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국립대병원·NGO, 고액 기부자 향한 ‘모금전쟁’ 중

비영리·대학병원 기부 활성화 대책

비영리단체 후원자 기근
액수보다 신뢰 먼저 얻고
기부 방법 개발해야

대학병원은 기부금 부족
서울대병원 기부후원금
전체 예산 1%밖에 안돼
현재 기부접수는 되지만
모집은 할 수 없게 제한
이젠 법률 바꿔야 할 때

한국기부문화연구소장
“국민에게 공익성 알리고
기부로 받는 혜택 강조”

질문: ‘한국해비타트’는 어려운 이웃의 집을 지어주는 프로젝트다 보니, 자원봉사만 생각하지 돈을 기부하는 후원자 모집이 어렵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까.

답변: 해비타트는 ‘결연 후원’이 아니라, 정기 후원자들에게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만들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부분 부품’을 분할해 정기후원 상품을 개발하면 된다. 소액 후원자들이 너무 많으면, 관리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다른 단체에서 아동 결연 모금이 잘된다고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은 자신의 단체에 대한 본질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박준서 엔시스콤 공동대표.
박준서 엔시스콤 공동대표.

지난 9일, 비영리단체 팀장급 이상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NPO공동회의의 ‘고액 기부 개발전략’ 일일 워크숍 현장이다. 박준서 엔시스콤 공동대표는 “NGO들이 모금 액수에만 집중하는데, ‘조직의 미션’을 상품화하고, 후원자의 마음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돕게 하는 방안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상품화’다.

박준서 대표는 고액 기부 개발을 위해 ‘우리가 누구인지 명확히 정의하는 것’을 일순위로 꼽았다.

“‘우리 단체는 대북 지원 사업을 합니다’가 아니라, ‘1만명의 아동에게 1년 동안 반건조 국수를 제공하는데, 이 국수는 3일이 지나면 썩는다. 국수 공장 유지비로 10만불이 든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북한 아이들이 국수를 팔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지울 수 있고, 신뢰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박 대표는 “기관의 총 모금액 대비 적정한 고액 기부 비율을 설정하고, 특별한 프로젝트를 할 때 구체적인 고액 기부자를 찾는 목표를 만들어야 한다”며 “기부자들에게 자신의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회계 서류가 필요하다”고 모금 전략을 설명했다.

◇수익구조 취약해지는 병원, 모금에 ‘눈길’

같은 날 오후, 서울대병원에서는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학병원의 기부 문화 활성화 방안’이란 주제로 춘계 심포지엄이 열렸다. 오는 20일부터 6월 4일에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문화예술 분야 현장 전문가를 상대로 한 ‘모금 스쿨’을 개최한다. 한편, 국립암센터는 지난해 8월과 올 3월, 170명에 달하는 병원 리더들을 대상으로 비케이안 한국기부문화연구소, ㈜도움과나눔 최영우 대표를 초청해 병원 모금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대학과 병원, 비영리단체의 치열한 ‘모금 전쟁’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서울대병원이 직접 나서서 모금을 주제로 한 세미나까지 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바로 병원의 ‘미래’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최영우 도움과나눔 대표는 “현재 병원 수익구조를 살펴보면, 진료 수익률은 1~4%로 낮고, 기본재산도 이자율이 낮고, 정부 지원금은 연구에 제한이 많고, 주차·장례식장·식당 등 수익사업은 논란이 있고, 외부 모금은 매우 저조하다”며 “모금을 통해 기부자들을 병원에 끌어들여, 진료 수준과 연구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향후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예종석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은 “MD앤더슨 병원은 1년에 5000억원 이상 모금하는 데 반해, 서울대병원은 전체 누적 후원금이 800억원가량”이라며 “해외병원은 전체 예산의 20~30%가 기부후원금인데, 서울대병원은 1%밖에 안 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스티븐 웨스트 전 AHP(Association for Healthcare Philan thropy) 미국병원모금전문가협회 회장은 “의료기관에 기부하는 사람의 50%는 병원 환자였거나 의사나 직원 등 병원과 관계 있는 사람들”이라며 “모금 부서를 병원의 전략부서로 만들고, 펀드레이저(fundraiser·모금가)를 전문가로 대우하고, CEO와 이사회가 모금에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1 서울대병원의 발전후원의 밤. 서울대병원은 “현재 자발적인 기부금품 ‘접수’만 가능하고, ‘모집’은 할 수 없도록 제한돼 있다”고 어려움을 밝혔다. 2 서울대병원 본원에 설치된 기부자 기념벽. 서울대병원은 고액 기부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SMS 알림을 통해 진료 편의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후원자 예우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1 서울대병원의 발전후원의 밤. 서울대병원은 “현재 자발적인 기부금품 ‘접수’만 가능하고, ‘모집’은 할 수 없도록 제한돼 있다”고 어려움을 밝혔다. 2 서울대병원 본원에 설치된 기부자 기념벽. 서울대병원은 고액 기부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SMS 알림을 통해 진료 편의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후원자 예우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고액 기부자 응급실 도착하면 진료 편의 제공하기도

