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어릴적 받은 문화예술 교육 삶 어딘가서 나를 지탱해줘

특별 기고 김중만 사진작가

미상_사진_문화예술교육_김중만사진작가_2014

놀라운 일이다. 전시회에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사진을 해본 적도 없다던 열일곱 살 예솔이(가명)의 사진에서 작가들의 그것과 다름없는 집중과 공감이 보였다. 돛 줄을 단단히 잡고 있는 밧줄 묶음 사진. “내가 흔들릴 때마다 잡아주시던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고 했다. 예솔이는 국가에서 학비를 보조받으며, 어머니와 단둘이 어렵게 사는 아이다. 사진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 서고 스스로 상처를 털어낸 아이도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민석이(가명)는 “친구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불량배에게 폭행당해 심하게 다친 걸 본 후 절대 골목길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며 “그 일 이후 말수가 줄었고 같은 반 친구들의 부당한 요구도 거절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민석이는 어두운 골목길을 달리는 트럭을 정면에서 찍었다. ‘조심해’라는 표제를 붙인 사진 작품이 탄생했다. 그리고 민석이는 자신을 잘 표현하는 밝고 평범한 아이로 다시 돌아왔다.

예솔이와 민석이 같은 아이들을 만나고 그 변화들을 접할 수 있었던 건,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두산그룹에서 지원한 사회공헌 프로그램 ‘시간여행자’에서였다. 지난 2년 동안 ‘시간여행자’ 자문위원 역할을 하면서, 작은 기적을 많이 목격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극을 받을 기회가 없던 아이들이 문화예술 교육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나 또한 ‘시간여행자’에 참여한 아이들과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우리나라를 떠나 아프리카로 이주했다. 의사인 아버지는 빈민국 의료지원을 위해 아프리카행을 택했던 것이다. 정글이 우거지고 야생동물이 뛰어다니는 아프리카는 없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은 실망스럽기만 했다. 아프리카 시골에는 마땅한 학교가 없어 고등학교 때부터는 홀로 프랑스에서 공부해야 했다. 아버지도 수입이 없어 학비를 보내 주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방학과 주말이면 식당에서 그릇 닦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기숙사 비용과 학비를 마련했다. 사진가의 길로 들어선 건 우연한 경험 때문이었다. 친구가 기숙사 암실에서 사진 인화를 도와 달라고 했고, 5분 만에 인화지에 그림이 입혀지는 모습을 보고는 단번에 매료됐다. 그 길로 카메라를 빌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잠잘 때와 샤워할 때를 빼고는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이후 사진은 내 인생 전부가 됐다.

문화예술 교육은 청소년들의 세포 어딘가에 각인되어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고, 삶을 지탱하는 힘을 준다. ‘시간여행자’에 참여한 학생들은 우리 사회 취약 계층의 청소년들이다. 대개 주말이면 텔레비전 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멍하니 지내기 일쑤였다고들 한다. 그러나 문화예술 교육에 참여하고부터는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의 삶 속으로 직접 들어가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세상살이를 보고 듣는다. 이 아이들의 활동에서 촬영을 잘한다든지, 사진이 훌륭하다든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체득한 만남과 배움이 더욱 값지다. 이는 결국 앞으로 삶에서 직·간접적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 사는 데 문화예술이 꼭 필요한가? 아니다. 문화예술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의 질은 다른가? “그렇다”고 본다. 문화예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지고,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과 상상력을 갖춰가면서 ‘내적인 힘’을 키워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세상과 자아에 대한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된다.

문화예술 교육의 다양한 기회와 혜택을 더 많은 청소년에게 주기 위해서는 나 같은 개인의 참여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들의 관심과 후원, 그리고 협력이 절실하다. 특히 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선진국일수록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에 기업들의 참여가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문화로 어떠한 미래를 만들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큰 안목으로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닌, 시간을 두고 지켜볼 수 있는 긴 호흡으로 품을 수 있는 좋은 기업이 많이 나와 주길 바란다. 분명 그 움직임은 작게는 우리 청소년들을 건강하게 성장시키고, 크게는 문화 융성을 누리는 선진국으로 가는 미래를 앞당길 수 있으리라 믿는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