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강의실 밖으로 나온 교수님, 세상을 바꾸는 사회활동가가 되다

대학교수들의 ‘아름다운 외도’
梨大 복지학과 교수 12명_현지 사회복지사 키우려방학때 캄보디아서 강의
가톨릭대 ‘의미있는 소비’_윤리적 소비 강의하니 자발적 헌혈·모금 이어져
숭실사이버대 교수·학생들_소방·안전 동아리 만들어 아동센터 화재 예방 교육

‘상아탑’을 벗어난 대학교수들의 교육기부와 사회공헌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월 18일자 뉴욕타임스에서 “이화여대가 사회사업 개념이 없던 캄보디아에 사회복지학을 수출해 사회사업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분석기사를 실을 정도다. 대학을 넘어 가깝게는 지역사회, 멀리는 해외 개발도상국에까지 지식과 재능을 나누는 교수님들의 ‘아름다운 외도’ 소식을 취재했다. 편집자 주


캄보디아 왕립 프놈펜대학에서 촬영한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님들의 사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제공
캄보디아 왕립 프놈펜대학에서 촬영한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님들의 사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제공

◇캄보디아에 사회복지 석사과정 만든 교수진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12명은 매년 여름방학이면 번갈아가며 캄보디아행 비행기를 탄다. 한국에선 방학이지만, 캄보디아 왕립 프놈펜대학에선 교수들이 도착하는 그 순간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2009년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가 캄보디아 왕립 프놈펜대학(RUPP)에 세운 사회복지대학원 ‘이화-RUPP’ 이야기다.

“캄보디아 내에서 활동하는 국제 NGO들이 상당히 많은 데 반해, 70년대 ‘킬링필드(Killing Field)’로 200만명 가까운 캄보디아인들이 학살당하면서 여전히 정식으로 교육받은 지식인이나 사회복지사가 거의 없어요. 캄보디아가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지 전문 사회봉사자 인력을 키워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상미 교수가 그 취지를 설명했다. 캄보디아에 사회복지학을 수출한 셈이다. 매년 방학마다 교수들은 릴레이식으로 캄보디아에 2주씩 머물며 강의를 한다. 학생들은 학기 중에 현장실습을 하면서 페이스북에 온라인 그룹을 만들어 교수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한다. 논문 지도를 위해 수십통의 메일이 오간다.

“2009년 처음 수업을 할 때 사회복지의 ‘지역개발사업’ 과목을 가르쳤는데, 캄보디아 학생들한테 질문 하나 하면 토론이 끝이 나질 않아요. 자기가 사는 지역의 문제를 진단해서 액션 플랜을 짜오라고 하면 서로 발표하려고 난리예요. 재미있고 힘이 나요.” 멀리까지 강의하러 가는 게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조 교수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캄보디아 강의는 강의료도 받지 않으니 교육기부나 마찬가지다. 1947년 미국과 캐나다 선교사의 노력으로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가 국내 최초로 세워진 걸 감안하면, ‘나눔의 선순환’을 실천하는 의미도 깊다.

원래 이 사업은 국고 지원(BK21 사업)을 받아 시작됐으나, 예산 삭감으로 한때 사업 중단 위기에 놓였다. 교수들은 직접 발벗고 나서 신한은행을 통해 1억여원의 펀드를 마련하기도 했다. 교수 개개인이 돈을 모아 5000달러의 장학금을 마련하여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현지에서 추천한 학생 1명을 이화여대로 데려와 석사과정을 마치게 했다. 2012년에는 교과부에서 선정하는 ‘국제협력대학육성지원사업’에 아시아 대표로 선정됐다.

노력은 점차 결실을 보고 있다. 작년 3월, 14명의 1기생들이 처음으로 졸업했다. 이 중 3명은 2011년 10월 설립한 캄보디아 이화사회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고, 몇몇은 정부 교육기관에 들어갔다.

