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Cover Story] 아이들이 험한 길 걷지 않게… 버스는 오늘도 달립니다

가출 청소년 위한 이동식 쉼터 버스 ‘포텐’
화요일부터 금요일 요일별 정해진 곳에서 친구들 기다리죠
긴급 의료처치도 하고 많이 힘들어 보이면 쉼터로 연계해줍니다
가출 후 방황하다가 ‘난 나쁜 애니까’ 라며 포기하기 쉬운 아이들
평범하게 자랄 수 있게 마음도 다독여줘요

“자, 10분 있다 버스 출발하겠습니다. 준비해주세요.”

13일 오후 4시 50분. 경기 의정부 가능1동 건물 앞 갓길에 주차돼있던 낡은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두툼한 패딩 점퍼를 챙겨입은 의정부시이동청소년쉼터 직원들이 하나둘씩 거리로 나왔다. 빨간색 스티커로 전면을 둘러싼 버스는 ‘이동식청소년쉼터’. 10년 넘은 중고차량을 개조한 이 버스 이름은 ‘포텐’. 가출했거나 가출을 고민 중인 아이들이 쉬어가는 쉼터다.

미상_그래픽_청소년_이동식쉼터버스_2014

실내는 널찍했다. 화사한 푸른색 벽지에 붙은 포스트잇들이 눈에 띄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수능 잘 봐서 합격하자’ ‘가람쌤 너무 예뻐요’…. 이동식 쉼터에서 일한 지 9개월째인 김가람(23) 간사는 “아이들이 버스를 보면 두 번 놀라는데, 한 번은 바깥을 보고 낡고 촌스러워서, 또 한 번은 막상 타면 내부가 너무 좋아서”라고 했다. 버스 뒤편 너른 공간에는 PC가 놓여 있고, 만화책과 보드게임 기구가 가득 쌓여 있었다. 요일에 따라 6시 30분부터 7시까지 쓸 수 있는 노래방 기기도 있고, 목요일엔 영화도 상영한다. 또 다른 쪽 벽엔 냉장고와 전기 포트, 심리검사 도구, 긴급 의료처치를 위한 도구가 갖춰져 있었다. “버스 역할은 크게 세 가지예요. 연락받으면 데리러 가기도 하고, 긴급 의료처치를 하기도 하고요. 간식이나 밥을 제공하고, 잘 곳이 없거나 집에 돌아가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는 쉼터로 연계합니다. 셋째는 홍보 및 초기 예방이에요. 버스에는 당장 가출한 친구들 외에 일반 청소년들도 많이 타요. 와서 게임도 하고 간식도 먹으면서 우리가 뭐 하는지 알려주면 그 친구들을 통해 다른 친구들이 소개돼서 와요.” 이미해(33) 간사가 말했다.

덜컹거리며 달리기를 30여분. 버스는 의정부시 어룡역 2번 출구 앞에 주차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자리를 지키는 곳이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날마다 달리는 버스는 요일별로 정해진 장소에 멈춰 선다. 아이들이 언제 어디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하기 위함이다.

◇아이들을 만나러 ‘오늘도 달린다’

“이건 흔들어서 양발에 넣으시고요, 이건 양 호주머니에 넣으시면 돼요. 거리에서 아이들 만나면 주셔도 되고, 너무 추우면 꺼내 쓰세요.”

김가람 간사가 세 가지 크기의 핫팩을 건넸다. 어룡역에 도착하자 발목까지 오는 패딩에 핫팩으로 무장한 직원들이 분주해졌다. 버스가 정차한 갓길 뒤편에 삼각형 주의등, 전력기를 설치했다. 어룡역에서 기다리던 두 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간이 텐트와 패널도 뚝딱 설치했다. 패널에는 ‘우리 집은 행복하지 않다’ ‘집을 나오고 싶은 적이 있다’ 등의 질문에 직접 스티커를 붙이게 돼 있다. “지나가는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가출했거나 가출을 고민 중인 아이들을 1차 스크리닝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 형! 잘 있었어?” 버스가 정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민석(가명·17)군이 이곳을 찾았다. “지나가다 들렀다”는 김군은 정영민(28) 팀장을 ‘형’이라고 불렀다. “저는 여기 단골이었죠. 5번도 넘게 왔으니까요. 작년 2월 처음 왔는데, 그땐 그냥 따뜻한 거 준다기에 올라왔었어요. 당시엔 틈만 나면 가출했었어요. 학교에서 친구도 없고, 집에서도 내놓은 자식 같으니까 학교도 관두려고 했고요. 그러다 형을 만나게 됐어요. 그 뒤에 제가 다시 가출했을 때 전화드리니까 바로 달려와 주셨어요.” 김군이 “요새는 부모님이랑 같이 식탁에서 밥을 먹기도 한다”고 이야기하자 정 팀장은 “역사적인 일”이라며 김군을 치켜세웠다. “가출 이후 비행이나 절도 같은 2차 위험이 염려되었죠. 집 나왔다고 연락받았을 땐 달려가서 밥 사주고, 건강 상태 확인했죠. 집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이라 쉼터를 권하기도 했고요. 다행히 지금은 집에 잘 들어갔어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자기를 조절하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정영민 팀장)

