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Cover Story] “희망을 대출받아… 자활의 꿈을 이뤘습니다”

서민금융을 대표하는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무담보 소액대출)’이 도입된 지 10년. 국내 마이크로크레딧 전문기관 ‘사회연대은행’이 사업 10주년을 맞아, 창업자 대상 설문 조사를 했다. 설립 이후, 2012년 말까지의 누적 대출액은 약 320억원, 업체 수는 총 1653개로 집계됐다. 1인당 평균 대출액은 1900만원. 이 중 설문에 응한 240명을 조사한 결과, 대출을 상환 완료했거나 상환 중인 업체 비율을 나타내는 상환율은 87%로 나타났다. 지원한 업체 중 현재까지 생존한 비율(창업 준비 업체 포함)은 91%로 나타났다. 중기청 조사 결과,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창업 대비 폐업률이 85%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런 높은 생존율은 괄목할 만한 성과다. ‘더나은미래’는 창업에 성공한 3인을 만나, 마이크로크레딧 운용의 성패(成敗)가 어디에 달렸는지 집중 인터뷰했다.

행복을 파는 가게 ㅣ 이준용 이영형 부부
행복을 파는 가게 ㅣ 이준용 이영형 부부

입지 선정은 물론, 고민 들어줘 정서적인 도움까지
하루 매출 300만원 올리는 과일가게, 이준용·이연형 부부

◇공사판 전전하던 노무자, ‘과일왕’ 되다

“창고인지, 가게인지 모르겠죠(웃음)?”

‘행복을 파는 과일 가게’ 안주인 이연형(48)씨 말대로였다. 가게 안은 과일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신랑이 과일 욕심이 많다”는 이씨는 “그만큼 나가니까 들여놓는 것”이라고 했다. 부부가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과일 가게를 차린 것은 지난 2008년 12월.

“백화점에서 청과물 팀장으로 근무하다가 실직을 당했어요. 40대 중반의 나이 때문에 재취업이 안 되더라고요. 그때 모시고 살던 장모님이 뇌출혈로 쓰러졌죠. 아픈 장모님과 어린 3남매를 보살피기 위해 건설 현장에서 일했어요. 집사람은 식당 허드렛일을 나갔고요. 부지런히 일해도 생활이 힘들었어요.” 2년간 이어지던 이준용(52)씨의 삶을 바꾼 것은 임대아파트 게시판에 붙어 있던 한장의 공고문. 강남구에서 창업 자금을 무보증으로 빌려주는 ‘강남구 희망실현창구 창업지원사업’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씨는 그 길로 강남구의 위탁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던 사회연대은행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씨는 “처음에 기관 창업 설명회에 갔을 때는 사람이 구름같이 모였다”며 “단계별로 걸러진 끝에 강남구 사업 1호 선정자가 됐다”고 했다. 김씨는 창업 자금 5000만원을 대출받아 창업준비를 시작했다. 사회연대은행의 사후관리 컨설턴트(Relationship Manager, RM)와 함께였다.

“첫 상담부터 시작해서 입지 선정이나 상권 분석까지 함께했어요. 개업하고도 계속 들여다보면서 격려해줬고, 고민을 들어주기도 했죠.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정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됐어요.”

그 후 5년, 현재 ‘행복을 파는 과일가게’는 하루 300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다. 위기도 있었다. 지난해 가을 무렵, 가게 500m 반경에 대형마트 세 곳이 한꺼번에 들어와 매출이 반 토막 났던 것. 이 대표는 마트 세 곳을 매일 돌며, 그 틈바구니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단돈 100원이라도 싸게 팔기 위해 가격을 조정하고, 하루 두 번씩 가락동 시장을 돌며 좋은 품질의 과일을 들였다. 그 결과 2개월 만에 매출을 원상태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이씨는 “대출금을 잘 갚아야 다른 사람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책임감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고 했다. 지금도 아파트나 병원에 배달을 가면 내려오는 층마다 광고 스티커를 붙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씨 부부는 총 대출금 2000만원(3000만원은 가게 보증금) 중에 지금까지 1700만원을 갚았다. 매일 첫 손님의 매출을 모아 기부도 한다. 2009년부터 이어온 ‘첫 매출 기부’로 재작년에는 강남구청으로부터 ‘아름다운 기부상’을 받았다.

스시생 ㅣ 김윤상씨
스시생 ㅣ 김윤상씨

서류상 대출 자격보다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능력 봐줘
권리금 없는 건물 통로에서 대박집 일군 김윤상씨

◇4전5기 대박 신화, 초밥 전문점 ‘스시생’

“저는 미소금융엔 대출 신청을 할 수도 없었어요. 자격 문턱이 너무 높았거든요. 그런데 사회연대은행은 서류상 자격이 아니라, 제 자활 능력을 봐줬어요. 저 같은 사람을 살려주니까 지금은 5명을 고용해 그들의 가정을 책임지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는 시민이 됐잖아요.”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초밥전문점 ‘스시생’. 12평 가게에서 연 매출 6억원을 올리는 ‘대박집’으로 알려졌지만, 과정은 처절했다. 특급 호텔 일식 조리사였던 김윤상(49)씨는 창업에 대한 장밋빛 환상만 가지고 호텔을 뛰쳐나와 일산에 일식집을 차렸다. 서른다섯 살 때였다. 대실패였다. 2년간 1억원이 넘는 빚만 남겼다. 김씨는 “호텔에서는 구매도, 홍보도, 손님 접대도 할 필요가 없었는데, 창업하니 혼자 다 해야 했다”고 했다. 두 번째 창업은 규모를 반으로 줄였다. 이번에는 1년 만에 망했다. 점포를 얻는 노하우가 전혀 없었던 탓에, 악덕 건물주를 만난 것이 화근이었다. 세 번째는 일식 배달집을 열었다. 이 역시 ‘신세계’였다.