천경희 교수의 윤리적 소비 강의가 '2012년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ESD) 공식 프로젝트'로 인증받았다. /가톨릭대학교 소비자학과 제공
천경희 교수의 윤리적 소비 강의가 ‘2012년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ESD) 공식 프로젝트’로 인증받았다. /가톨릭대학교 소비자학과 제공

◇윤리적 소비 교육 통해 학생들 소비 문화와 삶 바꿔

“교수님 수업을 들으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돼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무상으로 안과 진료를 하던 인도 의사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한 치과의사가 되고자 합니다. 많이 쓰기 위해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의미 있게 소비하는 법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소비와 윤리’ 강의평가)

천경희 가톨릭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난 3년간 윤리적 소비에 대한 ‘소비와 윤리’ 강의를 해오고 있다. 천 교수는 “소비자학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까’를 고민하는 마케팅 연구는 많지만 ‘어떻게 소비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강의가 없어 안타까웠다”며 “캠퍼스 내 고가의 명품백이 유행하는 현상이나 재사용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들을 보며 대학생들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강의를 기획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결심을 한 이후 강의는 체계적이고도 신속하게 준비했다. 2009년에는 전공생들을 대상으로 시범강의를 하고 논문을 바탕으로 하여 16주짜리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그해 겨울 내내 교재를 완성하여, 이듬해인 2010년 봄학기부터 강의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한 학기에 한 번 개설되던 강의가 이제는 학기당 4개가 개설되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빨리 마감된다. 강의는 학생들이 이론을 배우고 토론에 참가하고 직접 윤리적 소비를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하면 아이들이 정말 많이 바뀝니다. 어떤 친구는 나중에 자발적으로 헌혈과 모금을 해서 소아암 아이들을 돕기도 했고요. 이 수업이 지난 몇년 지속되면서 캠퍼스 내에서도 공정무역커피점 매출이 오르고, 친환경 먹을거리 캠페인이 등장하는 등 여러 변화가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천 교수는 수업을 통한 아이들의 변화를 주제로 논문을 내기도 하였다. 작년에는 강의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함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지속 가능 발전 교육(ESD) 공식 인증 프로젝트’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천 교수의 꿈은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 윤리적 소비 강의가 될 수 있도록 확산시키는 것. 강의의 영상부터 PPT를 다 체계화시켜 놓고 강의를 할 의향만 있으면 어디든 무료로 나눠준다. 실제로 성균관대, 동국대, 인제대에서도 강의를 개설했고 올해 2학기에는 서원대와 충북대에서도 개설을 고민하고 있다.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안전지킴이'봉사활동 동아리 회원들이 사회복지관에서 화재경보기를 설치하고 있다. /숭실사이버대학 소방방재학과 제공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안전지킴이’봉사활동 동아리 회원들이 사회복지관에서 화재경보기를 설치하고 있다. /숭실사이버대학 소방방재학과 제공

◇소방시설 정비 통해 지역사회 소방 예방 앞장서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2007년 ‘안전지킴이’라는 봉사활동 동아리를 만들었다. 1년에 두 번, 지역아동센터나 사회복지시설을 찾아가 소화기나 피난 유도등 등의 안전시설을 설치하고 전기 화재와 같은 부분을 점검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박 교수는 “이전에 보건복지가족부와 함께 지역아동센터 안전시설 실태와 현황조사를 하면서 너무 열악한 시설들이 많아 안타까워 학생들과 함께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지금까지 은평구 주변의 바오로 교실, 신사지역아동센터 등과 같은 곳에서 지난 6년간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매번 봉사활동을 갈 때마다 10명 남짓한 학생들이 함께 참여한다.

봉사활동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공이 컸다. 사이버대학의 특성상 학생의 대부분이 직장인인 데다, 소방방재학과라는 과의 특성상 학생 대부분이 소방관이거나 소방 설비나 안전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소화기 사용방법을 알려주고 연기가 발생했을 때 피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도 함께 이루어진다. 박 교수는 “아이나 노인과 같이 재해 약자들의 경우 사고가 나면 인명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예방교육이 더욱 중요하다”며 “앞으로 이러한 활동을 점차 더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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