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남을 돌보던 복지사들, 이젠 자신을 돌볼 시간

중부재단 내일을 위한 休사업
소외된 사회복지사의 복지
열악한 임금은 물론이고 희생 당연시하는 인식에 감정노동까지 더해지기도
총 경력 3년 넘는 복지사가 한 달간 쉴 수 있는 안식월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와 교보생명이 사업에 힘 보태
개인·가정 재충전 선물하고 복지업무 매너리즘도 줄여

올해 들어 4명의 사회복지사가 잇따라 자살함에 따라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복지사의 복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과다한 1인당 업무량이나 열악한 임금뿐 아니라 사회복지사의 희생을 당연한 듯 여기는 인식 속에서 감정 노동으로 인한 ‘소진’이 채워지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쉴 권리’조차 당당히 누리지 못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소진된 에너지를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 중부재단이 지원하는 ‘내일을 위한 休(휴)’사업(이하 휴사업)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지난 10월 초 부산, 울산, 경남의 의료사회복지사 6명이 해외여행을 떠났다. /의료사회복지사 부울경팀 제공
지난 10월 초 부산, 울산, 경남의 의료사회복지사 6명이 해외여행을 떠났다. /의료사회복지사 부울경팀 제공

2005년에 처음 시작된 휴사업은 사회복지사를 위한 ‘안식월’ 지원사업이다. 과도한 업무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회복지사들에게 ‘숨 돌릴 시간’을 주자는 것. 한 시설에서 2년 이상, 사회 복지 경력이 총 3년 이상인 사회복지사를 대상으로 한 달간의 ‘쉼’을 지원하고, 기관에는 대체 인력비를 지급했다. 올해 8월 ‘안식월’을 다녀온 이정호(41) 녹번복지관 과장은 사회복지사 경력 18년차. 매년 20일 남짓 되는 연차의 반도 못 쓴 채로 지금껏 시간이 흘렀다. 이 과장은 “한 달간 집에서 중1, 초3인 두 아들이랑 종일 지지고 볶고 잔소리하면서 처음으로 ‘엄마’로서 ‘주부’로서 역할을 한 것만으로도 마음에 곪았던 상처와 고름을 시원하게 짠 느낌”이라며 “그동안 나도 모르게 갉아 먹히고 빠져나간 에너지와 마음이 다시 충전된 것 같다”고 했다.

휴사업은 재단 간의 의미 있는 협력으로까지 이어졌다. 휴사업의 성과와 목표에 공감한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교보생명에서 올해 2억원을 지원한 것. 작년까지 중부재단 자체 자금 3000만원으로 이어져 오던 사업이 올해 2억3000만원 규모로 7배 이상 확장된 이유다. 늘어난 지원 덕분에 올해부터는 ‘개인의 쉼’ 외에도 ‘가족의 쉼’이나 ‘동료와의 쉼’을 추가, 지원 인원을 배 이상 늘리고 가족이나 동료와 함께하는 해외 봉사 및 여행 기회도 제공할 수 있었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외국에서는 좋은 사업이 있으면 재단들끼리 돈을 모아 더 큰 효과를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에선 이런 협력이 일어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면서 “중부재단과 교보가 협력한 것은 굉장히 모범적 사례”라고 평했다.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6박7일간 부산, 울산, 경남의 의료사회복지사 6명은 라오스와 베트남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경력 4년차부터 28년차 베테랑 사회복지사까지 다양한 연령과 경력의 사람들이 모였다. 동아대 의료사회사업과 왕경희(47) 과장은 “동료와 직접 여행스케줄을 짜서 현지 음식도 먹고, 대중교통도 이용해보고, 카약도 타보면서 배낭여행의 매력에 푹 빠졌다”면서 “과도한 업무로 매너리즘에 빠질 만한 시점이었는데 ‘하면 된다’는 것을 느끼고 도전의식도 새롭게 다진 계기였다”고 했다. 그는 이어 “사회복지사가 행복해야 수혜자가 행복한 만큼 복지사를 위한 사회적 배려도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중부재단의 휴사업을 통해 ‘쉼’을 선물 받은 사회복지사들은 지금까지 총 218명. 휴사업은 사회복지사 개인 차원에서 ‘안식월’을 갖는 걸 넘어서 사회복지사 전체의 처우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3년간 휴사업에서 지원받은 조직의 경우 운영규정집에 ‘쉼’에 대한 내용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노원1종합사회복지관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명의 사회복지사가 휴사업으로 ‘안식월’을 가진 후 2012년 조직 규정에 ‘쉼’ 권리를 추가했다. 만 10년 이상 근로한 직원에게는 1개월 유급휴가나 연수 기회를, 5년 근속 직원에게는 2주간의 유급휴가를 보장한 것. 작년부터 지금까지 총 2명의 직원이 한 달간의 ‘안식월’을, 3명의 직원이 2주간의 휴식을 다녀왔다. 이영식 노원1종합사회복지관 과장은 “휴사업을 통해 ‘안식월’이라는 개념에 대해 처음 알게 되어 이제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정례화하게 됐다”며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쉼’이라는 권리를 보장해줘서 좋다”고 했다.

김경하 기자

주선영 기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