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Cover Story] [신년 대담] 손병두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과 유영학 현대차정몽구재단 이사장에게 공익분야의 길을 묻다

새해 소원요? 나눔이 변함없이 잘 이어지는 거죠
손병두 이사장 – 올해로 재단 운영 7년째
“교육자로서 의식 가져라” 직원들에게 신년사로 강조
유영학 이사장 – 공헌 효과 높이기 위해 가급적 여러 기관과 협력
나눔국민대상 수상키도
한 손엔 논어·한 손엔 주판 들어야 하는 기업인…
“도덕적으로 잘 벌어서 진정성 있게 잘 써야죠”
사업계획·결산자료 모두 정부에게 감독관리 받아 재단의 투명성 높아져
공익재단 운영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소명의식
정부 사각지대 메우기 위해 질적 성장 고민할 것

‘자본주의의 꽃’. 공익재단을 일컫는 말이다. 자신이 번 돈을 선뜻 사회에 내놓고, 공익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록펠러재단, 카네기재단, 빌 게이츠&멜린다재단 등 선진국에선 자본주의만큼 공익재단의 역사도 깊다. 우리나라에도 국내 최초의 공익재단인 양영재단이 출범한 지 70년이 됐다. ‘더나은미래’는 국내 최대규모 재단인 삼성꿈장학재단 손병두(72) 이사장과 현대차정몽구재단 유영학(57) 이사장을 만나, ‘향후 5년, 공익재단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신년 대담을 가졌다.

국내 대표 공익 재단 두 곳의 이사장이 더나은미래 신년 대담에 함께했다. 손병두(왼쪽)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과 유영학 현대차정몽구재단 이사장은 “민간 공익 재단 네트워크를 활성화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재단 전반 생태계를 키워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국내 대표 공익 재단 두 곳의 이사장이 더나은미래 신년 대담에 함께했다. 손병두(왼쪽)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과 유영학 현대차정몽구재단 이사장은 “민간 공익 재단 네트워크를 활성화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재단 전반 생태계를 키워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사회= 경제 위기 속에서도 국내 대표그룹 회장들이 신년사에서 사회공헌 관련 키워드를 언급했다. 두 분은 올해 신년사에서 어떤 점을 강조했는가.

손병두= 올해로 7년째를 맞은 재단 신년사에서 두 가지를 강조했다. 직원들에게 ‘단순 사무직이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지라’고 얘기했다. 장학생들에게는 ‘확실한 국가관을 가지라’고 했다. 7년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장 밀착형 복지를 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유영학= 우리 재단은 2007년에 설립됐지만 2011년 말에 이름을 현대차정몽구재단으로 바꾸고 2년 동안 새로운 사업을 많이 벌였다. 올해는 사업을 내실 있게 운영하면서, 전반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보완하려고 한다. 미국의 유명 재단들처럼 오랫동안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재단이 되자는 포부를 이야기했다.

◇4만명 장학금 주고, 외부기관과 협력해 저소득층 의료지원

사회= 삼성꿈장학재단과 현대차정몽구재단은 다양한 분야에서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역할을 해왔다. 그간의 성과 혹은 가장 인상적인 사업은 무엇이었는가.

손병두= 방과후학교·지역아동센터·복지기관 등에 교육프로그램을 지원하는데, 2만명 이상 아이들이 혜택을 받았고 장학생만 4만7000여명에 달한다. 작년 여름, 평창 청소년수련관에서 초·중학생들을 모아 축구캠프를 열었다. 나도 2박3일 내내 함께했는데, 아이들이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품더라. 내년에는 각 구단주를 초청해 ‘스카우트할 아이들을 눈여겨보라’고 해볼 생각이다(웃음). 또 우리 사업 중 사단법인 바른이봉사회의 지원으로 운영하는 ‘치열교정사업’이 있다. 1인당 1000만원씩 총 170명을 지원했다. 남들 앞에 나서기 꺼리던 아이들이 외모와 발음에 자신감을 갖는 등 달라지더라. 그동안 기업, 대학, 언론사 등에서 많은 직업을 가졌지만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지금이 가장 보람 있고 신난다.

