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Cover Story] 마을통장 동행 르포

골목을 누비는이들의 걸음에
소외의 그늘이옅어져 갑니다
집 안 들어가 보기 전까진 누가 혼자 살거나 아픈지 알기 어려운 요즘 세상 속 일일…
통장들이 발굴한 소외계층 일정한 서비스 받을 수 있게 전문적인 시스템 갖춰야

지난 2월 말 발생했던 ‘송파 세 모녀 자살’과 관련, 보건복지부가 이달 초 전국적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일제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지자체 사회복지 공무원 및 통·리·반장 등의 민관협력을 통해 지역 내 사각지대를 중점 발굴하며, 보험료 체납자, 단전·단수 가구, 쪽방 지역 등을 집중 조사해 긴급지원, 기초생활보장제도, 민간 후원 등으로 연계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행정조직의 ‘손발’이 되어, 지역의 복지 사각을 찾아 나선 통장(統長)들과의 동행을 통해 그들의 고충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아침 9시부터 산비탈길을 오르락내리락하던 조득임(가운데 사진) 통장의 발걸음은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이들의 수고로움이 복지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한시적인 특별조사가 아닌 장기적인 관점으로 끈끈한 복지전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경하 기자·조선일보 DB
아침 9시부터 산비탈길을 오르락내리락하던 조득임(가운데 사진) 통장의 발걸음은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이들의 수고로움이 복지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한시적인 특별조사가 아닌 장기적인 관점으로 끈끈한 복지전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경하 기자·조선일보 DB

“요새 세상이 꽁꽁 닫고 사는 분위기잖아요. 집 안에 들어가 관심 있게 보기 전까진 몰라요. 저기 하얀 집 보이죠. 만난 지 몇 달 만에 키우는 자녀가 청각장애란 걸 알았어요. 그 옆집에 계신 독거 어르신도 2년간 봐왔는데, 얼마 전에야 ‘이혼의 충격으로 우울증을 겪는다’고 털어놓더라고요.” 노원구 상계4동 57통 통장 박점숙(43)씨가 가파른 계단 앞에 멈춰서며 말했다. 박씨는 2년째 이곳 통장을 맡고 있다. 좁은 계단 양쪽으로, 누런 연탄이 쌓여있다. “연탄 때는 곳이 많냐”고 묻자, “14가구(178가구 중)인데, 인근 59통이 65가구나 돼서 (연탄 봉사가) 그쪽으로 많이 간다”고 했다. 계단 끝 무렵, 박씨가 가방을 고쳐 메며 “이 집은 들러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익숙한 인사다. 10평 남짓한 방에 장성한 어른 4명이 산다. 집주인 심순녀(가명·73)씨의 딸은 청각장애(3급), 서른 넘은 막내아들은 실업자다. 큰아들이 전기 공사를 하며 가장 역할을 한다. 박씨는 “관할 지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요주의 가정’이었다”며 “문 열고 들어오는 데만 1년이 걸릴 정도로 ‘담쌓고 사는 집’이었다”고 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서류’ 얘기부터 꺼낸다.

“어머니 우리 차상위 신청 서류 언제쯤 냈지?”

심씨 가정은 작년까지 ‘차상위 본인부담 경감 대상자'(소득인정액 최저생계비 120% 이하, 3인 가구 기준 159만원 이하)였지만, 얼마 전 대상에서 빠졌다. 심씨가 억울한 듯 말했다. “딸애가 듣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해. 늘 병원에 가야 된다고. 차상위 대상이라 약값을 조금만 냈는데, 그게 안 된다는 거야. 갑자기 그렇게 떼버리는 게 어딨어. 너무 야박해.” 심씨 가정의 월 수입은 큰아들 월급 140만원 정도가 전부. 여기에 딸이 받는 장애인 보조금과 심씨의 국민연금을 합치면 30만원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큰아들의 월급이 약간 오르면서, 차상위 대상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넘었다. 심씨가 조그만 주방에서 차와 과일을 가져와 앉자, 박씨는 연신 “공과금 할인은 잘 받고 있느냐” “연탄보일러 들이는 건 아들과 상의해봤느냐” 등의 질문을 했다. ‘에코마일리지'(전기료·수도료를 전년·동월 대비 아끼면 그만큼 상품으로 주는 서비스) 신청서를 직접 써 주기도 했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통장님 처음 봤어. 저기 있는 쌀, 전기장판, 이불 이런 거 다 통장님이 도와준 거여. 우리 동네가 복 받은 거지 뭐.” 할머니의 칭찬에 박씨가 손사래를 친다. “그거 제가 드린 거 아니고, 주민센터에서 준 거라니까요(웃음).”

