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수)

풍선 붙이고 춤추고 편지 쓰고… 기부가 샘솟아요

임직원 기부 참여 높이는 기업들
신한은행 – 회식비 기부하자는 춤 영상… 전 직원 메일로 보낸 이후 기부금 1500만원 모여
태광그룹 – 기부자 책상에 풍선 붙이고 후원받는 아이들 선물 전해 기부직원 25%서 80%로
한화생명 – 사회공헌 사이트 운영… 기부처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지원받는 아이들 소식 전해

#1. 지난해 신한금융그룹 전 직원 메일로 영상 파일 하나가 전송됐다. 파일명은 ‘좋은 날, 좋은 기부’. 영상을 틀자 선글라스를 낀 신한은행 직원 7명이 나타났다. “We are(우리는) 대리 차장 기부맨~!” 이들은 가수 싸이의 ‘젠틀맨’을 개사한 곡, ‘기부맨’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승진 등 좋은 일이 있을 때 1차만 가고, 2~3차 회식 비용을 기부하자’는 가사였다. 영상을 본 직원들이 앞다퉈 사회공헌팀으로 메일을 보냈다. ‘우리 부서는 1차만 가고, 나머진 기부하겠다”출산의 기쁨을 담아 기부하고 싶다”연말 포상금을 기부하겠다’ 등 내용도 다양했다. 기부맨 영상 메일 이후 직원들의 ‘감사 기부금’만 1500만원이 모였다.

#2. 오전 7시. 태광그룹 사회공헌팀 직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두 손엔 알록달록 풍선이 가득하다. 이들은 하얀 종이에 적힌 기부자 명단을 일일이 확인한 후, 책상 위에 헬륨 풍선을 하나둘 붙여나갔다. 직원들의 후원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 직접 만든 나무 액자와 손편지도 놓았다. ‘디딤씨앗통장’을 정기 후원하는 직원들을 위한 그룹홈 아이들의 특별한 선물이다. ‘선물 이벤트’는 사내에서 화제가 됐고, 직원들의 정기 후원 참여율은 6개월 만에 25%에서 80%로 껑충 뛰어올랐다.

지난해 태광그룹은 기부에 참여한 직원들 책상 위에 헬륨 풍선을 붙이는 이벤트로 기부 참여율을 대폭 올렸다. /태광그룹 제공
지난해 태광그룹은 기부에 참여한 직원들 책상 위에 헬륨 풍선을 붙이는 이벤트로 기부 참여율을 대폭 올렸다. /태광그룹 제공
GS칼텍스 로비에 설치한 기부 보드. 보드에는 임직원들의 기부로 정서 치료를 받은 아이들의 사연과 이들을 후원한 직원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GS칼텍스 제공
GS칼텍스 로비에 설치한 기부 보드. 보드에는 임직원들의 기부로 정서 치료를 받은 아이들의 사연과 이들을 후원한 직원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GS칼텍스 제공

◇”기부한 직원은 특별 관리”… 작은 아이디어로 임직원 마음 열어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즐겁게 기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의 가장 큰 바람이자 고민이다. 이에 비영리단체들이 후원자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처럼, 기업 내에서도 기부에 참여하는 직원들을 ‘특별대우’하는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 기부 참여자와 불참자 간의 차별화 전략으로 사내 나눔 문화를 바꾸고 있는 것.

네이버는 임직원 기부 프로그램 ‘엔젤스(N’gels)’에 참여하는 직원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외부 유명 강사를 초빙한 사내 교육·캄보디아 교육용 애플리케이션 제작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우선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주기적으로 화분·풍선 등 선물도 준다. 김선옥 네이버 CSR팀장은 “동료의 나눔을 칭찬하고, 서로 독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레 기부가 늘어났다”면서 “사내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 작은 아이디어들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GS칼텍스도 비슷한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12월, GS칼텍스 로비에 커다란 ‘기부 보드판’이 설치됐다. 지난 1년 동안 임직원의 기부로 정서 치료를 받은 아동 1400명의 사연을 카드에 담아 장식한 것. 카드 겉면에는 지난해 기부에 참여한 직원 1200명의 이름을 적었다. 로비를 오가는 직원들의 눈길이 쏠렸다.

박은경 GS칼텍스 과장은 “‘나도 후원 신청하면 카드에 이름 적어주느냐’며 문의하는 직원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이와 더불어 CSR추진팀은 정기 후원에 참여한 직원 1200명에게 CSR추진팀이 직접 쓴 손편지와 기념품도 전달했다. 그 결과 전 직원 3000여명 중 1550명이 2014년 정기 후원자가 됐다.

◇수동적 기부는 이제 그만… 직원이 직접 기획하는 투명한 사회공헌 뜬다

사회공헌팀이 주도적으로 기부처를 정하던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직원들이 직접 후원 기관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한 회사도 있다.

“평소 자원봉사를 해온 기관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회복지시설을 추천해주세요. 직원 여러분이 직접 추천한 기관에 기부금을 전달하겠습니다.”