유영학= 우리는 가급적 여러 기관과 협력한다. 자원을 가진 다른 기관들과 함께하면 최소 자원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지원사업을 예로 들면, 대한적십자사는 공간을 지원하고, 서울대병원은 의사들을 제공하고, 우리 재단은 환자 진료비를 지원해준다. 저소득층은 좋은 진료를 무료로 받아서 좋고, 우리는 적은 비용으로 좋은 모델을 개발해서 좋다. 해외 사업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최빈국 말라위에서 코이카(KOICA), 연세의료원 등과 함께 백내장 수술실 등을 갖춘 대형 컨테이너 트레일러 차량을 이용해 이동수술실을 운영한다. 지난해 차량전달식을 하는데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이 모두 참석할 정도로, 외교적인 기여를 했다. 덕분에 지난해 ‘제2회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국무총리표창'(보건복지부·KBS), ‘제2회 대한민국 교육기부대상'(교육부·한국과학창의재단)을 받았다.

사회= 재단법인의 숫자가 4600개에 이르고 이중 민간재단의 수는 1190개에 달했다(아름다운재단 ‘공익재단 기초연구자료’, 2012년). 10억~50억원 자산규모를 가진 재단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1000억원 이상 대규모 자산을 가진 공익재단도 20여곳에 이른다. 공익재단의 확대 및 성장 요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손병두=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초창기 기업들엔 그럴 여유가 없었지만 이젠 ‘소외계층을 돌보고 사회에 기여해야겠다’는 의식의 변화가 생겼다. 공익재단이 많아지는 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됐다는 지표도 될 것이다. 어릴 때부터 기부 문화를 접한 이들이 자라면 더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우리 장학생 중 올해 취업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월급의 1%를 기금으로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진정 ‘나눔의 선순환’이다.

미상_그래픽_사회공헌_공익재단두곳사업현황_2014

사회= 재단의 긍정적 역할에도 1980년대 이후 기업재단이 변칙 상속수단으로 활용돼온 과거 때문에, 아직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손병두= 이젠 모두 공개되는 시대가 됐다. 재단의 사업계획과 결산 자료들이 감독 당국에 보고되고 국세청에 공시된다. 재단의 구성원까지 관리 감독받을 정도로 투명해진 만큼 부정적인 인식을 버릴 때도 됐다. 물론 기업인들도 노력해야 한다.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의 말처럼 ‘한 손엔 논어, 한 손엔 주판’을 들어야 한다. 윤리적·도덕적으로 돈을 잘 벌고, 또 번 돈을 잘 써야 한다.

유영학= 100% 공감한다. 재단 스스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고, 진정성 있는 사업을 꾸준히 한다면 자연스레 인식이 바뀔 것이다. 앞으로도 재단들이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사회공헌 사업을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 공익재단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손병두= 소명의식이 중요하다. 우리 직원들은 감사노트에 매일 감사할 일을 쓴다. 일주일에 책을 한권씩 읽고 매주 월요일에 이를 공유한다. ‘왜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깨우친다. 삼성꿈장학재단 직원들은 지금 방학을 이용해 전국을 다니며 장학생 수천 명을 일일이 면담하고 있다. ‘헌신’이 없으면 공익재단에서 일할 수 없다.

유영학= 재단은 ‘가치’를 실현하는 곳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의 사회공헌을 하는 것은 돈 버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직원들에게 ‘항상 자기 돈처럼 아끼고 고민하면서 써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경쟁자는 규모도 크고 역사도 깊은 록펠러재단이나 카네기재단이다. 그런 역량을 갖춰야 한다.

손병두= 사회복지 분야는 월급도 많지 않고, 일이 힘들다. 그럼에도 이 분야로 뛰어드는 젊은이들을 보면 대단하다. 최근 경력 직원 1명을 모집하는데 1055명이 왔다. 일류 기업에서 3년 넘게 근무한 친구도 지원했다. 사회복지대학원까지 가서 따로 공부하며 인생관을 바꿨다고 했다. 우리 재단의 지원을 받는 곳 중에 일류 대학을 나온 청년들이 강원도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공동체도 있다. 오늘날의 ‘상록수’가 아니고 뭔가.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걸 느낀다.

