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마이크로크레딧, 규모는 커졌는데… 성공한 창업자도 그만큼 많아졌을까

마이크로크레딧 사업 10년성과와 한계, 그리고 대안

민간 기관 사회연대은행
2003년 2억3000만원 시작… 현장 밀착관리 할 수 있는
전담 인원 ‘RM’ 도입

미소금융, 시장 확대했지만… 자활 의지 안 따지고 대출
기존 민간 기관 활동 축소

민간 기관은 자생력 키우고… 미소금융은 전문성 키워야

미상_그래픽_마이크로크레딧_돈우산_2013일자리를 통한 복지는 박근혜 정부의 새 화두다. 가난한 사람들의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무담보 소액대출) 사업은 ‘빈곤 탈출’을 위한 사다리 역할을 한다. 지난 2003년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이 본격 시작된 지 올해 10년째다. 사회연대은행 설문조사 결과 마이크로크레딧을 통해 창업하는 주목적은 생계 유지(76.5%)가 가장 컸으며, 준비기간은 3개월~6개월, 6개월~1년이 각각 20.6%로 가장 높았다. 업종별로 보면 일반 서비스업이 29.8%로 가장 높았고 음식점업(29%), 도소매업(15.1%)이 그 뒤를 이었다. 평균 종업원 수는 1명, 월평균 매출액은 1389만원, 순수익은 332만원으로 나타났다. 기초생활수급자의 비중은 30.5%, 1인당 평균 대출액은 1900만원이었다. 지원 기간별 생존율은 1년차 99%, 2년차 93%, 3년차 86%, 4년차 76%로 집계됐다. 이는 통계청이 발표한 일반사업자의 1년차 72%, 2년차 56%, 3년차 46%, 4년차 39%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사회연대은행 지원 업체 대상으로 배포한 설문지 중 응답한 240개 조사) 10년째를 맞은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의 성과와 한계, 대안을 짚어봤다.

이종수 한국사회투자 대표(전 사회연대은행 대표)는 “처음 국내에서 마이크로크레딧을 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에선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사업 특성상 창업시장이 포화에 이른 우리나라에서 무담보·무보증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은 위험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989년 시작한 프랑스의 마이크로크레딧 기관 ‘아디(ADIE)’는 대출자가 연체와 부도로 이어지는 등의 시행착오를 20년이나 겪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사업을 진행했던 ‘신나는 조합’이 어려워진 이유도 대출에 대한 사후관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후발주자였던 사회연대은행은 창업자에 대한 현장 밀착 관리에 주목했다. 대출자 선정 단계부터 사후관리까지 함께 하는 전담 인원 ‘사후관리컨설턴트(Relationship Manager·이하 RM)’를 도입한 것. 박창균 교수는 “후진국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에서는 대출 담당자가 한달에 몇번씩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방문하는데, 이런 활동을 한국 실정에 맞게 차용한 형태”라고 했다. 현재 사회연대은행의 RM 수는 14명(총 40명 중)으로 RM 한 명당 관리해야 하는 업체는 118개다. 지난 2008년(21명) 이후부터 RM 수는 줄고 관리업체 수는 늘고 있는 실정이다.