이 집에서 나온 후 박씨는 끊임없이 포스터를 붙였다. ‘보살핌이 필요한 분들을 찾아주세요’라고 적힌 동주민센터의 유인물이다. “사람들을 많이 알아야, 어려운 분들 얘기도 들을 수 있어요. 집주인들은 세입자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죠. 집배원이나 가스배달원들에게도 제 연락처를 줘요. 가스점검 갔는데 오래 안 보이면 연락 달라고요.”

◇”지원책 있어도 모르는 이 많아”

녹슨 철문 앞, 박씨가 포스터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8개월 동안 문을 두드리다 간신히 말을 텄다”고 했다. 문을 두드려 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박씨는 휴대폰을 꺼냈다. 백발의 심성구(가명·66)씨가 나와 안으로 안내했다. 심씨의 어머니 이봉자(가명·85)씨가 식사 중이었다. 오전 11시 반, “이른 점심이냐”고 묻자, “늦은 아침”이라고 했다. 이 집은 가족 3명 모두가 환자다. 심씨는 10년 전 심장판막증 수술을 받아 거동이 편치 않고, 아내 역시 얼마 전 양쪽 무릎 수술을 받아 “기어다니다시피 한다”고 했다. 가장 심한 건 이봉자 할머니. 신체장애(5급)에 치매도 심하다. 고정 수입은 없는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선 제외됐다. 큰아들이 육군 상사로 재직 중이기 때문. 차상위·장애인 등급도 박씨가 서류를 만들어줘 겨우 받게 됐다. 이날의 화제는 할머니의 목욕 문제였다.

“제일 급한 게 목욕이야. 한 달에 한두 번만이라도 어머니 목욕을 시켜 드려야 하는데….” 치매 3급까지는 활동도우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할머니가 3년 전 받은 등급은 4급. 박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도 틀림없이 3급을 받을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심사할 때 할머니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어요. 오른손 들라고 하면 오른손 들고…. 알아보니 재심 신청하면 가능성 있을 것 같아요.” 어르신은 “정말 고마워. 혜택을 받는 것보다도 그만큼 신경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고마워. 또 안 되면 할 수 없는 거지 뭐”라고 했다. 박씨는 “이 집은 차상위 장애 가정에 공과금 할인 혜택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며 “지원책이 있어도 모르는 이가 많다”고 했다.

◇’통장’에 찍히는 것 이상의 일을 하는 사람들 ‘통장’

“정말 바빠요. 지금 시기가 많이 겹쳤어요. 6월 선거 전에 ‘주민등록일제조사’도 해야 하고, 도로명 주소가 바뀌어서 주민등록증 뒤에 붙일 스티커도 나눠 줘야 해요. 민방위훈련, 적십자회비 고지서도 돌려요.” 18일 아침 일찍 만난 조득임(45·노원구 월계1동 27통장)씨는 각종 서류와 지로용지, 스티커 등으로 양손을 가득 채운 채 바삐 움직였다. 어제도 밤 8시를 넘겼다고 한다. “어제가 ‘마음건강평가(65세 이상 독거 어르신 대상 설문지)’ 마지막 날이었거든요. 독거 어르신들은 한번 얘기하면 30분을 넘겨요. 외로우신지 계속 이야기하려 하거든요.”

