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소아암이 죽을 병? 편견 이겨내고 꿈은 이렇게 커졌어요

제작비 전액 기부영화 ‘완전 소중한 사랑’ 실제 주인공들

레슬링 코치 김형수씨
병 때문에 각서 써가며 운동
이제는 어엿한 레슬링 코치

비보잉 사역전도사 조정한씨
소아암 환아들에 용기 주려
정기적으로 비보잉 공연 열어

퍼스널 트레이너 장영후씨
재활에 관심 갖고 직업 찾아
완치자로 구성된 밴드도 활동

영화를 통한 인식 개선을 위해 기업이 사회공헌 비용을 기부한다? 영화 ‘완전 소중한 사랑(감독 김진민)’ 이야기다. 다음(DAUM)이 제작비 전액을 기부했고, 수익금의 70%가 소아암 환아 및 문화예술 단체에 기부되는 ‘기부 영화’다. 소아암을 극복한 청년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미엔 실제 주인공들의 미니 다큐가 등장한다. 영화 속 실제 모델이 된 주인공 세 명을 만났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넘게 백혈병과 싸워 이긴 후 현재 레슬링 코치, 퍼스널 트레이너(PT), 비보잉(B-boying) 사역전도사로 활동하는 이들이다. “몸에 무리가 가는 직업을 선택한 게 아니냐”고 묻자 이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아뇨. 어렵지 않았습니다. 죽음도 이겨냈는걸요.”

소아암을 이겨내고 다양한 재능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3인. 왼쪽부터 김형수, 조정한, 장영후씨. /정유진 기자
소아암을 이겨내고 다양한 재능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3인. 왼쪽부터 김형수, 조정한, 장영후씨. /정유진 기자

열다섯 살 때 백혈병 진단을 받고 꼬박 4년 동안 항암 치료를 받았던 장영후(24·퍼스널 트레이너)씨는 “치료보다 더 힘들었던 건 소아암 환자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과 편견이었다”고 말했다. 1년 만에 돌아간 학교. 장씨는 동급생이 된 후배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했다.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아예 가까이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통원 치료를 받는 중이라 머리카락 없이 모자를 쓰고 있었거든요. 면역력이 약해서 청소를 못 하는 건데, ‘나이 많다고 유세를 떠느냐’며 시비 거는 아이들도 있었고요.” 입원 기간 동안 책을 전혀 못 본 데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외래 진료를 받다 보니 수업 진도도 따라가기 버거웠다. 그는 결국 그해 자퇴를 하고,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소아암 병동 근처에 스포츠의학센터가 있었는데, 그때 재활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처음엔 주위의 걱정도 많았지만 대학교에서 스스로 재활 방법을 연구하고, 다양한 운동을 접하면서 재미를 찾았습니다. 퍼스널 트레이너로 취직할 때도 소아암 완치 사실을 떳떳하게 알렸는데, 면접관이 ‘대단하다’며 박수를 쳐줬어요.”

소아암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해마다 1600여명의 어린이가 소아암 진단을 받지만, 꾸준한 치료로 80% 이상 완치되고 있다. 희귀암인 망막아세포종을 제외하면 유전되지 않고, 전염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소아암 병력을 숨기는 환아나 보호자들이 대부분이다. 조정한(31·비보잉 사역전도사)씨는 고1 때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상처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항암 치료가 끝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담임 선생님이 저만 수학여행에 못 가게 하시더군요. 부모님과 담당 의사 모두 ‘괜찮다’고 하는데도 ‘나는 널 감당할 수 없다’면서 끝내 거부하셨어요.”

여덟살 때 백혈병 진단을 받았던 김형수(26·레슬링 코치)씨는 “오히려 당당하게 병을 이겨냈단 사실을 밝히고, 더 노력했다”고 말했다. 2년간 항암 치료를 받은 그는 열살 때부터 씨름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턴 레슬링 선수로 활약, 전국대회 상을 휩쓸었다. “고1 때 백혈병 병력을 알게 된 레슬링협회에서 갑자기 시합에 나가려면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각서를 쓰라고 하더군요. 각서에 사인하고 보란 듯이 입상을 했죠(웃음).” 18세 때 백혈병이 재발해 2년 뒤에야 골수 이식을 받을 수 있었지만, 형수씨는 재활을 통해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어엿한 레슬링 코치로 활동 중이다. 지난 8월엔 버스 안에서 성추행범을 검거해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영화 ‘완전 소중한 사랑’의 한 장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제공
영화 ‘완전 소중한 사랑’의 한 장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제공

이들은 또 다른 소아암 환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다양한 재능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완치 후 고1 때부터 비보이(B-boy)로 활동해온 조정한씨는 소아암 환아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비보잉 공연을 열고, 한라산 등산, 해병대 캠프 등 소아암 완치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김형수씨는 소아암 병동에서 체육 교실을 운영하고, 소아암 환아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메이크어위시재단’의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이다. 장영후씨는 소아암 완치자로 구성된 밴드(레인보우 브릿지)를 결성해 병원, 학교, 기업 행사 등 다양한 무대에서 4년째 소아암 인식 개선 공연을 열고 있다. 그의 밴드는 영화 ‘완전 소중한 사랑’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 결성한 밴드 ‘핑크 보이즈’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세 사람이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이 세상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잖아요. 소아암 병력 때문에 학교에서, 사회에서 소외받는 일들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길 바라요. 소아암 어린이를 향한 올바른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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