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팍팍한 삶… 공유 통해 ‘인생의 기쁨’ 나눈다

공유경제 서비스
정장 대여하는 ‘열린옷장’ 면접 경험 공유도 함께 유명인사의 기부 이어져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며 밥 같이 먹는 ‘집밥’모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주거 문화·생활까지 공유하는 ‘서울소셜스탠다드’

취업 준비생 이모(여·23)씨는 지난 6월 지원한 기업에서 면접 제의를 받았다. 경험 삼아 이력서를 넣었던 곳이었기에 몇십만원을 들여 면접용 정장을 사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인터넷으로 방법을 검색하던 중 ‘열린옷장’의 기사를 접하고 무작정 사무실을 찾아갔다. 1만원이라는 싼 대여 가격과 깨끗한 품질의 옷에 놀랐다. 치마 두 벌과 블라우스, 재킷까지 빌렸고 1차 면접을 통과했다. 이씨는 2차 면접에서도 ‘열린옷장’ 서비스를 사용했다.

제러미 리프킨이 ‘소유의 종말’ 시대를 예견한 지 10여년 만에 옷, 음식, 집, 공간 등을 공유하는 시스템이 관심을 끌고 있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는 2008년 미국 하버드 법대 로런스 레식 교수에 의해 처음 사용된 말로 한 번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공유해 쓰는 협업 소비를 기본으로 한 경제 방식이다. 높은 집값, 취업난, 비싼 물가 등으로 허덕이는 청년들 사이에서 이 공유경제가 대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물품뿐 아니라 서로의 경험과 삶을 공유하는 방식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청년 구직자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 ‘열린옷장’

① 지난 18일,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린‘2012청년일자리박람회’에‘열린옷장’서비스가 소개되었다.
① 지난 18일,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린‘2012청년일자리박람회’에‘열린옷장’서비스가 소개되었다.

‘열린옷장’은 기증받은 정장을 구직자에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대여하는 서비스다. 회사원 한만일(31)씨는 2011년 희망제작소 ‘소셜디자이너스쿨’에서 삼성전자 모바일사업부 책임연구원 박금례(33)씨와 카피라이터 김소령(41)씨를 만났다. 한씨는 “사회 선배들은 잘 입지 않는 정장을 갖고 있고, 청년 구직자들은 정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이를 매칭해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시범 오픈한 이들이 현재 기증받은 정장은 150벌 정도로 대여료는 1만원이다. 정장을 기부하고 싶은 사람이 ‘열린옷장'(www.theopencloset.net) 웹사이트에 주소와 연락처를 남기면 빈 박스를 택배로 받는다. 기부자는 박스에 정장과 함께 응원 메시지도 넣어 ‘열린옷장’으로 보내면 되고 대여자는 웹사이트에서 자신에게 맞는 옷을 신청하면 된다. 인터넷 쇼핑몰과 같은 시스템인데, 단 일주일이라는 대여 기간이 있다. 중고 장터와 다른 점은 ‘응원 메시지’를 통해 사회 선배의 경험을 후배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함께하는 6명의 팀원은 모두 직장인이다. 올해엔 한만일씨가 휴직을 하고 행동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은 대여료를 대부분 정장 세탁비로 사용하는 수준이다. 한씨는 “의류업계, 백화점 등에서 정장 기부 문의가 자주 들어온다”며 “정장 기증과 대여 시스템이 안정화되면 2차 비즈니스 모델을 세울 것”이라고 했다.

한씨는 유명인사를 만나면 꼭 정장을 기부해달라고 말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탐스슈즈 임동준 이사도 정장을 기부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만난 SBS 정석문 아나운서도 ‘열린옷장’의 취지에 공감하며 응원 메시지와 함께 정장 한 벌을 기부했다. “정석문 아나운서의 옷을 아나운서 지망생이 입으면 얼마나 힘이 되겠어요.” 한씨가 웃으며 말했다.

