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금)

유네스코는 문화재 담당? 한국 이만큼 키운 교육기구죠

민동석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유네스코, 6·25전쟁 때 한국 교과서 공장 인쇄 도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30일이면 창립한 지 60년 올해 모금액 50억원 목표
저개발국 위한 교육사업과 글로벌 리더 육성할 수 있는 키즈 프로그램 확대 계획

“이 교과서요?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을 때,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영등포 인쇄공장에서 제작됐어요. 반기문 사무총장도 이 교과서로 공부했어요.”

지난 11일, 서울 명동에 위치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접견실에 꽂힌 낡은 교과서를 가리키며 민동석(62) 사무총장이 말했다. 오는 30일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창립된 지 꼭 60년이 된다. “창립 60주년을 맞아 새로 태어나겠다”며 “올해 50억원을 목표로 본격적인 외부 모금활동도 벌일 계획”이라는 민 사무총장을 만났다.

―직업외교관 생활 33년을 끝으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맡은 지 1년이 지났다. ‘조직을 탈바꿈시키겠다’고 공언한 이유가 뭔가.

“국민의 눈에 비친 유네스코의 위상과 존재감을 찾아보기 힘들다. 유네스코와 유니세프를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유네스코는 교육과 과학, 문화를 다루는 유엔 전문기구다. 200개가 넘는 회원국을 가진 초대형 유엔 기구다. 우리는 빵이나 약이 아닌, 교육에 전문성을 갖고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 1층에 초등학교 자연 교과서를 기증하며 ‘유네스코 지원으로 만든 이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이 오늘날 유엔 사무총장이 됐다’고 했다. 유네스코가 거둔 가장 대표적 성공 사례가 대한민국이다. 이는 교육으로 이뤄진 것임을 적극 알려야 한다.”

―연 50억원을 목표로 본격적인 모금활동을 벌인다는데, ‘명동에 건물도 있고, 정부의 지원금도 받는 유네스코가 왜 모금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가장 취약한 점은 재정 상태다. 46년 된 건물은 노후화돼 안전사고에 대비한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사업비 지원은 30억원(2013년)으로, 전체 예산의 22% 정도다. 목적사업 예산은 100억이 채 안 됐다. 외부 지원은 갈수록 줄어서 새로운 재원이 필요하지만, 아무도 감히 후원개발을 할 생각을 못했다. 굿네이버스 이일하 회장이 ‘유네스코처럼 평판 좋은 곳에서 왜 아직 후원을 받지 않느냐’고 하더라. 후원을 받는 조직으로 탈바꿈하기로 결심했다. 직원들 10여명은 아예 굿네이버스를 찾아가 워크숍을 하면서 모금교육을 받았다. 작년 상반기에는 지정기부금 단체로 인정받는 등 법적 기반을 마련했고, 올해부터 본격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창립 60주년을 맞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오는 2월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오디토리움에서 비전선포식을 갖는다. 민동석(62) 사무총장은“2002년부터 2009년까지 유네스코본부와 협력하여 북한교과서 발간을 지원했다가 중단됐다”며“앞으로 남북한 및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도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주선영 기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교육부장관이 위원장이고, 미래창조부·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외교부 차관이 부위원장이다. 총회 위원만 60명에 이르는 등 지금까지 준정부기관으로 인식돼왔다. 민간 영역의 ‘파이’가 줄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길 듯하다.

“우리는 재정 면에서는 거의 독립적이고, 의사결정 메커니즘도 독립적이다. 교육부 장관이 위원장을 겸직하지만, 유네스코 위원회 규정에 의해서 별도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있다. 저도 민간인 신분이고, 일반 여권을 쓴다. ‘유네스코 활동에 관한 특별법’에 기반해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돼있다. 이번에 5대 로펌을 다니면서 유권해석을 받았다. 적십자사는 가능한데, 우리가 안 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우리도 이제 구세군처럼 길거리 모금까지 가능하다.”

―제2의 창립, 모금활동 등을 통해 어떤 사업에 가장 주력하려고 하는가.

“유네스코가 우리를 지원했듯이 우리가 가난한 저개발국을 교육으로 도와야 한다는 건 당연한 명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우리의 대표 브랜드 사업을 키울 것이다. ‘뭘 합니까’라고 물으면 ‘유네스코 희망브릿지 사업을 하는데, 저개발국 교육을 통해 삶의 희망을 돕도록 하는 사업’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6개 나라 18개 마을에 설립한 다목적 지역학습센터인 CLC (Community Learning Centre)를 앞으로 확대할 것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 글을 모르는 성인 교실, 소득 증대를 위한 기술교육, 마을회관 등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이곳에 교과서와 학습 기자재를 공급하고, 현지인 교사를 양성할 계획이다.”

―유네스코 사업은 코이카나 다른 국제개발협력을 하는 NGO 사업과 어떤 차별점이 있나. 언뜻 들으면 비슷한 것 같은데….

“국제기구 중 국가위원회를 두고 있는 곳은 유네스코가 유일하다. 다른 나라의 유네스코 국가위원회는 대부분 정부기관의 일부다.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현지 협력기관에 대한 지원과 협력이 훨씬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차세대 글로벌 리더를 육성하기 위한 ‘키즈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가.

“유네스코 사업 중 가장 잘했다고 평가받는 청소년 프로그램 중 하나는 쿠사(KUSA·유네스코한국학생회)인데, 내년이 50주년이다. 쿠사에 관여한 학생만 10만명이 넘으며, 이 중에서 총리도 많이 배출됐다. 그래서 작년에는 ‘유네스코 키즈 프로그램’, 일명 반기문 키즈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미래를 향해 꿈과 비전을 심어주고 이들을 글로벌 리더로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작년에 88명을 뽑는데 1150개 학교에서 2500명이 지원했다. 이 중 32명을 뽑아 2월에 프랑스 파리 본부로 직접 견학을 간다. 박인비 선수가 열 살 때 박세리 선수를 보고 골프를 결심했듯,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도 30% 포함시켜, 기회를 준다. 1년에 100명씩만 선발해도 10년이면 1000명이고, 20년이면 2000명 아닌가.”

―외교관 시절 한·미 FTA 협상으로 온갖 화살을 다 맞았다. 전혀 새로운 영역인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으로서의 보람과 앞으로의 계획은.

“당시 사건을 겪으면서 단단해졌다. 욕설, 협박, 저주를 받아도 견딜 수 있었던 건 공직자로서의 소명의식과 신념 때문이었다. 외무고시에 붙고 난 후 영국으로 떠날 때 아버지께서 서랍에서 ‘태극기’를 꺼내 아내에게 주셨다. 나는 국익 우선 원칙에선 흔들림이 없다. 또 외교관 생활을 하다 보면 한 곳에서 3년씩 지내면서 시간이 뭉텅뭉텅 지나간다.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지, 다음을 생각하면 삶이 너무 허망해진다. 나를 비워야 채워지는 걸 체득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도 ‘작지만 강한 조직’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오늘도 잠에서 깨어나 살아 숨쉬는 걸 감사한다.”

인터뷰=박란희 편집장

정리=주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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