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서울대 이상묵 교수] “한국은 장애인 IT 접근성 후진국… 그만큼 좋아질 가능성 커”

장애인 IT 접근성 보장법 미국서 올해 10월 시행 韓 대기업들 수출 비상

스마트폰 등 IT기기에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법안이 오는 10월 미국에서 시행된다. 지난 2010년 제정·공표된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법(The 21st Century Communication&Video Accessibility Act)’이 36개월의 유예기간을 끝내고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아직 아무도 모른다. 지난 4일, 자택에서 만난 이상묵(51)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스마트폰이나 IP TV 등을 미국에 수출하는 삼성·LG 등 국내 대기업이 이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 지난 2010년부터 서울대 QoLT(Quality of Life Technology) 산업기술기반지원센터장으로 재직, IT 분야 등 이공계 진출을 위한 장애인 인력양성프로그램 및 보조공학기기 산업 활성화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교수는 지난 2006년 미국 유학 중 지질 야외 조사를 하다 차량 전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으나, 사고 이후에도 연구와 강의를 계속하는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교수는 지난 2006년 미국 유학 중 지질 야외 조사를 하다 차량 전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으나, 사고 이후에도 연구와 강의를 계속하는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법’이 시행되는 이유는 뭔가.

“미국을 장애인의 천국으로 만든 혁명적인 법안은 1990년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 장애인차별금지법(America’s with Disability Act)’이다. 일명 ADA법안이다. ADA법안은 건물, 교통, 고용, 의료, 교육 등에 대한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나 정보통신 분야는 활발하지 않아 이 부분이 법안에 담기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서 모바일기기도 생기고, 무선랜, 클라우드, SNS도 나오면서 IT 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정보통신 서비스에서 차별받는다는 문제가 제기돼 이 법안이 만들어졌다.”

―미국에 수출하는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겐 미칠 영향이 크다고 보는가.

“ADA법도 이렇게 시작했다. ‘상식적 적용(Resonable accomodation)’이라는 게, 무서운 법안이다. ADA법안 시행 당시 정부는 예산 없이, 규제권만 있었다. 장애인이 기업을 상대로 차별받았다고 소송을 하면, 미 법무부에서 변호사를 지원해주는 형태였다. 이 법안도 소비자가 소송을 걸 수가 있다. 미국 장애인들이 삼성이나 LG 등 우리나라 IT 제품에서 접근성 차별을 받는다고 느끼면 소송을 할 수도 있다. 개인들이 소송을 걸기 시작하면, 기업 이미지도 나빠질 수 있다.”

―왜 장애인에게 정보통신 접근성이 중요한가.

“미국에서 가장 먼저 마련된 장애인 관련법안은 1960년대 통신법안이었다. 전화회사들이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기를 만들도록 했다. 통신은 바로 ‘소통’을 의미한다. 장애인에게 가장 어려운 게 소통이다. 청각장애인은 겉으로 보면 가장 멀쩡해 보이지만, 수화라는 독립된 언어를 쓰기 때문에 소통이 잘 안 된다. 이 청각장애인에게 가장 혁명적인 도구는 바로 휴대폰 문자서비스다. 미국의 한 청각장애학생 지원센터에 가보니 텅 비어 있더라. 예전엔 이곳에 모여 수화를 통해 회장이나 대의원을 뽑았는데, 지금은 밖에서 문자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이 장애인에게 주는 이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유비쿼터스 시대’가 되면서 장애인은 더 차별받는다. 온통 휴대폰 예약시스템인데 이걸 접근할 수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얼마 전 고용노동부에서 장애인고용실적이 저조한 기업을 발표했는데, 고용인원’0명’인 대기업이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준비가 될지 궁금하다.

“대기업 실무진들은 이 법안을 주목하고 있지만, CEO나 회장들이 이것을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는 않는 것 같다. 미국 기업은 장애문제를 인권문제로 바라본다. 회사 내에 차별문제에 대처하는 위원회가 있다. 우리나라는 피해의식, 근시안적 안목 때문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 장애인에 대해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을 담아야지, 지금처럼 이해득실만 따지다 보면 ‘한국을 빼닮은’ 제3국 기업에 이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

이상묵 교수는 “대영제국 때 만들어진 영국지하철은 장애인에게 최악이지만, 만든 지 15년밖에 안 된 대만의 지하철이 오히려 장애인에게 편리한 시스템이었다”며 “가장 늦게 시작한 나라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장애인 접근성이기 때문에,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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