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Cover Story] [나눔의 리더를 찾아서] ⑩… 한국 특수교육 일군 이근용 대구사이버대 총장 3代

‘장애인을 내 가족처럼…’ 3대째 실천하는 가족

맹아학교 기숙사에서 3대 모두 장애인과 먹고 자고 함께 생활
조부는 대학과 특수학교, 아버지는 특수교육학과,
이총장은 K-PACE 설립

학생들 하고픈 일 있다면 잘 하도록 돕는 게 목표
철저한 신원조회로 자식처럼 장애인 보살필 특수교사 채용
미국 한국도 이런 변화 필요

사회복지시설이 전무하던 시절, 시각장애·청각장애·지체부자유·정신지체·정서장애 등 5개 특수학교를 한곳에 세운 사람이 있다. 국내에서 장애인 인권 운동이 시작된 1988년보다 무려 32년 전에, 특수교육 지도자 양성을 시작한 인물이 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이도 있고, 국내 최초로 발달 장애인을 위한 고등교육 전문 기관을 설립한 사람도 있다. 이름 석 자 뒤에 ‘최초’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들. 한국의 특수교육을 이끈 네 사람, 아니 한국 특수교육의 역사를 써 내려간 한 가문의 이야기다. “대학 캠퍼스 안에 이렇게 주차장이 많으면 장애인이 보행하기 힘들어요. 미국 대학들은 캠퍼스 안에 주차 공간을 만들지 않습니다. 만약 무단 주차를 할 경우 벌금을 내야 하고, 이를 지불하지 않으면 졸업장을 받을 수 없어요. 아직 우리에겐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지난 9월 25일 만난 이근용 대구사이버대학교 총장의 머릿속엔 온통 장애인 생각뿐이었다. 특수교육 역사관, 장애인 지원센터 등 대구대 곳곳을 소개하는 와중에도 그는 “장애인 전용 캠퍼스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든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 사이버 강의를 보완해야 한다”는 등 장애인 복지와 교육 방향을 제시하느라 바빴다.

장애인이 행복한 나라를 꿈꾸며, 특수교육의 성장을 위해 헌신하는 이근용 대구사이버대 총장이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직업교육 전문기관인 K-PACE 학생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장애인이 행복한 나라를 꿈꾸며, 특수교육의 성장을 위해 헌신하는 이근용 대구사이버대 총장이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직업교육 전문기관인 K-PACE 학생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장애인과 함께 자란 이근용 대구사이버대 총장 5개 특수학교가 있는 대구대 대명동 캠퍼스를 둘러볼 때였다. 153평 규모의 허름한 3층 건물을 가리키며 이 총장이 미소를 지었다. 1946년, 그의 할아버지 이영식 목사가 시각장애·청각장애 학생들을 위해 설립한 대구광명학교(옛 맹아학교) 건물이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입니다. 할아버지 대부터 온 가족이 함께 이곳에 살았어요.” 당시 맹아학교 기숙사에는 100명의 장애인이 거주했다. 이 총장은 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온종일 뛰어놀다가, 같은 방에서 잠들었다. 세계 최초의 무형 도서관인 ‘종달새 전화도서관(신문·잡지를 녹음해 시각장애인들이 전화로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지원)’을 개관한 시각장애인 신인식 목사, 김선규 나사렛대 재활자립학과 교수 등이 그와 함께 자란 친구들이다. 가족처럼 지내던 이들이 자신과 어딘가 다르다고 느낀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 친구들이 저희 집(맹아학교 기숙사)에 놀러 왔다가 다들 깜짝 놀랐어요. 눈이 움푹 팬 시각장애인을 보고 울면서 돌아간 친구도 있었어요. 다음 날부터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괴상한 사람’들과 함께 산다고요. 제 친구들의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는단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어요. 몸이 조금 불편한 것만 빼면, 친구들과 제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죠.” 미국에서 학습 장애를 전공한 이 총장은, 지난해 3월 대구대에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고등교육 전문 기관 ‘케이페이스'(이하 K-PACE)를 최초로 설립했다. 미국 내셔널 루이스 대학의 페이스(PACE) 프로그램을 도입해, 3년 동안 금전 관리·생활 기술 등 직업 탐색 교육과 인턴십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이 총장은 “K-PACE 학생들은 일반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자립을 배우고, 일반 대학생들과 함께 교양 수업을 듣고, 동아리 활동도 한다”면서 “번듯한 직업보다 발달 장애 청년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나누고 헌신하는 삶도 변함없다. 대구사이버대학교 총장이 된 그는 지금도 대구대 경산 캠퍼스 기숙사에 살고 있다. 맹아학교에서 함께 자란 100명의 친구 대신, 지금 그의 곁엔 K-PACE에 다니는 34명의 아들딸이 있다. ◇한국 특수교육의 살아있는 증인, 이영식 목사 1946년 가을, 공동묘지 부지에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는 10명이 모였다. 다섯 살 꼬마부터 60세 노인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빨간 벽돌을 조심스레 손에 쥐고,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근처를 지나다 이 광경을 목격한 보병대 중령 한 명이 이들에게 다가갔다. “무얼 하시는 거요.” 열한 살 아이가 대답했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건물을 짓고 있어요.”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이 중령은 부대로 돌아가 불도저를 끌고 왔다. 건물 짓는 걸 돕기 위해서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그에게 다가와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 총장의 할아버지, 이영식 목사였다. 공동묘지 땅 1만평을 대구시로부터 증여받았지만, 공사비가 없어 장애인들과 함께 직접 벽돌을 나르고 있던 것이었다. 이 총장이 태어나고 자란 맹아학교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 총장은, 할아버지 이영식 목사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때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2년 넘게 형무소에 계셨습니다. 고문을 받다가 청력을 잃게 됐고, 장애의 아픔을 공감한 할아버지께선 평생 아프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셨답니다. 목사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센병(일명 나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애락원’에 들어가셨지요. 20년간 이들을 보살핀 할아버지는 장애인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시각·청각 장애인을 위한 맹아 학교를 설립했어요.” 1956년, 이 목사는 한국사회사업대학교(현 대구대)를 세우고, 국내 대학 최초로 특수교육학과를 개설했다. 특수학교를 설립하고 보니, 이들을 가르치는 전문 교사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67년엔 정신지체 특수학교인 보병학교와 보건학교(지체부자유)까지 설립했다. ‘3대’째 이어진 특수교육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특수교육을 일군 3대의 가족사진. 아랫줄 하단의 오른쪽부터 이영식 목사, 이태영 초대 총장. 윗줄에 이근용 사이버대총장이 서있다.
특수교육을 일군 3대의 가족사진. 아랫줄 하단의 오른쪽부터 이영식 목사, 이태영 초대 총장. 윗줄에 이근용 사이버대총장이 서있다.

