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새로운 가족과의 만남이 마냥 즐겁지 않은 이유는

복지 사각에 놓인 위탁 아동
위탁 아동 수 1만5000여명 – 시설 아동 수와 맞먹는 수준
70세 이상 양육자가 절반… 아동이 되레 부양하기도
새 가족 적응도 쉽지 않아 – 위탁 부모가 잘 돌봐주지만
불안한 사춘기 심리상태로 비행에 쉽게 빠지기도

“양육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가정 위탁 아동이 더 낫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김가을(20·여)씨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2005년 김씨는 세 살 터울의 남동생과 함께 부산의 친할머니댁으로 보내졌다. 사업이 어려워진 아버지는 가정을 떠났고, 어머니는 천안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김씨는 “할머니가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해 동생의 머리를 감기거나 이불 개기 등 소소한 일들도 다 내 몫이었다”면서 “편애로 서운한 적이 많았다”고 했다. “쟤는 할머니랑 같이 살아” “조손 가정이래” 등 수군대는 주위의 시선들도 싫었다.

전문가들은 “가정 위탁 아동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가정 위탁 아동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가정 위탁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일정 기간 가정에서 보호하는 제도로 대리양육가정(조손가정), 친인척위탁가정, 일반위탁가정이 있다. 이 중 조손 가정에 해당하는 대리 양육 가정이 70%에 달한다. 2010년 대리양육가정 위탁 실태 조사 결과 70세가 넘는 고령의 양육자가 49%에 달하는 등 신체적·경제적 여건 자체가 열악한 상황이다. 이윤미 부산광역시가정위탁지원센터 사회복지사는 “조손 가정은 세대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거동이 불편하신 조부모들이 많아 보호를 받아야 할 아이들이 부양을 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가정 위탁 아동은 각 가정에 뿔뿔이 흩어져서 생활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도 외부의 지원을 받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김씨는 “교육, 체험 활동 등 각종 프로그램이 위탁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친구들만 계속 나오게 된다”고 했다. 이윤미 사회복지사는 “영화나 뮤지컬을 보는 등 문화 활동을 하더라도 각 가정에 일일이 전화해서 모으는 수밖에 없다”며 “서울 부산 등 대도시보다 강원도 전라도 등 지방일수록 지원 체계에서 제외된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기업에 사회 공헌 프로그램 제안서를 내더라도 ‘얘는 보호자가 있는데 왜 보호를 해야 해?’라는 인식이 많아 항상 2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_그래픽_아동_가정위탁보호현황_2013

일반위탁가정 아동은 심리적 어려움을 크게 겪는 편이다. 정상대(23·남)씨는 “친부모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부모와 사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고 했다. 정씨는 다섯 살 때부터 5년간 보육원 생활을 하다가 친어머니를 만났지만 이내 헤어졌다. 알코올중독 증세가 있던 어머니와 잦은 마찰이 생긴 것이다. 정씨는 지난 2003년 부산광역시가정위탁지원센터로 오게 됐고, 새로운 가족과의 만남이 시작됐다. 그는 “위탁 부모님들이 여러모로 지원을 해줬지만 적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사춘기 시절에는 비행에도 빠진 적이 있다”면서 “센터에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한두 번 만나고 상담도 하면서 점차 안정감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이윤미 사회복지사는 “살아있는 부모와 헤어진다는 경험은 청소년기에 정서적으로 큰 충격일 수 있다”면서 “센터별로 심리치료사를 두고 지원 체계를 갖춰나가고 있지만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전문 시설도, 인력도 부족하기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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