② 소셜다이닝‘집밥’은 음식을 통해 서로의 삶과 경험을 공유하는 서비스다. /집밥제공
② 소셜다이닝‘집밥’은 음식을 통해 서로의 삶과 경험을 공유하는 서비스다. /집밥제공

◇제대로 된 집밥 먹고 싶어요, 소셜다이닝 ‘집밥(Zipbob)’

박인(26)씨는 집 밥이 그리웠다. 경영학을 전공해 잘나가는 컨설팅 회사에 다녔지만 여의도의 삭막함에 질려버렸다. 올해 초 회사를 그만두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해 집 밥을 함께 먹을 사람을 모았다. 각자가 집에서 만든 밥을 가지고 와서 나눠 먹기로 한 것. 박씨는 “음식을 만들어 배달하는 순간 그냥 외식업이 되어버렸다”며 “집 밥이 ‘집에서 만든 밥’이라는 뜻보다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는 분위기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집밥'(www.zipbob.net)은 사람들과 음식을 먹으며 공통 관심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서비스다. 일명 ‘소셜다이닝’이다. 미국, 유럽 같은 경우는 런치위드미(Lunchwithme), 코런치(Colunch), 그럽위드어스(grubwithus) 등의 서비스를 통해 ‘소셜다이닝’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집밥’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창업 준비생, 여행 마니아 등 다양한 모임 리스트를 볼 수 있다. 박씨는 “웹사이트 재방문율이 60%이고, ‘집밥’모임 자체 재방문율도 30%가 넘는다”며 “처음엔 낯선 경험이기에 주저하는 경향도 있지만 ‘관심 주제’를 가지고 모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모임을 열고 싶은 사람은 웹사이트에 모임의 주제와 일정, 선호 지역만 적으면 된다. 식당 예약과 사람들의 모집은 ‘집밥’의 운영자가 맡아서 해준다. 5월부터 시작한 ‘집밥’ 모임 횟수는 100회가 넘었고 이용자 수도 매월 10~20%씩 증가하고 있다.

③ 일본의‘셰어하우스’에서는 거실, 테라스 등의 공동공 간에서 거주자들과 소통하며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한다. /히츠지 부동산 제공
③ 일본의‘셰어하우스’에서는 거실, 테라스 등의 공동공 간에서 거주자들과 소통하며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한다. /히츠지 부동산 제공

◇멋지고 재미있는 ‘라이프스타일’ 공유, ‘서울소셜스탠다드’

성나연(31)씨와 김하나(32)씨는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설계사무소에서 함께 일을 했다. 건축가로서 사람들에게 ‘더 좋은 공간’을 제공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지만 실상은 수동적으로 도면을 그리는 일이 태반이었다. 성씨는 2008년 도쿄에서 일본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셰어하우스’를 접했다. “여러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사는 거라 재밌겠다 싶었어요. 요요기공원 근처라는 점도 좋았어요.” 성씨는 일본인 7명과 함께 단독주택을 개조한 ‘셰어하우스’에 살면서 일본어도 빨리 늘고, 경험도 공유하면서 외국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작년 11월에 한국으로 돌아온 성씨는 김하나씨와 함께 청년 사회적 기업팀 ‘서울소셜스탠다드’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했다. 주거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대안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주거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다. 성씨는 “일본 히츠지 부동산에서는 2005년에 75개 정도였던 매물이 2011년 982개로 늘어났다”며 “일본에서는 지난 3년 사이 셰어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자 사는 게 즐겁지 않다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공동 주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조정하고 쾌적한 주거 생활을 위해 ‘셰어주거 운영사업자’라는 새로운 직업도 생겼다.

성씨에게 ‘서울소셜스탠다드’의 과제를 물었다. “‘공유’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에요. 공유 공간에 대한 책임감, 서로에 대한 배려심을 가지고 생활한다면 ‘셰어하우스’는 멋지고 재밌는 주거 공간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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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호 202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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