 30대 기업 중 2014년 사회공헌 예산으로 ‘200억원 이상’을 책정한 기업은 약 54%다. ’50억~100억원’은 약 21%, ‘100억~200억원’은 약 11%로, 올해 사회공헌 비용을 50억원 이상 배정한 기업은 86%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예산을 쪼개쓰기보다는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분야에 집중해달라”고 주문했다.

미상_그래픽_기업사회공헌_국내30대기업대표사회공헌프로그램_2014

매출액 상위 30대 기업 설문조사

기업 사회공헌 프로그램 임원이 결정한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매출액 상위 30대 기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28곳 중 16곳(57%)이 업종 관련성이 높고, 임직원 자원봉사 연계가 가능한 프로그램을 대표 사회공헌으로 꼽았다. 삼성전자는 도서산간 지역 학교에 전자칠판·갤럭시노트 등을 활용해 IT 소프트웨어 교육을 지원하는 ‘삼성 스마트스쿨’을, 신한은행은 금융사의 특징을 살린 ‘어린이 금융 체험교육’을 대표 프로그램으로 선정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 계층을 돕기 위해 진료 전용 차량을 활용해 ‘찾아가는 의료봉사’를 진행하고 있고, 대우인터내셔널은 2011년부터 결혼 이주 여성과 임직원 가족이 1대1 결연을 맺어 다양한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SK네트웍스도 지난해부터 시작한 ‘드림 패키지 프로그램(Dream Package Program)’을 대표 사회공헌으로 소개했다. 이는 임직원이 직접 만든 학용품을 SK네트웍스의 해외 사업 현장 인근에 위치한 빈곤 아동들에게 전달하는 사업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대규모 예산을 투자하고 집중하는 만큼, 기업 내부의 인력을 활용하고 임직원의 애사심을 높일 수 있는 교집합을 찾게 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상_그래픽_기업사회공헌_사회공헌지속평가의사결정자_2014

◇30대 기업의 75%… 10년 이상 지속한 사회공헌 ‘있다’

‘10년 이상 지속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 기업 28곳 중 75%(21곳)가 ‘있다’고 답했다. 답변을 거절한 1곳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21%)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사회공헌을 시작했거나, 3~5년 주기로 프로그램을 변경하고 있었다. 10년 이상 장기 프로그램이 가장 많은 기업은 삼성화재였다. 삼성화재는 93년부터 시각장애인 안내견 사업을 지속하고 있고, 교통안전문화연구소와 교통박물관을 설립하는 등 23년째 교통사고 예방 캠페인과 교통안전 정책 개발 및 제도 개선을 지원하고 있다.

① 기아자동차는 2005년부터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 캠페인을 10년째 지속해 왔다. /기아자동차 제공 ② 한국토지주택공사는 2004년부터 임대주택 주민들의 결혼식 및 신혼여행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제공
① 기아자동차는 2005년부터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 캠페인을 10년째 지속해 왔다. /기아자동차 제공 ② 한국토지주택공사는 2004년부터 임대주택 주민들의 결혼식 및 신혼여행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제공

10년 이상 지속한 사회공헌을 해당 기업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지목한 기업도 약 24%(5곳)에 달했다. LG화학은 2005년부터 진행한 ‘젊은 꿈을 키우는 화학캠프(중학생 대상 2박3일 화학 실험 캠프)’를, 현대모비스는 2005년부터 시작한 ‘주니어 공학 교실(초등학생 대상 과학 수업)’을 장기 프로그램이자 대표 사회공헌 사업으로 소개했다. 수혜자들의 꾸준한 요청으로 10년 이상 이어온 프로그램도 많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임대주택 주민 중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들의 결혼식 및 신혼여행을 지원하는 사회공헌을 2004년부터 해오고 있다.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한국전력은 전기요금 청구서에 실종 어린이 사진을 게재하고, 지역 축제때 아동들에게 이름표를 달아주는 등 미아 예방 캠페인을 10년 넘게 진행해왔다. 덕분에 15년간 109명의 실종 어린이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11년간 총 120만마리의 우럭 방류 사업을 진행해온 현대오일뱅크는 충남 서산의 삼길포 지역을 국내 최대 우럭 집산지로 성장시켜 ‘삼길포 우럭 축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30대 기업 사회공헌, ‘임원’이 결정한다

매출액 상위 30대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CSR 부서 임원이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결과 응답 기업 28곳 중 13곳(46%)이 사회공헌에 대한 의사 결정자를 사회공헌(CSR) 부서의 ‘임원’으로 꼽았다. CEO(25%), 사회공헌(CSR)위원회(21%)가 그 뒤를 이었다. ‘사회공헌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내부에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있다’가 71%(20곳)로 나타났다. 특히 평가 시스템을 직접 개발한 기업이 많았다. KB국민은행은 자체 개발한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법률적 검토·사업 효과·리스크 등을 평가하고 있고, GS칼텍스도 2010년 조선일보 더나은미래·플랜엠·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개발한 ‘사회공헌 프로그램 평가 지표’를 활용한다. 사회공헌 실적을 부서별·직원별 KPI(성과 지표)에 반영하는 곳도 눈에 띄었다. 한국가스공사는 사회공헌 마일리지(봉사 시간과 기부금을 마일리지로 환산)를 내부 평가 지표에 반영하고 있고, 에쓰오일(S-Oil) 및 한국전력도 사회공헌을 KPI에 연계해 직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분위기다. 우리은행은 영업점별·부서별 사회공헌 참여율을 평가하고, 임직원 자원봉사 페스티벌을 통해 우수 사회공헌 영업점을 선정한다.

그러나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은 정량적 평가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 사회공헌과 관련된 애로 사항을 묻는 질문에 대해 ‘사회공헌의 실질적 성과와 홍보 성과가 다른 경우, 프로그램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다’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사회적 영향력을 측정하기 쉽지 않다’는 답변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회공헌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점을 꼽아달라는 설문에는 ‘CEO 및 의사 결정권자의 관심과 강력한 의지’ ‘정부·기업·단체들의 효율적인 자원 배분’ ‘예산 확보’, ‘전문적인 파트너 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특별취재팀=정유진·최태욱·김경하·문상호·주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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