소외된 이웃을 찾아 교육·복지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온 국내 대표 공익재단 이사장 두 명은 “정부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질적 성장을 끊임없이 고민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꿈장학재단과 함께하는 축구캠프 ‘꾸미꾸미’에 참석한 손병두(위) 이사장과 현대차정몽구재단 온드림스쿨 다빈치 교실에 참석한 유영학 이사장의 모습. /삼성꿈장학재단·현대차정몽구재단 제공
소외된 이웃을 찾아 교육·복지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온 국내 대표 공익재단 이사장 두 명은 “정부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질적 성장을 끊임없이 고민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꿈장학재단과 함께하는 축구캠프 ‘꾸미꾸미’에 참석한 손병두(위) 이사장과 현대차정몽구재단 온드림스쿨 다빈치 교실에 참석한 유영학 이사장의 모습. /삼성꿈장학재단·현대차정몽구재단 제공

◇공익재단 ‘쏠림 현상’ 시간이 해결할 것…규제 완화로 재단 활성화 꾀해야

사회= 선진국에서는 내셔널트러스트(문화유산 보존), 캔서리서치(암 연구), WWF(환경 보존) 등 다양한 분야의 공익재단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익재단은 66%가 학술장학재단으로, 쏠림 현상이 심하다. 공익재단의 다양화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손병두= 우리나라가 가진 유일한 것이 인적 자원이기 때문에 교육 수요는 아직 크다. 삼성꿈장학재단이 4만7000명가량을 지원하는데, 이는 전체 기초생활수급자의 4%도 감당 못하는 수치다. 앞으로 장학재단이 계속 나오리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엔 아직도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하는 이들이 많다. 공익재단이 많아지고 필요한 부분이 채워지다 보면, 사업 내용도 자연스럽게 다양해질 것이다.

유영학= 사각지대를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부가 사회안전망 등에 투자하고 있지만 빠진 부분이 많고, 안정된 사업만 하려는 경향이 있다. 민간에서 리스크가 큰 사업들을 찾아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 민간 공익재단 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도 공유했으면 좋겠다.

사회= 지난해 영국의 기부문화를 둘러봤는데, 영국에서는 ‘사라지는 걸 목적으로 하는 재단’도 있었다. 수입의 90% 이상을 연내에 반드시 쓰게끔 하는 룰도 있었다. 반면, 우리는 재단과 관련된 엄격한 법체계가 공익재단의 다양성과 성장을 막는다는 지적이 많다. 재단의 기본자산 운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공익재단이 특정법인의 주식 5% 이상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한 현행법을 꼽을 수 있다. 공익재단의 활성화를 위한 법 제도상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손병두= 10여년 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복지전달체계에 대해 논의를 한 적이 있다. 국가에서 세금을 걷어 복지에 쓰는데, 중간기관들이 거의 다 쓰고 실제 수혜자에겐 적게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불필요한 중간 단계를 줄이는 대안은 공익재단에 있다. 선진국보다 너무 엄격한 제도, 특히 ‘5% 지분제한’의 경우 앞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세금을 통해 복지서비스를 하는 것보다 공익재단을 통하면 효율적이다. 학생들의 맞춤형 교육과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제한을 풀어줬으면 한다. 예를 들어 한국장학재단은 특별법을 통해 학생들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했지만, 우리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묶여 굉장히 어렵다. 치아교정을 해주기 위해 의사들이 개인정보를 달라고 하는데, 이 길이 막혀 있으니 실무적으로 굉장한 행정력이 낭비된다.

유영학= 공익재단 관련 제도가 상당히 엄격한 것은 사실이다. 역사적 원인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재단의 투명한 운영이 선행되고 신뢰와 존경을 얻는다면 현재의 많은 제한 규정이 풀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회= 100년 넘게 사랑받는 선진국의 공익재단처럼 되기 위해 앞으로 과제가 많을 것이다.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손병두= 앞으로 재단의 기금운용이 화두가 될 것이다. 우리는 각 증권회사·은행 등 전문가들로 투자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기금관리를 자문받고, 이사 및 다른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금위원회에서 또 한 번 기금을 관리한다. 교육복지의 새로운 모델을 만든다는 비전을 갖고 정부 복지시스템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노력을 해할 것이다.

유영학=지난 2년간 주로 미래 인재양성·소외계층 복지사업을 많이 했는데, 앞으로는 문화예술 사업도 늘릴 예정이다. 현재 진행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재점검하고 모니터링할 것이다. 사업의 효과성을 측정하는 등 질적 성장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회=박란희 편집장

정리=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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