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내전에 갈 곳 잃었던 아이들 타지키스탄의 리더가 되다

두스티 학교

지난 2월 16일, 타지키스탄에서 만난 사요라(여·20)씨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나를 후원해준 한국을 곧 만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사요라씨는 타지키스탄 국립외국어대를 수석 입학, 4년 간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다. 오는 3월에는 한국에 간다. 계명대 영어학과의 교환학생으로 선발됐기 때문이다. 사요라씨는 “한국의 선진 교육을 배우고 싶다”면서 “사회복지사가 돼서 타지키스탄의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15년 동안 이뤄진 굿네이버스의 지속적인 교육 지원으로 타지키스탄 전쟁고아들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 꿈을 이루고 있다.
15년 동안 이뤄진 굿네이버스의 지속적인 교육 지원으로 타지키스탄 전쟁고아들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 꿈을 이루고 있다.

사요라씨는 다섯 살 때 혼자가 됐다. 엄마는 장티푸스를 앓다 돌아가셨고, 아빠는 정부군에 의해 총살을 당했다.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타지키스탄은 6년간 내전을 겪었다. 사요라처럼 부모를 잃은 아이 2000여명이 거리로 내몰렸고, 800여명의 과부가 일거리를 찾아 방황했다.

“전쟁을 기점으로 타지키스탄의 모든 개발과 교육이 멈춰버렸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월급을 못 받게 된 선생님들이 모두 시장에 나가 채소를 팔았거든요. 내전을 겪은 학생들은 중등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성인이 됐습니다. 대학생들이 ‘받아쓰기’ 공부를 할 정도였죠.”

이병찬 굿네이버스 타지키스탄 지부장이 내전 직후를 떠올렸다. 머물 곳도, 돌아갈 곳도 없는 고아와 과부들을 돕기 위해 굿네이버스는 1998년 다브로사셋트스바 보육원을 세웠다. 갈 곳 없이 방황하던 여섯 살 사요라를 받아준 곳도 다브로사 보육원이었다. 입학료, 수업료, 급식비까지 전부 무료였다. 선생님들의 월급도 평균 소득 이상으로 책정했다. 전문 인력이 몰리자 수업의 질이 높아졌고, 소문을 타고 보육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 지부장은 “보육원 입학 기준을 전쟁 과부의 자녀나 고아로 한정했다”면서 “당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미래의 리더로 세우는 것이 비전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설립 이듬해,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됐지만, 초등 교육을 받을 곳이 전무했다. 이 지부장은 초·중·고등 과정을 마칠 수 있는 학교를 설립했다. 보육원 소식을 들은 시에서 학교 지을 땅을 무상으로 임대해준 덕분이었다. 굿네이버스는 시설비와 학생들의 교육비 전부를 부담했다. 타지키스탄에서 내로라하는 과학자, 수학자 등 전문가들이 두스티학교의 선생님이 됐다. 매년 두 배씩 학생 수가 늘어나, 현재 261명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다.

15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은 타지키스탄의 인재로 자라났다. 시·도 경진대회 1등은 물론 국제올림피아드 대표 선발 자리까지 두스티 학교 학생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후메이조(여·17)양은 러시아어·물리학·영어·수학 과목 시(市) 경진대회에서 전 과목 1등을 했다. 졸업 후 타지키스탄 내 최고 과학기관인 ‘학술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자격도 얻었다. 후메이조는 “두스티 학교는 타지키스탄에서 뛰어난 학생들만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며 활짝 웃었다.

아디바 두스티 학교 교장은 “타지키스탄의 고아들이 20세가 될 때까지 책임지고 교육하는 곳은 우리 학교뿐일 것”이라며 “지금의 타지키스탄은 열악하지만 이 아이들이 리더로 서게 될 5년, 10년 뒤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흐다트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