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가족과 함께여서 행복해요”… 그룹홈에서 웃음 되찾은 아이들

빈곤아동 보금자리 만드는 월드쉐어 그룹홈 현장
2006년부터 세계 22개국 저개발국가 아동 지원
가정같은 주거환경 제공 보모 1명·5명 아동 연결 철저한 양육교육 이뤄져
가정의 행복 느낀 아이들 지역 이끌 인재로 성장해

태국 우본랏차타니 지역의 월드쉐어 그룹홈 보모와 아이들의 모습.
태국 우본랏차타니 지역의 월드쉐어 그룹홈 보모와 아이들의 모습.

수리아(14)는 생후 18개월 때,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 아빠는 두 살배기 아들을 매일같이 때렸다. 몽둥이에 맞아 부러졌던 수리아의 쇄골은 지금도 제자리를 찾지 못해 틀어져 있다. 3세 되던 해, 아빠는 집을 나갔고 수리아는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 8년 동안, 외할머니는 손자를 학대했다. 통(12)의 사연도 비슷하다. 부모가 이혼한 뒤 할머니에게 맡겨졌고, 주변 친척들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 도망갔다는 이유였다. 통의 아빠는 재혼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태국에는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다가 버림받은 고아가 많아요.” 국제구호단체 월드쉐어의 태국 지역 업무를 돕는 김미경 협력자가 사진 5장을 건네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기자가 한 시간 뒤 만나게 될 아이들이라고 했다. 머릿속에 아이들 사연을 하나 둘 새겨넣을 무렵, 태국에서 가장 낙후된 동북부 지역 우본랏차타니(Ubon Ra chathani)에 도착했다. “사진 속 아이들의 표정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제 볼 수 있을 거예요.” 김미경 협력자가 미소를 지으며, 파란 대문을 가리켰다.

◇엄마의 품을 되찾은 아이들

입구에 들어서자 코끝에 고소한 향기가 감돌았다. “헬로(Hello).” 식탁에 모여앉아 아침을 먹던 아이들이 서툰 영어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볶음밥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던 나라왓(44)씨가 “우리 아이들, 예쁘죠”라며 활짝 웃었다. 아이들 한명씩 바라보는 눈빛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3년 전, 나라왓씨는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됐다.

월드쉐어가 태국 북동부 지역에 그룹홈을 운영하게 되면서부터다. 2004년 설립된 월드쉐어는 저개발국가의 빈곤 아동을 지원하는 NGO다. 가정 해체, 방임, 학대, 빈곤, 유기 등으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2006년부터 그룹홈 사업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된 그룹홈은 33개로 늘어나, 현재 캄보디아·케냐·소말리아·방글라데시 등 전 세계 22개국으로 확대됐다.

대부분의 국제구호단체가 개도국에 대규모 아동보호시설을 건립하는 것과 달리, 월드쉐어는 가정과 같은 소규모 주거 환경을 제공한다. 새로운 시도다. 류원규 월드쉐어 해외사업본부 팀장은 “보육원과 같은 대규모 시설은 보살핌의 손길이 골고루 미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면서 “국내 아동복지법이 그룹홈 아동 수를 5~7명으로 제한하는 것처럼, 월드쉐어 그룹홈도 엄마 역할을 하는 ‘보모’ 1명과 5명의 아동이 한 가족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엄마와 형제자매가 생긴 아이들은 정서적인 안정을 되찾았다.

그룹홈 장남 수리아(14)는 “항상 혼자라서 외로웠는데, 동생들이 생겨 아주 좋다”며 웃었다. 셋째 아들 통은 그룹홈에 온 뒤, 반에서 1~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41년간 홀로 지내다가 5명의 자녀가 생긴 나라왓씨는 “3년 새 몰라보게 키가 크고 얼굴이 환해진 아이들을 볼 때마다 신기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라오스 빡세 지역에 위치한 월드쉐어 그룹홈의 모습.“ 공부할 수 있게 돼서 행복해 요”라며 웃는 아이들을 보모가 대견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다.
라오스 빡세 지역에 위치한 월드쉐어 그룹홈의 모습.“ 공부할 수 있게 돼서 행복해 요”라며 웃는 아이들을 보모가 대견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다.

◇교육을 통해 꿈을 되찾은 아이들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우본랏차타니에서 동쪽으로 세 시간을 달렸다. 라오스 국경을 지나고, 메콩 강을 따라 한 시간을 더 이동해, 인구 7만명의 도시 빡세(Pakxe)로 들어섰다. 닭·고양이, 돼지 등 가축들 사이로 2층짜리 나무집이 보였다. 지난 7월 월드쉐어가 세운 라오스 그룹홈이다. “매일 저녁 3시간씩, 아이들과 함께 공부해요.” 보모 암펀(33)씨가 거실에 세워진 칠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난 10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암펀씨는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곁에서 돕고 싶었다”고 했다. 월드쉐어가 보모에게 주는 월급은 5만원. 그녀가 교사로 재직할 때 받았던 월급보다 3만원가량 적지만,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며 웃는다. 라오스 주민들은 하루를 꼬박 일해 1500원을 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그들에게, 연간 40만원에 달하는 중·고등학교 학비는 버겁다. 가난 때문에 공부를 포기한 쿤(14)은 지난달 처음으로 학교에 갔다. 폐결핵으로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매일 일을 나가던 다라쌩(16)도 3년 만에 중학교에 복학했다. 매일 저녁 이어지는 암펀씨의 과외 덕분에, 6명의 자녀 모두 학교 진도를 어려움 없이 따라잡고 있다. 월드쉐어는 매달 100만원을 그룹홈에 보내, 이들의 생활비·교육비·의료비 전반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11월 28일부터 2박3일간 방콕 이스틴호텔에서 열린 월드쉐어 그룹홈 워크숍이 열렸다.
지난 11월 28일부터 2박3일간 방콕 이스틴호텔에서 열린 월드쉐어 그룹홈 워크숍이 열렸다.

◇현지화된 시스템·교육으로 그룹홈 정착

지난 6년간 월드쉐어의 그룹홈이 전 세계 22곳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비결은 두 가지다. 첫째는 ‘협력자’ 시스템이다. 월드쉐어는 그룹홈을 세울 때, 보모보다 협력자를 먼저 세운다.

협력자란 월드쉐어와 보모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현지 사업자를 말한다. 해당 지역에 10년 이상 거주해, 그곳의 특성과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대상이다. 이들은 보모의 자녀 양육을 돕는 조언자이자, 그룹홈 운영 및 지원을 담당하는 실무자다. 류 팀장은 “현재 전체 협력자 중 절반은 현지인으로 구성돼 있는데, 100% 현지화가 목표”라고 했다. 그룹홈 아동을 자국의 지역사회를 살리는 리더로 키우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보모는 현지인만 될 수 있다.

둘째는 역량 강화 교육이다. 월드쉐어는 매년 전 세계 그룹홈의 보모·협력자를 대상으로 역량 강화 워크숍을 연다.

지난 11월 28일부터 2박3일간, 방콕 이스틴호텔에서 올해 워크숍이 진행됐다. 보모와 협력자들은 이곳에서 그룹홈 아동과 운영 방안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심층 교육을 받았다.

보모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모들은 단순한 보살핌의 역할을 넘어서, 아이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똑똑한 엄마가 돼야 한다”고 했다. 권호경 월드쉐어 회장은 “최근 경찰대에 입학한 청년을 비롯해 가정의 회복을 통해 자립에 성공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그룹홈에서 꿈을 찾은 아이들이 지역사회를 밝히는 미래의 지도자가 되길 응원한다”고 밝혔다.

태국·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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