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현장에서 일하며 듣는 ‘고맙다’ 한마디… 힘들어도 뿌듯한 이유죠”

[서울대 사회공헌 동아리 ‘인액터스’ 국제대회 도전기] 세계 챔피언 뽑는 대회서 조 1위로 준결승 진출
경기도의 폐염전 활용해 천일염 CF 찍어 제품 홍보
못난이 포도로 즙 만들고 장애인에 일자리 주기도
대학과 기업 지원 없어 활동 오래 못해 아쉬워

지난 10월 초 워싱턴 D.C에서 전 세계 5000명이 넘는 대학생이 모였다. 사회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려고 똘똘 뭉친 대학생들이다. 이들이 벌인 대회는 인액터스 월드컵(9월 30일~10월 2일). 사이프(SIFE)의 새 이름인 ‘인액터스'(Enactus·ENtrepreneurs in ACTion to US)는 지난 1975년 미국에서 창설된 대학생 경제봉사·사회공헌 동아리로, 현재 39개국 5만7000여명의 대학생이 활동하고 있다. 나라별로 국가대표팀을 뽑은 후 매년 10월이면 ‘올해의 세계 챔피언팀’을 뽑는 월드컵을 벌인다.

국내에서 80개 팀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인액터스 서울대학교 지부'(이하 ‘인액터스 스누’)는 이 대회에 참여해 조1위로 준결승전까지 진출했다. 이집트팀에 패해 결승전 진출은 실패했지만, 첫 성과였다. 지난 11일, 한국 대표로 대회에 참가한 6명의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편집자주

1‘연’프로젝트를 실행한 이 후로 한 해 700~800명이 체험학습을 위해 안산 대부도 동주염전을 방문하고 있다. 2‘그루’프로젝트 현장. 대부도의 포도 농가 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해 직거래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3‘인액터스 월드컵’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27명의 서울대학교 학생들. 4(왼쪽부터) 김용태, 박진영, 김민수, 김윤한, 신정재, 김민혜씨. /인액터스 스누 제공
1‘연’프로젝트를 실행한 이 후로 한 해 700~800명이 체험학습을 위해 안산 대부도 동주염전을 방문하고 있다. 2‘그루’프로젝트 현장. 대부도의 포도 농가 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해 직거래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3‘인액터스 월드컵’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27명의 서울대학교 학생들. 4(왼쪽부터) 김용태, 박진영, 김민수, 김윤한, 신정재, 김민혜씨. /인액터스 스누 제공

“조1위로 준결승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둥켜안고 울었어요. 공부와 동아리 활동을 병행해야 해서 엄청 고생했거든요. 저희한텐 단순히 봉사 동아리일 수도 있지만, 프로젝트 대상자 분들에게는 ‘삶’이잖아요.”

대회에서 발표팀장을 맡았던 김민혜(21·서울대 경영학과 3년)씨가 그 순간을 회상하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4년 만에 준결승에 진출한 소감을 묻자, 인액터스 스누 회장 김민수(23·서울대 경영학과 3년)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처음엔 실감이 안 났어요. 올해엔 종주국인 미국이 홈그라운드에서 우승을 했는데, 활동 회원이 100명 이상이더라고요. 저희는 27명인데. 많은 사람이 구석구석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인액터스는 일반적인 경제·경영 학술 동아리와 다르게 직접 사업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해 실행한다. 도움이 필요한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하는 어려운 프로젝트다.

인액터스 스누가 진행해온 프로젝트는 3개. 2009년부터 진행한 ‘연’프로젝트는 경기도의 폐염전을 활용해 천일염 사업을 활성화하는 사업이다. 안산 대부도의 동주염전을 체험학습장으로 만들어 방문자 수를 2011년에 비해 4배 증가시켰다. 신정재(24·서울대 경영학과 4년)씨는 “안산시청과 특화사업단을 꾸려 ‘천일염’에 대한 홍보 CF, 제품기획, 마케팅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나래’프로젝트는 안산 대부도 지역재활시설에 있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사업이다. 못난이 포도를 활용해 포도즙을 만들어 원가를 절감하고, 자동화된 공정을 구축해 작업을 단순화했다. 포장작업은 중증장애인 3명이 맡아서 하고 있고, 이들을 위한 교육 매뉴얼도 만들어 놓았다. 김윤한(24·서울대 경제학부 4년)씨는 “프로젝트 실행과 동시에 장애인분들에게 ‘돈을 쓰는 법’을 교육하고 있다”며 “자립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발표한 사업은 ‘그루’ 프로젝트. 대부도 포도 농가의 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했다. 농산물 유통과정에서 농부들이 이익을 못 취하는 불공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용태(22·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4년)씨는 “직거래 활성화를 위해 온라인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며 “포도는 알맹이가 짓눌리는 경우가 많아서 이번에 포도전용 택배박스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20일에는 농가 열곳이 함께 ‘해금송이’ 법인도 설립했다. 김용태씨는 ‘그루’ 프로젝트팀 매니저이자, ‘해금송이’ 대표이사다.

이들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글로벌 대학생들의 활동을 지켜보며 “배운 게 너무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정재씨는 “이집트는 섬 전체를 재활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했다”며 “2년 전 대회에서 발표한 5개 프로젝트를 하나로 합쳐서 메인으로 진행 중이었고, 혜택을 받는 사람이 무려 15만명이었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미국의 ‘스프링백(Spring Back)’ 프로젝트. 인액터스 벨몬트(Belmont) 대학지부는 2010년부터 출소자들을 대상으로 ‘매트리스’ 재활용 사업을 기획했다. 김민수씨는 “3년이라는 준비과정에서 꼼꼼함이 돋보였다”며 “교육 매뉴얼뿐만 아니라 법적 조치가 필요할 때 변호사까지 선임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해놓았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 인액터스 활동의 아쉬운 점도 발견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4년 내내 실행하는 프로젝트도 있기 때문에 완성도가 높은 편인데 반해, 우리는 ‘한 사람이 프로젝트를 오래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드러났다.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한 이유는 대학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관심과 후원 덕분이다. 월드컵 우승팀인 벨몬트대와 준우승팀인 이집트 UFE대도 대학 측에서도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반면 한국은 대학교 차원의 지원도 전무하고, 프로젝트 과정에서 기업의 펀딩을 받기도 어렵다. ‘대학생’이기 때문에 역량에 대한 편견의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박진영(22·서울대 지역정보학과 4년)씨도 처음엔 대학생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일이라고 느꼈다. 현장에선 마음이 달라졌다. “일하는 분들이 ‘고맙다’고 하시는 거예요. 수동적으로 시키는 일을 하는 정도였는데….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김용태씨는 “외국은 기업에서 펀딩과 멘토링을 동시에 제공한다”며 “조금만 도와주면 학생이라는 한계가 있더라도 멘토링을 통해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인액터스 스누 30여명의 학생은 과외를 하거나,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으로 참가비를 마련했다. 일명 ‘엄마펀딩’이다. 활동비도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올해에는 5년 만에 경영대 건물 내에 동아리방을 얻었다. 그전에는 카페를 돌아다니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곤 했다. 김윤한씨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많은 분이 저희 조직은 현재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곳이라고 평가한다”며 인액터스 활동을 추천했다.

“미국은 인액터스의 역사가 30년이 되니까, 이 동아리를 경험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리더가 되어 있어요. 월마트는 채용과정에서 인액터스 활동이 상당한 매력으로 작용해요. 사회적인 책임감을 가진 비즈니스 리더가 많은 미국처럼 우리도 10년~20년 후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