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청년 사회적기업 육성 3년차… ‘얼마나’보다 ‘무엇’에 집중해야

청년 사회적기업가 25人의 목소리
중간 육성 기관을 통해 정체성 확립 도움받지만
세심한 조언 부족하고 기관 간 수준 차이 있어
빨리 키워내는 것보다 본격적인 사업 진행 위해 지원금·육성기간 늘려야

“한국도 사회적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젊은 사회적기업가들을 격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최초의 사회적기업가라고 불리는 아쇼카 재단의 빌 드레이튼(Bill Drayton)이 ‘더나은미래'(2010년 5월 18일자)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이다. 사회적기업가는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까. 고용노동부는 2011년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예비 창업팀이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자금(3000만원 이하), 공간, 컨설팅, 네트워크 연계 등을 1년간 지원한다. 2011년부터 시작된 사업을 통해 1000여개 가까운 창업팀이 배출됐다.

올해는 연령 제한(만19~39세)을 폐지한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이 진행 중이다. ‘더나은미래’는 청년 사회적기업가 25명을 만나 3년째를 맞은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의 성과와 한계, 대안을 짚어봤다.

◇사회적기업가로서 정체성 확립에는 큰 도움을 받아

“개인적으로 소셜벤처로 창업한 게 다행이다. 몰랐다면 돈만 밝히는 악덕업주가 되지 않았을까. 상주하는 멘토들이 사업의 사회적인 의미는 무엇인지 계속해서 고민하게 만들어줬다.”(증강 현실 콘텐츠 제작업체 ‘더 봄’의 윤지훈 대표)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은 사회적기업네트워크(세스넷), 씨즈, 열매나눔재단, 사회연대은행, 함께일하는재단 등 전국 중간 육성 기관 약 20곳이 인큐베이팅을 맡고 있다.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 사회적기업가 대다수는 중간 육성 기관을 통해 “소셜 미션 강화 및 정서적 지지에 도움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사업 연계에 도움이 되었다는 입장도 많았다. 사회적 경제 콘텐츠 제작업체인 베네핏의 이성만 편집장은 “초기에는 중간 육성 기관 사업 파트너로 일하면서 역량을 키웠고, 이후엔 씨즈가 한 포털 사이트를 소개해줘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보급하고 있다”고 했다.

중간 육성 기관의 사업 컨설팅은 실질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IT기반 소셜벤처의 I대표는 “상주 멘토 한 명이 평균 7~10개 창업팀을 관리하다 보니, 마케팅·노무·재무 등 분야별로 디테일하게 조언을 받을 수 없어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청주에서 육성 사업에 참여했던 J대표는 “지방으로 갈수록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해 중간 육성 기관의 높은 역량이 더 요구된다”면서 “아직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운영 방침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똑똑해지는 청년 사회적기업가들, 중간 육성 기관도 골라서 간다

교육업체 A대표는 지난해, 서울 권역 중간 육성 기관 5곳의 설명회에 모두 참석했다. 그는 “창업 아이템과의 사업 연계성을 꼼꼼하게 따져본 뒤 명동에 있어 접근성이 좋은 열매나눔재단을 선택했다”며 “해외 프로그램 개발 경험이 많아 사업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1기 창업팀으로 인큐베이팅 받은 후, 소셜벤처로 성장하고 있는 조율. /조율 제공
1기 창업팀으로 인큐베이팅 받은 후, 소셜벤처로 성장하고 있는 조율. /조율 제공

소셜펀딩 전문 사회적기업 오마이컴퍼니 성진경 대표도 “사회연대은행은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 경력이 10년 정도였기에 연관성이 있어 지원했다”고 했다. 1기 창업팀 대부분이 “지역이 가까워 공간 사용이 편해서” “지인 추천” 등의 이유로 중간 육성 기관을 선택했던 것보다 진화한 형태다.

3년 차 사업에 들어서면서, 청년 사회적 기업 대표들은 각 기관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A기관은 관리가 엉망이라 다른 곳에서 사업을 하라고 조언했다”, “B기관은 창업팀을 기관 행사에 동원하더라”, “C기관은 상주 멘토도 중간 육성 기관 직원이 아닌 경제·사회적기업 분야 외부 전문가를 고용해 좋은 성과를 내더라”는 등 평가도 있었다.

비보이 공연제작 전문업체 조율은 사회적기업경기재단과의 협의를 통해 부천문화재단으로 중간 육성 기관을 바꿨다. 조율의 송용남 대표는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사업 영역을 확대해야 했기에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은 곳과 파트너를 맺어야 했다”면서 “창업팀과 중간 육성 기관은 ‘서로 잘되어야 한다’는 신뢰를 갖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조율은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후속 단계 지원 사업인 ‘H-온드림’ 펠로로 지정되었고, 지난해보다 매출이 10배가량 늘었다.

25인의 청년 사회적기업가들은 "중간 육성 기관의 인큐베이팅을 받으면서 소셜 미션 확립에는 도움을 받았지만 사업 유형에 맞는 지원책 마련 등 변화가 필요한 시점" 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선일보 DB
25인의 청년 사회적기업가들은 “중간 육성 기관의 인큐베이팅을 받으면서 소셜 미션 확립에는 도움을 받았지만 사업 유형에 맞는 지원책 마련 등 변화가 필요한 시점” 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선일보 DB

◇질보다 양 중심 육성 사업의 한계점도…

한편, 청년 사회적기업 대표 가운데 상당수는 “제조업 중심의 회계 처리 방식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앱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셜벤처의 H대표는 “우리 사업은 앱 개발이 사업의 핵심인데, 사업비를 지원받으려면 웹사이트 구축이나 앱 제작을 외주로 맡겨야 가능하다는 처리 규정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며 “결국 내부 인력으로 자체 개발했다”고 말했다. 공연제작업체 K대표는 “문화예술분야 소셜벤처들은 사업 개발비 명목으로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다”면서 “배우 인건비 충당을 위해 개인적으로 지출을 해야 했다”고 했다.

“많은 창업팀을 단기간에 육성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이다”라는 지적도 있었다. 중간 육성 기관의 한 관계자는 “해마다 양질의 사회적기업을 350개씩 창업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며 “사회적 경제 생태계 조성이 아니라 청년 창업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평가했다. 친환경 도시주택개발업체 녹색친구들의 김종식 대표는 “20개 팀을 뽑을 것을 10팀으로 축소하고 지원금과 인큐베이팅 기간을 2배로 늘리는 등의 방법이 더 적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간 육성 기관 간의 편차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지방에서 지역 재생 관련 사업을 진행한 L대표는 “중간 육성 기관 내부 문제로 장소·멘토링 부분에서 사업적인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며 “전국 단위 워크숍에서 서울의 창업팀과 멘토들을 만났는데 사업의 고민 수준과 진행 상황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S기관에서 육성 사업에 참여했던 K대표는 “중간 육성 기관마다 규모와 인적네트워크도 다르기에 인큐베이팅을 받은 창업팀도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라며 “서로 강점을 교환하고 협력할 장치도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년 사회적기업가들이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사진 및 미디어 콘텐츠 제작업체의 P대표는 “보통 창업팀들의 가장 큰 오류는 지원받은 금액 안에서 사업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이라며 “길거리에서 떡볶이 사업을 할 때도 내 돈을 투자해서 하는 것처럼 내 사업을 한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김경하 기자

문상호 기자

주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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