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고객 잘돼야 금융기관도 잘돼 제조업보다 사회적 책임 더 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불황, 금융권도 책임 있어… 경영 패러다임 바꾸고 과정부터 고객과 상생해야

생색내기에서 벗어나 특색있는 공헌 사업 필요

미국은 취약 계층·지역에 재투자했는지 평가해 성과에 따라 이익 부여

거스름돈 기부하는 등… 소액 기부가 활성화되길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은 제조업보다 훨씬 더 크다. 제조업은 물건을 팔면 끝이다. 금융은 그 물건이 바로 대출이다. 고객이 망하면 내가 망한다. 다른 어떤 업종보다 고객과 동반성장이 필요하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권혁세(57) 금융감독원장은 인터뷰 내내 ‘따뜻한 금융’을 강조했다. “사회공헌이나 복지는 내 전공이 아닌데…”라고 말문을 열었지만, 1시간 내내 조목조목 ‘사회적 책임이 왜 중요한지’ 설명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경제 민주화’와 ‘복지’가 화두다.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 요구도 높아지는데,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 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종전에는 영업하고 남은 일부를 사회에 공헌하는 방식이었는데, 앞으로는 경영 과정에서도 고객과 상생해야 한다. 고객이 잘못되면 금융회사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게 저축은행 사태다. 단기적으로 수익을 낼지 몰라도 결국 망하는 길이다. 둘째가 ‘따뜻한 금융’이다. 경제 환경이 좋을 때는 돈 빌려가라고 해놓고 환경이 나빠지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서 돈을 안 빌려준다. 비 올 때 우산 뺏는 식이다. ‘금융은 원래 차갑다’고 하던 걸 바꿔야 한다. 셋째가 사후 사회공헌이다. 예전에는 일회성·생색내기식이고, 판촉과 연계된 사회공헌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 경쟁 과정에서 탈락한 이들을 치유하는 진정한 사회공헌을 해야 하고, 전담 사회 공헌본부가 있어야 한다.”

―현재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 이행과 사회 공헌 활동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IMF 이후 양극화가 심해지고 중산층이 얇아진 것은 대기업과 금융기관 책임이 크다’는 게 국민 생각이다. IMF 이후 금융회사들은 중소기업과 가계를 대상으로 영업을 확장시켰고, 가계부채도 늘었다. 고객이 어려워졌다고 외면해버리면, 결국 고객을 잃어버리게 된다. 금융위기로 인해 발생하는 양극화, 빈곤층 확대는 금융권이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금융기관에서는 “지나친 사회공헌으로 은행 건전성이 악화되선 안 된다” “사회공헌은 금융사 자율적으로 해야 할 문제인데, 미소금융 등 준조세 형식이 너무 많다”라는 입장이다.

“미소금융이 출범할 때 나도 관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과 금융기관들도 ‘뭔가 양극화 해소에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분위기였다. 예전에는 돈만 출연하고 정부가 운용하는 식이었는데, 대기업이나 은행이 직접 참여하면 이미지도 좋아지고 국민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봤다. 이 외에 새희망홀씨·햇살론·바꿔드림론 등 4대 서민금융상품을 통해 약 10조원이 지원되고 있다. 가장 금융적으로 사회공헌을 하는 방식이다. 연체율이 아주 높지는 않다. 이 때문에 은행이 손실을 보지는 않는다. 손실 난 부분만 사회공헌으로 봐야 한다. 이 또한 서민금융대출이라는 상품이다. 금융권은 그걸 전부 다 사회공헌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이 있는가.

“금융기관 경영평가에서 사회공헌의 비중을 높여나갈 것이다. 미국은 지역재투자법(CRA·Community Reinvestment Act)을 통해 금융회사들이 취약계층이나 해당 지방에 재투자했는지 평가해서 성과에 따라 메리트를 준다. 우리나라도 건전성이나 재무적 평가뿐 아니라, 사회공헌 파트의 비중을 높인 별도의 평가기준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비재무적인 평가모델을 만들어 금융회사를 평가하고, 시장에 공시하고, 이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유도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금융기관들도 소비자 보호, 취약계층 지원, 사회공헌 강화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 예전에는 경영과 관계없이 베푸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앞으로 신뢰 제고와 경영의 중요한 변수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CEO의 마인드가 가장 중요할 텐데, 아직 금융기관 사회공헌에 대한 국민의 인지도가 약하다.

“과거 SK그룹 하면 장학사업이 떠오르지 않았나. 이후 국민의 머릿속에 기억나는 기업의 사회공헌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고민이 없었다는 뜻이다. 금융권도 최근 사회공헌 사업을 브랜드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국민은행그룹은 다문화가정, 신한은행그룹은 소년소녀가장, NH농협은행은 농어촌 1사1촌 등을 강조한다. 사회공헌은 결국 신뢰와 연계돼 있다.”

―지난달 24일 금융감독원은 은행 26곳과 함께 소외된 이웃을 위해 6억원의 성금을 내놓았는데, 금융감독원은 어떤 사회공헌을 하고 있나.

“재작년 취임하자마자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취약계층과 금융 소비자 편에 서는 감독과 행정을 했다. 금융권의 법인카드 포인트를 모아 금융 피해자를 지원하는 ‘새희망 힐링펀드’를 출범시켰고, 금리·수수료 체계 등 금융소비자에게 불합리한 금융관행을 개선했다.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교육(2085회), 현장을 찾아가는 서민금융상담행사(4358건) 등을 활발히 했다. 한편 금융감독원도 사회공헌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사회공헌단을 만들고, 8개의 부원장보 체제로 각자 좋은 사업을 해나가고 있다.”

권혁세 원장은 마지막으로 “기부는 꼭 돈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며 “소액 기부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끝전기부 소프트웨어를 만든 권원장은 지난해 KB국민은행과 롯데슈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유니세프와 손잡고 ‘사랑의 동전나눔 서비스’를 시작했다. 만 18세 이상 개인이 국민은행이 운영하는 기부사이트(www.givecoin.kr)에 회원 가입 후, 전국의 롯데슈퍼 매장에서 거스름돈 기부 의사를 밝히면 이 금액이 기부처(사회복지공동모금회나 유니세프)에 전달된다. 연말 소득공제 혜택도 있다.

“전 편의점, 유통업계로 확산되면 좋겠어요. 기부는 결국 ‘제2의 예산’이거든요. 100원, 200원이 쌓이면 엄청난 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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