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편한 휠체어 책상 덕분에 꿈에 한걸음 다가섰죠”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사회공헌

지난 21일, 서울대학교 기숙사 앞으로 미니 승합차 한 대가 섰다. 차량 뒷문이 열리고 휠체어 전용 리프트가 느린 속도로 천천히 땅에 내려앉았다. 유동엽(19·지체장애 1급·서울대 사회과학대 지리학과 1년·사진)씨가 오른쪽 손가락을 까딱이며 리모컨을 조종하자, 그가 앉은 휠체어는 승합차 속으로 들어갔다. 이 차량은 휠체어로 수업을 이동해야 하는 장애인을 위한 서울대 캠퍼스 내 특별 스쿨버스다. 승합차가 내린 곳은 유씨의 오전 수업이 있는 사회과학대 건물. 강의실 맨 앞자리는 늘 유씨의 차지다. 손을 쓰지 못하는 유씨를 대신해 사회학 강의를 대필해주는 도우미 친구는 익숙한 듯 유씨를 위한 휠체어 공간을 만들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경남 거제도 작은 어촌마을 출신인 유씨는 올 3월,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했다. 유씨가 서울대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모두 ‘기적’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씨는 다섯 살 때부터 ‘듀센형 근이영양증’이라는 유전성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다. 근육을 유지하는 단백질의 결핍으로 인해 몸통과 팔다리를 비롯한 신체 주요 근육이 점차 위축되는 질병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휠체어에 의지했으며, 현재 유씨는 하반신과 상반신이 거의 마비돼 손가락만 약간 움직일 수 있는 정도다.

공부는 어떻게 했을까. 유씨의 어머니는 “일주일에 2~3번, 많게는 매일 병원으로 통원치료를 다니느라 시간도 부족하고 몸이 불편해서 오래 앉아 공부할 수도 없었는데, 집중력이 높았다”고 말했다. 유씨는 움직일 수 있는 오른쪽 손가락으로 교과서를 한 장씩 넘겨가며, 그날 배운 건 그날 안에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즐겼다. 서울대 입학 과정도 드라마틱했다.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입학을 포기하려 했을 때, 이런 사정을 안 학교 선생님과 지역 주민들, 거제도 교육청, 경남도 교육청, 대우, 농협, 수협, 심지어 인근 고등학교까지 돈을 모금해 유씨의 입학을 도왔다. “마음이 너무 벅차죠.” 감사한 분들을 한 분씩 언급하는 유씨의 얼굴이 상기됐다.

그의 꿈은 지리학을 전공하여 도시 설계사가 되는 것. 어렸을 적부터 워낙 지리를 좋아해 지도가 닳을 때까지 갖고 놀아 웬만한 도시나 지형은 꿰고 있을 정도라고. 이제는 그 흥미를 살려 장애인들이 밖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도시를 설계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내년에 지도학·도시지리학 같은 과목들을 들으려고 생각해두었다”며 “고마운 분들이 많은 만큼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유씨가 꿈에 다가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학습용 보조기기다. 이를 위해 올 2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유씨의 학업을 돕기 위한 보조기기를 지원했다. 유씨는 “휠체어 앞에 책상 역할을 할 수 있게 고정하는 ‘휠체어 책상’을 가장 유용하게 쓰고 있다”며 “노트북에 책까지 들어갈 수 있고, 강의실 책상 높이가 안 맞아도 휠체어에 고정시켜 놓고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페이지터너의 경우 책을 끼워놓고 리모컨을 누르면 자동으로 책장이 한 장씩 넘어가는 기기다. 유씨는 “누우면 책을 전혀 읽지 못해서, 책을 읽기 위해 계속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누워서도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 좋다”고 말했다. 생명보험재단 정봉은 전무는 “희귀난치성질환으로 투병 중인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꿈과 희망을 이루는 데 재단의 학습용 보조기기 지원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유씨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꿈을 놓지 말고 노력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꿈은 이루어질 겁니다.” ‘소녀시대’의 태연을 가장 좋아한다는 유씨는 “기회가 되면 밴드 동아리에서 보컬이나 작곡도 해보고 싶다”며 새내기답게 활짝 웃었다.

희귀난치성질환자 위한 학습용 보조기기 신청하려면

생명보험사회재단은 지난 2011년부터 학습 의지와 목표가 뚜렷한 희귀난치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학습용 보조기기를 지원해오고 있다. 매달 신청을 받고 있으며 지금까지 200건이 넘게 대여해왔다.

문의: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후원 ‘한벗재활공학센터’(02-712-6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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