펀드레이징 조직을 갖춰가고 있는 국내 대학들에 이어, 대학병원들도 모금 조직을 갖추고 다양한 후원자 예우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김경환 서울대병원 발전기금부실장은 “기부 활성화를 위해서는 병원의 멘탈(mental)이 살아있어야 한다”며 “후원의 밤, 작은 음악회, 사진전 등 외부 활동도 중요하지만, 인턴·레지던트·전임의 등 신입 의사들을 대상으로 병원의 기부문화와 후원회를 소개하는 등 내부의 참여를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액기부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SMS 알림을 통해 진료 편의를 제공하고, 서울대병원 본원(1층), 암병원(3층) 등에 진료실·연구기금·기자재 등에 기부자 이름을 적은 ‘기부자 기념벽’을 설치했다.

배석호 가톨릭대 성의교정 발전기금팀장은 “지난 2006년부터 3년 동안 서울성모병원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3603명을 대상으로 247억원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동문의 숲’을 조성하거나 개인별 나무 한 그루당 1000만원 기부 등 다양한 기부 상품을 개발했다”며 “이 과정에서 모금 전문가가 없다 보니 전략이 부족해 내부 교직원·동문의 모금 피로도가 높았던 반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이 병원은 모두의 것’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설득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가톨릭대병원은 현재 ‘생명존중기금’이라는 의료발전기금을 시작, 홈페이지(fund.cmc.or.kr)를 통해 모금사업을 소개하고, 기부자 통계자료도 관리하고 있다. 2010년에는 삼성생명·교보생명과 기부보험(사망 시 보험금을 지정 단체에 기탁하는 기부 방식)도 협약했다.

◇병원의 환자가 모두 기부자 될 수 있어…인식 전환 필요

국내 대학과 대학병원이 정부 보조금을 받거나 수익사업을 함으로써, ‘공익 비영리법인’보다는 ‘영리법인’으로 인식되어온 한계를 극복하지 않는 한 기부금을 대폭 늘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비케이안 한국기부문화연구소장은 “서울대병원의 외부 기부자들이 병원의 의료 서비스를 배급받는 듯한 인상을 받아서는 ‘자선’을 이끌어낼 수 없다”며 “15년 전 미국의 MD앤더슨병원이 ‘왜 돈 많은 병원이 모금하는지’ 이해못하는 국민을 상대로 설득하는 데 성공했듯이, 우리나라 병원도 ‘여러분이 기부하면 하루 환자 100명을 10명으로 줄일 수 있다’는 등 공익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의 환자가 모두 기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모금을 필요로 하는 조직은 늘어나는 데 반해, 아직 관련 법률이나 국민의 인식 수준은 ‘모금’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높아 이를 극복하는 것이 향후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현행법상 기부금품 ‘접수’만 가능하고 ‘모집’은 할 수 없도록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한영수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전 법제처 행정법제국 국장)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가기관이나 국가기관이 출연한 단체가 타인에게 기부금품을 요청하는 행위는 일종의 강압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 폐해를 막기 위해 규제해왔다”며 “우리 사회의 ‘기부 성숙도’에 비해 법률이 뒤처지고 있는데, 지금의 ‘원칙 금지, 예외적 허용’ 법률을 ‘원칙 허용, 예외적 금지’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란희 편집장

문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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