곧이어 열댓 명의 아이가 무리지어 올라왔다. 아이들은 ‘이용신청서’를 작성하고, 원하는 서비스를 받았다. 배고프다며 컵라면을 달라는 아이도, 핫초코를 마시며 보드게임을 하겠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들어오는 친구들이 다 위험수위는 아니에요. 들어오면 이용신청서를 꼭 쓰게 돼 있는데 그 안에 가려낼 수 있는 질문들이 몇개 들어가 있어요. 그런 질문들 통해서 파악하기도 하고요.”(이미해 간사)

◇’집 나와 처음에 누굴 만나느냐’가 인생 좌우

거리가 어둑어둑해지자 두 팀으로 나뉘어 거리 지원(패트롤 아웃리치)이 시작됐다. 1차 팀이 돌아온 저녁 8시쯤 2차 팀과 함께 기자도 동행했다. 양 어깨 가득 짊어진 보온 가방엔 따뜻하게 데운 핫바와 간식, 핫팩, 응급처치용 붕대나 연고 등이 담겼다. 한 시간을 걸었을까. 아파트 운동장 구석에서 삼선 슬리퍼에 검정 패딩을 맞춰 입은, 멀찍이 키가 큰 아이들 열댓 명을 발견했다. 신나게 웃고 있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경계의 눈초리였다. “얘들아, 추운데 따뜻한 핫바 먹고 해!”

정 팀장이 능청스럽게 운을 떼자 아이들이 관심을 보인다. 팽팽한 긴장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자도 덩달아 주머니에 넣어둔 핫팩과 간식거리를 주며 말을 건넸다. “너희나 친구 중에 가출한 친구들 없어? 이 시간에 여기 왜 모여 있어?” 장난기 가득 섞인 왁자지껄한 답이 돌아왔다. “누나, 얘 가출했대요.” “얘네 집 가난한데 좀 도와주세요.” 팀장님은 그 틈을 타 능숙하게 이동식 버스를 소개해나갔다. ‘안물'(안 물어봤다는 청소년 은어) 같은 용어도 섞어가며 한바탕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이들과 헤어졌다. 정 팀장은 “마냥 ‘우리가 도와줄게’ 하면서 계도하듯 접근하면 절대 다가오지 않아서 게임이나 아이돌 트렌드, 은어도 따라잡듯 공부한다”고 했다. 가끔 동네 PC방에서는 “영업 방해한다”며 욕을 하기도 한단다.

“지난해 7월에는 중학생 여자아이 3명이 버스를 찾아왔어요. 이 친구들이 가출팸을 꾸려서 성관계를 갖는 걸로 숙식을 해결했더라고요. 악취가 심해 병원에 데려가니 한 명은 임신이었고, 나머지 둘은 질염에 걸린 상태였어요. 빨리 발견돼서 다행이었는데 안타까웠죠. 버스에서 기다리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으니 두 발로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겁니다.”(정영민 팀장)

박현동 의정부시청소년쉼터 소장은 “처음 집 나와서 누굴 만나느냐가 한 아이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했다. “동네 건달이나 포주를 만난다거나 ‘가출팸’을 만나면 다시 건강한 사회원으로 돌아오기 쉽지 않아요. 가출이 장기화하고 범죄에 빠져들면 ‘난 원래 이런 놈이야’라면서 자신을 방임하게 되죠. 길에 나온 청소년들을 지지해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어요. 저희가 그 친구들의 ‘비빌 언덕’이 돼주려는 것이죠.”(박현동 소장)

◇턱없는 지원, 부족한 접점

밤 10시 반. 마지막으로 들른 아이들이 버스를 떠났다. 버스 뒤편에서 하루 일과 평가 및 보고까지 끝마친 시간은 11시가 훌쩍 넘었다. 오후 2시 출근, 밤 11시 퇴근. 밤낮이 바뀐 하루 일과, 한 달 대부분을 버스와 거리에서 보내는 이들은 낮이면 제안서부터 회계에 이르기까지 서류 작업으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사회복지사들이다. 지난 겨울 운전을 담당하던 이곳의 간사가 일을 관두면서 버스가 한 달여간 움직이지 못해 간이 텐트로만 지원이 이뤄지기도 했다. 지난해 말 새로 입사한 회계 담당 간사가 일주일 만에 1종 면허 자격증을 취득, 운전을 함께 담당하는 이유다. “여건이나 지원이 열악하다 보니 이곳에서 오래 일한 경력자가 부족하고 이직률이 높다는 게 안타까워요. 오래 일해야 소위 ‘척 보면 바로 골라낼 수 있는’ 눈이 생기거든요. 여성가족부와 도비, 시비에서 지원받고 있는데 5년에서 10년 된 경력자 임금이 2500만원이에요. 가족 부양하기엔 턱도 없는 액수죠.”(박현동 소장)

가출 청소년 20만 시대. 이 아이들을 손가락질하는 사회 구석에선 매일 이들을 보듬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기업 연봉만큼은 아니어도 이들이 가족을 부양하고 존경받는 직업인으로 살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의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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