◇미소금융중앙재단 등장, 양적 확대 뒤엔 민간 활력 축소 부작용도

왜 그럴까. 미소금융중앙재단의 등장은 민간에서 서서히 정착해가던 국내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에 빛과 그림자를 남겼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18개에 이르는 다양한 민간 기관에서 마이크로크레딧을 하겠다고 나섰고, 보건복지부도 300억원을 들여 민간 전문 기관을 육성하는 사업을 펼쳤다. 박창균 교수는 “민간 기관은 자금 확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적 재원을 통해 대규모 자금 조달을 가능케 하는 미소금융중앙재단의 등장은 규모화의 좋은 기회였다”고 했다. 실제로 미소금융의 등장은 마이크로크레딧 시장을 크게 확장시켰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이 지난 4년간 대출한 7000억원은 사회연대은행이 10년 동안 대출했던 금액의 20배가 넘는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박 교수는 “정부는 형평성을 위해 자격요건을 공시해야 하는데, 이를 바꿔 말하면 그 요건만 맞으면 무조건 대출을 해준다는 것”이라며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대출로는 마이크로크레딧의 핵심인 자활 의지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고 했다. 현장 밀착관리도 부실해졌다. 안준상 사회연대은행 실장은 “금융위원회가 관리·감독하는 금융상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현장 관리에 대한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이듬해 뒤늦게 ‘희망봉사단’이라는 자원봉사 조직이 생겼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었다. 박 교수는 “창업한 점포가 망해서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돈을 꿔준 기관도 망하는데, 이런 관리를 자원봉사자에게 맡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희망봉사단의 한 자원봉사자는 “대출자 7만명을 자원봉사자가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업체를 방문한다고 해도 그저 어려운 사정을 듣고 오는 정도”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미소금융의 등장이 기존 민간 기관의 활동을 축소시켰다는 것이다. 2003년 2억3000만원으로 시작한 사회연대은행의 마이크로크레딧 대출은 2008년 82억원으로 높아졌다가 2010년 39억원, 2011년 19억원까지 감소했다. 안준상 실장은 “RM당 관리업체는 2008년 34개에서 지난해 118개로 급증하고 있어 업무의 과부화가 우려되는 실정”이라고 했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의 희망봉사단원들이 전통시장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미소금융중앙재단 제공
미소금융중앙재단의 희망봉사단원들이 전통시장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미소금융중앙재단 제공

◇자생력 갖춘 민간 전문 기관 등장해야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미소금융중앙재단의 전문 인력 양성을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의 한 관계자는 “기업 재단이나 지역 지점의 대표자가 보통 현직 CEO나 은행장으로 사실상 마이크로크레딧 사업 경력이 전무하다”며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거나, 민간 전문 기관과 긴밀히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복지사업자의 한 관계자는 “미소금융중앙재단은 대출원금만 지원할 뿐 대출 이자로 창업자 운영·관리비를 부담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빚을 못 갚을 위험이 있는 개인 창업자보다 상환율이 비교적 높은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데, 이는 미소금융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창균 교수는 “불성실한 채무자에 대해서는 추심도 하고, 악질적이면 소송도 해야 하는데, 민간 기관은 그런 의지나 능력이 부족한 편”이라며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이 너무 복지 쪽으로만 흐르는 경향은 한국의 민간 기관들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로, 지금보다 이자율을 조금 높이고 운영 경비를 보조할 수 있는 자립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이크로크레딧 사업

1976년 방글라데시의 무함마드 유누스 총재가 시작한 ‘그라민은행(Grameen Bank)’는 마이크로크레딧의 효시다. 그라민은행은 담보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고리대금업자에게 허덕이는 걸 본 유누스 총재가 만든 은행이다. 담보와 신원보증 없이 대출가능한데, 놀랍게도 상환율이 연평균 90% 이상이었다. 한 지점 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신용이 나쁘면 다른 대출자가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신용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개발도상국에서만 상업은행, 마이크로크레딧 전문은행, 협동조합, NGO 등 1만개의 기관들이 8000만명의 고객에게 마이크로크레딧 서비스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0년 ‘신나는 조합’이 처음 시작했다. 그라민은행의 한국지부 형태로, 연대보증을 통한 집단대출 등 그라민은행의 사업 모델을 차용해 출발했다. 2002년에는 사회연대은행이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딧을 선보였다. 도시 저소득층의 창업자금을 공급하는 남미형을 수정·보완한 모델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마이크로크레딧의 정책적 지원이 이뤄지면서 함께일하는재단, 해피월드복지재단, 하나희망재단 등에서도 사업을 전개했다. 2009년에는 미소금융중앙재단이 등장하면서 정부 주도형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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