◇특수교육을 체계화한 이태영 초대 총장 특수교육에 대한 이 목사의 열정은 그의 두 아들에게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장남인 이태영 대구대 초대 총장은 특수교육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1973년 한국특수교육연구협회 회장이 된 그는 장애 아동들의 고등교육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법안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1977년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됐다. 1983년엔 한국 최초의 정서장애학교인 덕희학교를 설립했다. 맹아학교가 대구광명학교(시각장애), 대구영화학교(청각장애)로 분리되면서, 총 5개의 특수학교가 대구 대명동에 자리 잡게 됐다. 이후 대구대 경산캠퍼스를 건립한 그는 특수교육·사회복지·재활과학 분야의 전문성을 강화해, 대구대를 전국 15위권 내의 주요 종합대학으로 성장시켰다. 이 목사의 차남인 이기수 박사는 헬렌켈러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1960년대 한국에 특수교육 전문 서적이 부족함을 알고, 미국에서 장학금을 조성해 국내에 특수교육 전문도서를 대량 기증하기도 했다. 다양한 특수교육 사업을 시도해본 이근용 총장이지만, 아직도 해보고 싶고, 바꾸고 싶은 부분이 많은 듯했다. 최근에는 특수교사를 채용할 때 신원조회를 해야 한다고 각 부처와 국회에 건의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한다. “제가 미국 발달장애기관에 이력서를 제출했을 때 면접을 앞두고, 주 경찰은 물론 FBI에서까지 제 지인 3명에게 전화를 걸어 신원조회를 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저에 대해 캐묻는데, 전화받은 사람이 질릴 정도였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이들이 던진 질문은 ‘당신 아기를 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느냐?’였습니다. ‘당연히 맡길 수 있다’는 답변이 오자, 신원조회를 마쳤다고 해요. 발달장애인을 자식처럼 보살피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특수교사 직분을 허락하는 거죠. 우리도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영식 목사-이태영 총장-이근용 총장으로 3대째 내려온 ‘장애인 사랑’은 척박한 한국 땅에 특수교육을 일군 원동력이었다. “장애인은 나와 똑같은 이웃입니다. 장애인을 내 가족처럼 친구처럼 대하는 문화야말로 ‘장애인이 행복한 나라’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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