조씨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조그만 연립주택의 반지하 방. 65세 할아버지가 사는 곳이다. 문을 두드려 봤지만 대답이 없다. “오늘은 계신다고 했는데….” 못 만나는 경우가 다반사라 여러 번 방문하는 일도 잦다. 인근의 또 다른 반지하 집. 에메랄드색 문 너머로 TV 소리가 들리지만, 역시 대꾸가 없다. 10분을 기다리자, 조씨가 “저녁에 다시 와봐야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이어 초록색 철문을 열자, 소주병과 맥주병이 어른 허리만 한 빨간 고무통에 가득 차 있었다. 최지훈(가명·53)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식사하셨어요, 겨울에 나눠드린 김치는 다 드셨어요?”라고 묻자 미소를 지으며 “네, 다 먹었어요” 했다. 전기 기술자였던 최씨는 사고로 뇌손상이 와 지적장애를 갖게 됐다고 한다. 온종일 빈 병을 주워 파는 게 주된 일과다. 집 안을 들여다보자,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싱크대의 다리 하나는 부러져 엎어져 있었고, 가스레인지도 사용하기 힘들어 보였다. 최씨는 이곳에서 27세 딸과 같이 산다. “어떤 게 가장 불편한가” 묻자, 처음엔 헤헤 웃던 최씨는 “좀 방이…” 하며 말을 흐렸다. “큰따님과 같이 사는 게 불편하시다는 거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집주인 한모(70) 할머니는 “박씨가 이곳에 산 지가 벌써 18년”이라며 “장애 등급은 받았는지 모르겠다. 돈을 받아도 그걸 관리할 능력도 안 될 텐데…”라고 말을 흐렸다.

◇현장 복지 사각 발굴, 통·반장이 최선입니까?

통장의 업무는 전·출입 확인, 주민등록 조사 같은 행정업무부터, 구청에서 발급하는 소식지나 쓰레기봉투(기초생활수급자 대상)를 가정에 전달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구역 내 복지 사각을 돌보고, 필요한 것을 확인해 동주민센터에 보고·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연말에는 연탄 행사나, 불우이웃돕기 활동을 직접 연결하는 경우도 있다.

조득임씨는 “이런저런 동네일이 생겨나면, 다 봐줘야 하는데 무거운 짐을 들고 온종일 산비탈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 양쪽 어깨가 욱신거리기 일쑤”라고 했다. 이들의 활동비는 월 21만원이다. 조씨는 “이전에는 통장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는 분도 많았는데, 요샌 일이 너무 많아져서 자기 살림 꾸리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박점숙씨는 한 달에 5번 정도 짬을 내 용산 인근에서 우편물 발송 아르바이트를 한다. 박씨는 “일하고 있을 때도 도움을 요청하거나, 지원 여부를 묻는 전화가 자주 와 맘이 심란했던 때가 많다”고 했다. 조득임씨와 박점숙씨 모두 이전 통장들이 임기를 못 채우고 떠난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박영용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사무총장(서울시청 복지정책과)은 “행정조직만으론 현장의 사각지대를 모두 메우기 힘든데, 구 단위·동 단위 삶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통·반장들이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다. 박점숙씨는 “자신이 겪는 일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분에겐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전문성에 대한 고충도 있다. 박씨와 조씨는 모두 “사회복지사가 아니다 보니 만나는 분들이 민원 제기를 해도 확실히 답을 드릴 수 없는 위치라 난감할 때가 많다”며 “수급비 대상 여부나 혜택에 대한 통장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통장의 90%가 여성이라 발생하는 애로사항도 있다. 같은 지역에서만 18년을 살았다는 조씨지만, 남성만 사는 집에선 대문 앞에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조씨는 “할아버지들이 문을 열어주시면 대부분 팬티 바람이라 처음엔 당황했는데, 이젠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으니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오시라’고 말한다”고 했다. 밤이 무서울 땐, 초등학교 6학년짜리 아들을 데리고 다니기도 한다.

박경수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열과 성을 다하는 통·반장들이 있는 반면, 관에서 시키니까 마지못해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서비스 질이 일정하지 못하단 얘기다. 그는 이어 “발굴만 한다고는 해도, 이를 사후에 지원해줄 수 있는 전문 시스템이 없으면 소용없다”고 했다.

최태욱 기자

김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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