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일회성 이벤트에만 후원 몰려… 지역아동센터의 ‘빈익빈부익부’

지역아동센터 지원 실태의 명암

외부 결연 의존하다보니 아동센터 간 격차 심해져
기업 주도 프로그램 가득… 정작 시설 보수는 허술해
학교·지역사회 연계 통해 기부 ‘쏠림현상’ 방지해야

미상_그래픽_기업사회공헌_스마일부익부빈익빈_2013“아동 30명을 2~3명이 돌보다 보니 기업 후원을 발굴할 여력이 없다. 후원만 믿고 시설을 운영할 수도 없다. 경기나 (사회공헌) 트렌드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성태숙 서울 구로 파랑새지역아동센터 시설장)

“3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현대 등 대기업 3곳과 후원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업 프로그램 위주로 시설이 돌아가더라. 선생님들도 지치고 아이들도 지쳤다. 본연 업무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최근에는 기업 (프로그램) 후원을 잘 받지 않는다.”(이인수 경남 양산 웅상지역아동센터 대표)

지역아동센터는 대표적인 국내 아동복지기관이다. 지난 2004년 890여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4003개(2012년 6월 기준)까지 늘었다.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복지시설 중 가장 많은 수로, 도움을 받는 아동은 10만명이 넘는다. 박영숙 지역아동센터 중앙지원단장은 “생활 관리나 학습 관리는 물론, 부모 상담 등으로 가정 문제까지 돌봐야 하는 게 최근 지역아동센터의 역할”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맡아야 하는 아동복지 역할을 대행하는 데 반해 운영 형태는 ‘반관반민(半官半民)’이다 보니 시설이나 운영 프로그램 수준이 천차만별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80%가 외부 결연하다 보니 ‘빈익빈 부익부’ 발생

국내 지역아동센터의 80%정도가 외부 기관과 결연 혹은 협약을 맺고 있다.
국내 지역아동센터의 80%정도가 외부 기관과 결연 혹은 협약을 맺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전국지역아동센터 실태조사보고서(2012)’에 따르면 지역아동센터 한 곳이 받는 정부지원금은 평균 408만원 정도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은 “정부지원금은 통상 한 시설 운영예산의 60% 수준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은 지역아동센터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게 했다. 지역아동센터 4003곳 중 80%에 달하는 3138곳이 외부와 결연이나 협약을 하고 있다. 의존적인 운영 형태는 시설 간의 격차를 발생시켰다. 기업 등 민간 지원이 몰리는 곳은 프로그램이 넘치고 정부지원금에만 의존하는 곳은 낙후되는 ‘빈익빈 부익부’가 발생하는 것. 지역아동센터 중 민간기업의 후원금을 받은 경험이 있는 곳은 전체 24.7%(988개)에 불과하며 물품을 지원받은 곳도 23.7%(949개)에 그친다. 이인수 웅상지역아동센터 대표는 “기업체들이 사업 공모를 해서 제안서를 들고 가면 항상 만났던 시설장들만 와있더라”며 “기획력과 마인드를 갖춘 시설은 계속 후원을 받고 운영에만 급급한 곳은 (후원에서) 멀어진다”고 했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 ‘지역아동센터전국연합회’ 등 관련 협의체가 7개나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협의체는 외부 후원이 들어오면 이를 각 지역아동센터에 배분해주는 역할을 한다. 지역아동센터의 한 관계자는 “영세한 시설들은 자신을 어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협의체에 의존한다”며 “협의체가 많다 보니 이해관계에 따라 (후원을 두고) 다투는 일도 발생한다”고 했다. 지역아동센터 중에 협의체에 가입하지 않은 곳은 238곳(3.9%)에 불과하다. 반면 2개 이상 중복 가입한 센터는 전체 1770곳(44.3%)에 이른다.

◇기업 후원 받아도 실질적인 도움은 안 돼

지역아동센터는 시설비·인건비 지원이 시급한데 비해 기업의 지원은 프로그램 후원에 몰리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는 시설비·인건비 지원이 시급한데 비해 기업의 지원은 프로그램 후원에 몰리고 있다.

기업 후원이 반드시 지역아동센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메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향후 1년 이내에 개보수가 필요한 시설이 전체 66%에 이른다. 지역아동센터의 한 관계자는 “부모가 와서 낙후된 시설을 보고 아이 보내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지만, 시설 개보수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국 지역아동센터의 63.4%(2536곳)는 개인이 운영한다. 하지만 시설 보수나 인건비 등에 쓰라고 돈을 주는 기업은 거의 없다. 이인수 대표는 “기업은 ‘이벤트’가 포함된 프로그램 연계 후원을 선호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초기에는 ‘아이들을 위한 것’에만 초점을 맞췄던 기업도, 기업사회공헌의 경쟁이 심해지니 이벤트나 결과 보고를 중요시하더라”며 “기업 의도에 맞춰서 선생님과 아이들을 참여시키면서 ‘무엇 때문에 이걸 하고 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인건비·운영비는 부족한데 프로그램비만 넘쳐나면 장기적으로는 시설 운영이 어렵다”고 조언하는 관계자도 있었다.

프로그램이나 지원 등 외부 후원이 많아지면서 이를 악용하는 지역아동센터도 생겨나고 있다. A기업의 사회공헌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전국 지역아동센터 800여곳을 돌아본 한 사회복지기관 관계자는 “어떤 지역아동센터는 지원받은 물품이 많은데도 추가로 지원요청을 하기도 했다”며 “개인적인 목적인지 진짜 지역아동센터를 위해 요청하는 것인지 애매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와 지역아동센터, 지역사회 등이 연계해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아동센터 중앙지원단은 올 상반기 내에 지역아동센터 운영 표준화 방안과 기본 프로그램을 개발해 하반기에 보급할 계획이다. ‘쏠림현상’ 방지도 주력 활동 중 하나다. 박영숙 단장은 “전국에 지사를 4300개 정도 갖춘 ‘SK에너지’가 지역아동센터와 일대일로 연계해 ‘책 보내기 사업’을 하는 등 중앙 차원에서 연계와 배분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작년 연말 교육부, 복지부, 여가부 등이 연계해 ‘방과 후 돌봄서비스 범정부 통합지원방안’을 마련한 것도 대안으로 꼽힌다. 교육부(학교), 복지부(지역아동센터), 여가부(지역사회) 등의 주체들이 활발히 교류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서울시 노원구, 경기 성남시 등 6개 지자체가 시범 사업 지역으로 선정돼 협의체 구성을 진행 중이다. 김홍원 한국교육개발원 교과교실제 연구·지원센터 소장은 “학교와 지역아동센터 간의 대화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학교가 좀 더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질 필요가 있으며 지역아동센터에 프로그램이나 인력을 지원할 수 있는 ‘예산 운용의 융통성’도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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