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학용품 기부·청소년 꿈 찾아줘 “큰 세상 보며 제 길 다집니다”

나눔 통해 글로벌 리더로 크는 청소년들
학용품 기부하는 ‘호펜’ 임주원양
사이트 ‘오픈놀’ 공동창업자 이윤경양
자선사업 하며 꿈 재정비해 뿌듯
사회에 긍정적 변화 일으키고파

2013학년도 수능 시험(11월 8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막바지 수험생활에 들어선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서울 강남의 S고교에 재학 중인 김민주(가명·18)양은 “한 문제라도 더 풀어야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반 친구들도 불안한 마음에 예민해져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면 학업 스트레스에서 자유롭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살벌한 입시경쟁 속에서 ‘공익’에 눈을 돌려 자신만의 ‘블루오션’을 찾은 청소년을 만났다.

① 지난 7월, '호펜'은 남도학숙 봉사단원을 통해 과테말라 싸까빠 지역의 오아시스 스쿨(굿네이버스 과테말라 지부 설립)의 학생들에게 기부받은 30kg의 학용품을 전달했다. ② 4년째 '호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임주원 학생 ③ '오픈놀'의 공동창업자 이윤경 학생 /호펜 제공
① 지난 7월, ‘호펜’은 남도학숙 봉사단원을 통해 과테말라 싸까빠 지역의 오아시스 스쿨(굿네이버스 과테말라 지부 설립)의 학생들에게 기부받은 30kg의 학용품을 전달했다. ② 4년째 ‘호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임주원 학생 ③ ‘오픈놀’의 공동창업자 이윤경 학생 /호펜 제공

◇중고 학용품을 기부받아 개발도상국에 전달하는 호펜지기, 임주원양

“새것을 사지 않고도 나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돈이 들면 청소년들은 부담을 느껴서 참여하는 게 망설여지잖아요.”

임주원(18·서울국제고3)양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친구들 4명과 함께 중고 학용품을 모아 개발도상국에 전달하는 ‘호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호펜(HOPEN)’은 HOPE와 PEN을 결합한 뜻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제3세계 친구들과 배움의 즐거움을 나누자는 의미다. 2009년 임양의 모교인 개운중학교에서 시작된 ‘호펜’프로젝트는 현재 전국 24개 중·고교로 확대됐다. ‘호펜’에서 4년 동안 보낸 학용품 양만 무려 1.2t이다.

임양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건 책 ‘히말라야 도서관'(세종서적)을 통해서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임원이었던 존 우드(John wood)가 네팔의 열악한 교육현장을 본 후 높은 연봉과 보장된 성공을 포기하고 오지(奧地)에 도서관을 세워주는 ‘룸투리드(Room to read)’ 사업에 뛰어든 내용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막연히 NGO 국제활동가를 꿈꾸고 있던 임양은 수동적인 자신의 모습에 죄책감까지 느꼈다. 존 우드가 “지금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 구절은 강력한 자극제가 되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터에 임양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연필꽂이에 있는 ‘펜’이었다. 얇은 펜, 굵은 펜, 형광펜 등 종류도 다양했다. 임양은 “몇 번 쓰지도 않은 건데 방치되어 있었다”며 “각자 집에 새것 같은 펜들이 있을 테니 이를 모아서 해외에 보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임양은 친구와 함께 ‘호펜’이라는 이름을 정하고 색연필과 사인펜으로 로고도 직접 그렸다.

‘호펜’프로젝트 첫해. 임양과 친구들은 학교 게시판, 서울 길음동 근처 학원 서너 군데에 홍보 포스터를 붙였다. A4용지에 직접 프린트한 포스터였다. 친구들, 친구들의 친척, 동네주민 등으로부터 기부를 받아 75㎏의 중고 학용품을 모았다. 연필, 공책, 책, 크레파스 등 다양했다. 이를 어떻게 보낼지가 문제였다. 큰 NGO 단체에도 전화를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필리핀으로 선교봉사를 가는 부모님 지인, 알음알음 알게 된 대학생 자원봉사자 등을 통해 학용품을 보냈다.

프로젝트 2년째인 2010년부터는 ‘호펜’ 블로그를 만들었다. 연간 계획을 잡고 11월부터 2월까지는 집중적으로 학용품을 기부받아 블로그에 기부자 포스팅을 했고, 방학을 이용해 기부받은 물품을 정리했다. 3월부터 11월까지는 발송작업을 진행했다. 임양은 “블로그를 통해 홍보도 많이 되고, 코이카, 프렌즈 아시아 등 NGO 단체에서 기부요청도 왔다”고 말했다.

임양은 ‘호펜’을 통해 실제로 자선사업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해오면서 뿌듯했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기부에만 의존한다는 게 큰 한계더라고요. 막연한 국제활동가가 아니라 낙후된 지역이 자생력을 갖추며 성장하도록 돕는 사회적 기업가가 되는 것이 제 꿈이에요.”

◇대한민국 교육 패러다임 변화를 꿈꾸는 여고생 기업가, 이윤경양

이윤경(17·하나고2·오픈놀 공동창업자)양은 어엿한 ‘경영인’이다. 이양을 처음 만난 곳도 여성 창업가들의 모임 ‘허스토리(herstory)’에서였다. 7명의 PT 참가자 중 최연소 기업인이였던 이양은 똑소리 나게 사업을 설명했다.

“오픈놀의 ‘스내비’ 서비스는 꿈이 없어 힘들어하는 중·고등학생에게 자신의 관심사를 알 수 있게 해 적성과 비전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양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꿈을 알아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청소년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스내비’ 서비스는 사용자가 웹사이트에 블로그처럼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되, 키워드를 입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축적된 키워드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관심사를 알게 되는 시스템이다. 관련 키워드를 분석해 유사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맺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지난 5월엔 먼저 오프라인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알고 싶어하는 30여명의 고등학생을 모아 1박2일간의 비전캠프를 열었다. 대학생 멘토가 팀마다 한 명씩 붙어 활동을 진행했다.

한 소녀를 여고생 열혈기업가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처음 이양의 열정에 불이 붙게 한 분야는 ‘사회적기업’이었다. “책 ‘히말라야 도서관’을 읽고 가슴에 한 번 울림이 있었고 방글라데시 빈민층을 위한 소액대출 ‘그라민 은행’ 얘기를 듣고 이거다 싶었죠.”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학내 사회적 기업연구 동아리 ‘소셜밸류’에 가입하면서 터치포굿, 트리플래닛 등 사회적기업을 알게 되었다.

이양은 틈만 나면 사회적기업 페이스북 담벼락에 댓글을 남기며 관심을 표현했다. 트리플래닛 김형수 대표에게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메일도 보내는 등 온라인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를 눈여겨보던 연세대 재학생 권인택(28·오픈놀 대표)씨가 이양에게 ‘오픈놀’ 창업 제안을 했다. 중·고등학생을 위한 회사였기 때문에 이양이 공동창업자로 제격이었다.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이양의 최종적인 목표다.

“남들이 다 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어요. 많은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이라면 제가 굳이 할 필요 없지 않나요. 제가 할 수 있는 방향에서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일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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