지난 2011년, OCI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임직원 급여에서 1계좌당 1004원씩 기부돼온 ‘사랑의 천사운동’ 기금을 좀 더 뜻깊게 사용하기 위한 취지였다. ‘입사 전까지 오랜 기간 야학 봉사해 온 기관이 어렵다는 소식을 들었다”와이프가 봉사하는 무료 급식소에 도움이 필요하다더라’ 등 다양한 사연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OCI 사회공헌추진단은 임직원이 추천한 곳을 직접 방문해 후원 기관을 선정했고, 그 결과를 게시판에 공지했다. 조연지 OCI 사회공헌추진단 선임책임은 “후원 기관 공모가 끝난 뒤에도 ‘도움이 필요한 기관이 있는데, 혹시 회사 사회공헌 프로그램과 연계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9월부터 한 달 동안 사회공헌 홈페이지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연을 접수하고, 그중 3곳을 지원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총 89건이 접수됐다. 한화생명 임직원들은 직접 기부하고 싶은 사연에 응원 댓글을 달고 후원에 참여했다. 약 20일 동안 무려 2590만원이 모였다. 현대건설은 최근 ‘선택 기부 캠페인’을 시작했다. 회사 홈페이지 내에 장애인·다문화·국제구호·환경보전·지역 내 소외계층 등 5가지로 분류되는 미니 지원 사이트를 만든 것. 직원들이 5개 영역 중 어떤 곳에 기부할 것인지 직접 선택하게 하고, 지원받은 아이들의 소식 등 피드백을 실시간 공유했다. 김세원 현대건설 CSR파트 과장은 “사내 기부 활성화의 성패는 얼마나 자주 알리고, 참여시키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사회공헌팀 직원들은 가수 싸이의 젠틀맨을 개사한 곡 ‘기부맨’에 맞춰 춤을 춘 영상을 전 직원에게 송부했다. 이를 본 직원들은 ‘좋은 날 좋은 기부’에 참여, 1500만원을 모금했다. /신한은행 제공
신한은행 사회공헌팀 직원들은 가수 싸이의 젠틀맨을 개사한 곡 ‘기부맨’에 맞춰 춤을 춘 영상을 전 직원에게 송부했다. 이를 본 직원들은 ‘좋은 날 좋은 기부’에 참여, 1500만원을 모금했다. /신한은행 제공
한화생명 임직원들이 직접 사연을 선택해 후원한 기금이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로 전달됐다. /한화생명 제공
한화생명 임직원들이 직접 사연을 선택해 후원한 기금이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로 전달됐다. /한화생명 제공
장애인·다문화·국제구호·환경보전·지역 내 소외계층 등 5가지 영역으로 나눠 직원들로부터‘선택 기부’를 받고 있는 현대건설 사회공헌 홈페이지 사진. /현대건설 제공
장애인·다문화·국제구호·환경보전·지역 내 소외계층 등 5가지 영역으로 나눠 직원들로부터‘선택 기부’를 받고 있는 현대건설 사회공헌 홈페이지 사진. /현대건설 제공

◇동료·CEO 한마디에 기부율도 ‘들썩’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은 “같은 부서 동료의 한마디가 기부 참여율을 좌우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공헌팀이 100번 홍보하는 것보다 동료 직원이 하는 한 번의 권유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 이에 ㈜두산은 2012년 사내 직원들로만 구성된 임직원기금위원회를 결성했다. 매년 사업부마다 사원·대리급 1명, 관리자(과장·차장·부장)급 1명씩 총 2명을 추천받아 위원으로 선정한다.

총 18명으로 구성된 기금위원회는 정기적으로 모여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잡고, 임직원 기금이 어떻게 쓰이면 좋을지 비공개 투표도 진행한다. 장학생 선정을 위한 서류 검토에도 직접 참여한다. 3년째 기금위원을 연임할 정도로 활동에 열심인 직원도 많다. 이나영 ㈜두산 사회공헌팀 과장은 “회계·영업 등 모든 부서 직원들이 기금위원을 맡게 되면서 기부나 사회공헌에 대한 사내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졌고, 위원들이 부서별로 나눔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면서 “기금위원회 신설 이후 1년 만에 임직원 기부가 약 5000만원 늘었다”고 전했다.

CEO의 마음이 열리면 기부 금액도 늘어난다. 이에 CSR 담당자들은 임원 및 CEO가 직접 기부에 참여하도록 다양한 기회나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한다. 지난 2012년 농협재단에 장학생들이 보낸 감사편지가 도착했다. 4년간 부모님 도움 없이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었던 강원대 학생들의 감사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농협재단은 농업인 자녀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아름 농협재단 담당자는 “재단으로 보내주신 모든 편지는 이사장님께 꼭 보여드린다”면서 “이사장님께서 지인들에게 학생들의 사연을 공유하며 기부를 독려하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감사편지를 읽고 감동한 최원병 농협재단 이사장은 학생들의 사연을 전해 농협 계열사 두 곳으로부터 10억원을 추가 장학금으로 지원받기도 했다.

김기룡 플랜엠 대표는 “NGO만큼 기업들의 모금 전략도 전략적이고 다양해졌다”면서 “작지만 강한 아이디어들이 기업 내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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