“오토바이 배달원이 무단결근, 무단 지각을 밥 먹듯이 했어요. 월급 받은 다음 날, 온종일 수금한 돈을 가지고 오토바이와 함께 사라진 적도 있어요. 눈이 많이 오면 전화기를 꺼놓고 잠적해버리기도 했고요. 밀린 배달 10군데를 차로 다니다가 저도 모르게 울어 버린 적도 있어요.” 폐업을 다섯 번 맞은 8년 동안 빚은 3억이 넘도록 쌓였다. “집에 빨간 딱지가 덕지덕지 붙을 정도였다”고 한다. 일식에 신물이 나서, 순대 공장에 다니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호떡 장사를 하기도 했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김씨의 패자부활전은 2007년부터 시작됐다. 전라도 순천까지 내려가 일식집 주방장으로 ‘타향살이’를 할 무렵이었다. TV에서 우연히 사회연대은행 광고를 접하고, 창업 신청을 했던 것. 사회연대은행의 관리자들은 김씨를 직접 찾아와 까다로운 검증 과정을 거쳤다. “일식집을 하나 빌려서 초밥을 직접 만들어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가게 자리를 보는 과정도 험난했다. 가진 돈으로 마땅한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담당 RM이었던 김종진 사회연대은행 기획팀장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김씨는 “지역의 유동 인구, 주거 단지 인구, 상권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언했다”며 “주먹구구식으로 가게 자리를 보러 다녔던 내게 그런 부분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 달 동안 강남 바닥을 누빈 끝에 지금의 가게 자리를 발견했다. 점포가 아니라 건물의 통로를 개조해서 권리금이 없는 자리였다. 김씨에게는 재기로 이르는 ‘통로’와도 같은 곳이었다. 김씨는 현재 대출금 5천만원 중 300만원 만을 남겨놓고 있다.

이모네곱창 ㅣ 추교일씨
이모네곱창 ㅣ 추교일씨

어려운 창업 준비, 인큐베이팅으로 조언 받아
선배 창업자 멘토링으로 경영 배우고 자리잡은 추교일씨

◇초보 사장님의 좌충우돌 자활기, ‘이모네곱창’

서울 용산구에 있는 ‘이모네곱창’. 빛바랜 벽지에 가득한 낙서, 어두운 실내조명이 서민 분위기를 자아냈다. 오후 4시, 추교일(52)씨는 장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서민 장사인데 경기가 안 좋으니 쉽지 않죠”라고 했지만, 얼굴은 여유 있어 보였다.

작은 유통업을 하던 추씨는 IMF를 견디지 못했다. 단숨에 빚더미에 올랐고, 가정도 붕괴됐다. 두 아이를 혼자 키우며 방문판매 등을 전전하며 지냈다. 2003년, 동사무소 협조로 자활센터에 들어간 추씨는 절치부심하며 재기를 노렸다. 자활에서 청소일을 하면서 야간에는 요리학원에 다녔다. “맘껏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외식업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2007년도에는 희망플러스 1기 대상자로 선정돼 저축도 시작했다. 희망플러스는 서울시의 저소득층 지원 사업으로 대상자가 적금을 넣는 금액에, 기업으로부터 일대일 매칭 후원을 받아 3년 만기로 창업 자금을 마련하는 프로그램이다. 추씨는 이 프로그램으로 2000만원 정도를 모았다. 만기가 되던 해 꿈꾸던 외식업 창업을 시도했지만, 2000만원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 사회연대은행을 알게 됐다. 사회연대은행은 추씨에게 충무로 이모네곱창을 소개해줬다. 9년 전 사회연대은행을 통해 창업한 충무로 ‘이모네곱창’에서 창업 인큐베이팅을 받도록 한 것이다. 프랜차이즈 시스템같이 공동 브랜드와 공동 마케팅을 펼치면서 본사에 내는 로열티는 없앴다. 이를 통해 먼저 창업한 선배가 예비 창업자에게 멘토링을 해주고, 각 점포끼리는 규모의 경제화가 이뤄진다. 추 대표는 “한 달 반 정도 충무로 이모네곱창으로 출퇴근하면서 손님맞이부터, 곱창 볶는 것 등의 기술은 물론, 거래처나 영업 시스템 등을 모두 배웠다”고 했다. 추씨는 지금도 충무로 이모네곱창 대표에게 수시로 연락해 조언을 구한다. 2012년 2월, 추씨는 희망플러스 2000만원에 산업은행을 통해 지원받은 3000만원 등을 더해 지금의 가게를 열었다. 1년간 장사를 익히는 것만도 정신이 없었다는 추씨. “아무리 준비해도 부족하다”며 창업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많은 준비를 했지만, 막상 개업을 하니 세금 관계, 주류 매입 등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며 “자기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의 아이템을 선정해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것만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이라고 했다.

이제 갓 1년을 넘겨, 아직 매출이 크지는 않다는 추 대표. 하지만 “자활에서는 100만원 정도로 생활했는데, 지금은 관리비나 세금으로 나가는 것만 300만원이 넘는다”는 말에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총 3000만원을 대출받은 추씨는 매달 70만원씩 상환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총 600만원을 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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