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월)

[희망 허브] [기업, 철학이 바뀐다] ③ 환경·지역과 상생… 세계 100개국 뻗어나간 힘

기업, 철학이 바뀐다 티라윗 리따본 태국 더블에이 부회장
산에서 나무 베지 않도록 논 옆 자투리땅에 나무 심어 연간 670만t 이산화탄소 감축
가공하고 남은 폐기물들 최대한 재활용해 원료 활용 지역 농가도 살려 일석이조
친환경적 상생 가능한 모델 한국에도 널리 알리고 싶어

최근 탄소세 도입을 두고 환경부와 자동차 업계의 날 선 공방이 있었다. 탄소세 제도는 탄소배출량이 많은 차에 부담금을 부과하고 배출량이 적으면 보조금을 주는 제도인데, 재계에선 “우리 실정에 안 맞는 지나친 규제”라는 반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환경을 규제가 아닌, 기회로 여긴 철학을 가진 기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복사용지로 유명한 태국의 ‘더블에이(DoubleA)’ 이야기다. 티라윗 리따본(57·Thirawit Leetavorn) 부회장에게 그 특별한 철학을 들어봤다. 티라윗 리따본 부회장은 유니레버, 시그램 등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신시장 개척을 담당했던 마케팅 전문가로, 지난 2005년 더블에이에 합류했다.

미상_사진_기업철학이바뀐다_티라윗리따본부회장_2014―복사용지를 만들려면 당연히 산림목을 벨 것으로 예상하는데, 산에 있는 나무를 베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가.

“제지회사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종이의 원재료인 나무다. 우리는 태국의 특수한 환경에 주목했다. 태국은 세계 최대의 쌀 생산국으로, 전체 인구의 40%가 농업에 종사한다. 대부분 영세하다. 전통적으로 태국 농가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농지를 물려주는데, 이 과정에서 유실이 생기며 토지 규모가 점점 작아진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가난해지는 거다. 우리는 산이 아니라, 논과 논 사이 자투리땅에서 키우는 나무 ‘칸나(KHAN-NA)'(유칼립투스 수종) 모델을 도입했다. 산의 나무를 베지 않으면서, 지역 농가도 살릴 수도 있는 방법이다. 농촌 주민들과 협의를 통해 작은 묘목 하나를 5바트(약 167원)에 판매해 이를 휴경지나 논 사이에서 3년간 키우게 하고, 이를 70바트(약 2300원)에 되산다. 이런 식으로 부수입을 올리는 농가가 태국에만 150만 곳으로, 이들이 얻는 연간 총소득은 50억 바트(약 1652억원)에 이른다.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 등지의 1만1000여 농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라오스에서도 총 5만5000그루가 자라고 있다. 더블에이의 복사용지는 전량이 그곳으로부터 나온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제시한 원칙을 적용하면, 더블에이의 나무들은 연간 670만t의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흡수하고 있다고 밝혀졌다(이는 소나무 25만 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다).”

―공장을 운영하려면 나무뿐 아니라, 물과 에너지 등 전반적으로 환경친화적이 되긴 힘들다. 이 공정을 친환경적으로 만들었나.

“종이원료로 사용되는 섬유질이 추출되고 나면, 나무껍질, 나뭇조각(우드칩) 등 가공하면서 남은 폐기물들을 쌀겨와 섞어 전력을 생산하는 원료로 사용한다. 바이오매스 에너지를 우리 공장의 주 에너지로 사용하고, 남는 전력은 태국전력청으로 송전해 지역주민의 가정용 전력으로 나눠준다. 40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양이다. 석유 소비량도 줄이고, 전력을 지역사회에 기부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은 방콕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쁘라찐부리(Prachinburi)’ 지역에 있다. 저지대를 변형해 우기 때 빗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만든 3600만㎥ 규모의 인공 저수지다. 공정에 필요한 모든 물을 여기서 공급받는다. 친환경 공정을 위한 고유기술도 가지고 있다. 사용한 공업용수를 재활용해서 다시 쓰는 ‘탈수기술’과 동종업계 대비 십분의 일 정도의 물만을 사용하는 ‘절수기술’이다. 지역 수자원에 손을 대지 않고, 오히려 인근 농지에 용수를 지원할 정도로 수자원이 풍부한 건 기술력 덕분이다.”

―친환경과 상생, 마땅히 해야 하지만 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원동력이 무엇인가.

“어느 산업이든 꼭 필요한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원재료와 전기, 그리고 물이다. 각각의 요소는 생산에 드는 전체 비용을 결정한다. 우리는 지속가능하게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심했다. 자원이 유한하면, 경영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업적인 성공은 그다음 문제다. 지역 농민들과 함께 일하며 이들은 동반자가 됐다. 2013년 태국에서 대홍수가 발생했을 때 더블에이의 임직원은 피해를 본 지역 학교에 나무를 심거나 마을을 재건하는 작업에 앞장섰다. 단순한 원조가 아니라, 동료를 지키는 활동이었다. 나무의 환매보증으로 농가의 추가수익을 보장하고, 물이나 전기 같은 에너지를 나눠주며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CSV(공유가치창출) 지속 여부가 사업적 성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1991년 설립된 더블에이가 첫 출시 1년 만에 95%의 브랜드 인지도를 달성하고, 전 세계 100개국으로 뻗어나간 힘의 원천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다.”(더블에이는 2002년에 한국에 진출했는데, 현재 복사용지 부문 브랜드 인지도 1위(62%)를 기록하고 있다.)

―다음 달에 서울시와 자투리땅 활용에 대한 업무 협약식이 있다고 알려졌다.

“더블에이의 사업이 친환경적이고 지역사회와 상생이 가능한 좋은 모델임에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는 어려웠다. 전용나무가 태국 기후와 토양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협업은 세계화의 가능성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서울 시민들과 함께 ‘자투리땅에 나무심기’ 캠페인을 진행하며, 버려진 땅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한국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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