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금)

국제개발 사각지대, 저희가 없앨게요

개발 협력분야 나서는 청년 단체들

교육·의료 등 백화점식으로 봉사하는 기성 단체와 달리 특정 아이템 집중 차별화
초기 자금·후원 모집 난관 비영리단체보다 혜택 많은 사회적기업 형태 택하기도
“여름방학 두 달 동안 네팔 마을 초등학교 벽화가 7번 바뀌었습니다. 교회 봉사팀이 벽화를 그리고 나가면, 또 다른 대학생 봉사단이 와서 덧칠하고, 뒤이은 봉사단은 그 위에 새로운 벽화를 그리는 거예요. 태어나서 페인트는 만져본 적도 없는 주민들은 참여는커녕 ‘저게 뭔가’ 하고 지켜보고만 있고요.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죠.”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현장에서 3년간 활동했던 김윤정(32)씨는 2011년 ‘리치이니셔티브(Reach Initiative)’란 단체를 직접 설립했다. 캄보디아 1년, 네팔 2년 동안 기존 국제구호단체의 활동 방식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김씨는 “마을 주민들이 ‘주인’이 아니라 ‘도구’로 전락했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며 “내가 직접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리치이니셔티브’는 단기 해외봉사나 국제개발협력 현장의 문제점을 알리는 애드보커시(advocacy·옹호) 활동을 한다. 또 개발도상국 현장을 방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단기 해외봉사’ 대신 ‘공정여행’으로 연결하는 일을 한다.

미상_사진_국제개발협력_청년단체들_2014

◇’우린 달라요’… 특정 아이템에 집중, 기성 단체들과 차별화

국제개발 분야에서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만드는 단체가 늘고 있다. 한 해에 해외로 파견되는 장·단기 봉사자와 인턴 수만도 2만여명에 이르고, 이들 중 90% 이상이 20·30대 청년이다(2011 KOICA 통계 자료). 이들은 국내로 돌아와 기존 단체에 몸담는 대신, 직접 NGO나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 등 다양한 형식으로 국제개발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기존 단체들이 교육, 보건의료 등 ‘백화점식’ 지원을 하는 것과 달리, 청년 단체들은 특정 아이템에 집중한다. 2010년에 시작, 2012년 서울시 산하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한 ‘옮김’은 호텔에서 사용하고 남은 비누를 수거해서 세척·가공한 뒤 개발도상국에 전달하는 사업을 진행한다. 올해부터는 학교나 집에서 남은 크레파스를 모아 녹이고 재가공해 국내 취약계층에 전달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2012년 교육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호이(HoE)는 ‘교사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적은 돈으로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현지 교사’라는 점에 주목한 것. 케냐 코어 지역 교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단기집중교사연수(STIC)’나 아프리카 현지 교사들의 사범대학 등록금을 지원하는 ‘하트(HEART)’가 주요 프로그램이다. ‘아프리카인사이트’는 아프리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 개선을 목표로 활동하는 단체다. 지난해 9월, KT&G에서 출시한 담배 ‘디스 아프리카(This Africa)’의 포장과 광고에 사용된 침팬지 이미지가 아프리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져온다며 기존 언론, 인권 단체들과 함께 시정 캠페인을 벌여 사과문을 받아내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가장 어려운 건 후원 개발… ‘청년 시민사회’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마련돼야

하지만 이들은 초기 자금과 후원자들을 모으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열정은 넘쳐나지만, 그에 부합하는 후원자 발굴이나 자금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 2008년부터 ‘호이 프로젝트’를 시작, 2012년 사단법인까지 등록한 ‘호이’ 대표 박자연씨는 “처음에는 3년이면 내가 생각하는 모양새가 갖춰지겠거니 했는데, 6년이 걸렸다”며 “3년차에는 재정적으로 너무 어려워 없어질 뻔한 위기를 겪었고, 그때부터 ‘전문적 모금’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기부금 영수증 발행을 위해 법적 단체로 등록하고, 30년 후를 내다보며 모금을 시작했다. 다행히 뜻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궤도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이정명(27) 옮김 대표는 “작년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 이후엔 서울시 자원봉사센터나 정부에서 공익사업을 하는 비영리단체들을 대상으로 공모받는 ‘풀뿌리 민간 지원금’등을 받아 재정 운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지원 혜택이 많은 사회적기업을 택하기도 한다.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는 2013년 5월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에 선정됐다. 평화 교육을 통한 수강료나 교육, 출판 등을 영리 모델로 한 사업안을 제출해 선정된 것. 문아영(30) 모모 대표는 “원래 비영리단체로 설립할 생각이었지만, NGO도 사회적기업 형태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고 지원금이 초기자금으로 쓰일 수 있을 것 같았다”며 “궁극적으로는 NGO가 모모의 방향성과 가장 적합한 형태인 것 같아 사회적기업 지원이 끝나기 이전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할 계획”이라고 했다. ‘리치이니셔티브’ 역시 2011년 사회적기업 육성 사업으로 시작한 케이스. 올해 안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할 예정이다.

국제개발협력 분야 대안을 찾는 청년 단체들의 네트워크 모임 ‘아이리스(IRIS)’를 조직한 김동훈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나눔사업부문 부장은 “청년들의 움직임을 단순히 ‘치기 어린’ 시도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한 축으로 인정하고 클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아이리스의 온라인 플랫폼에 속한 단체와 개인만도 700여곳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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