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장애인만을 위한 보조기구? 그 편견부터 깨라”

제리 와이즈만 보조공학협회장 인터뷰
고령화 시대 접어들면서 보조공학 필요성 높아져
장애·비장애 구분 없는 디자인이 대세 될 것
장애를 바라보는 편견 그 장벽을 무너뜨릴 때 보조공학의 미래는 밝아

미상_사진_보조기구_제리와이즈만_2012“안경은 시력 보조기구지만, 보조기구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패션의 일부로 여긴다. 좋은 브랜드가 붙으면 고가를 지불하기도 한다. 휠체어나 보청기에도 적용되지 말란 법이 없다. ‘페라리’가 휠체어를 만든다고 상상해보라. 모두가 탐내고, 타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제리 와이즈만(Jerry Weisman) 북미 재활·보조공학협회장의 말이다. 그는 버몬트 기술대학에서 재활공학기술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등 평생을 재활 엔지니어의 분야에 바친 대가다. 지난 8월 30일, ‘2012 국제 보조공학 심포지엄’의 기조연설을 위해 일산 킨텍스를 찾은 그를 만나, 선진국의 보조공학 기술에 대한 트렌드를 들어봤다.

-앞으로 보조공학 기술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의료기술이 발전했다. 과거에는 생명을 위협했던 질병을 극복하는 대신, 장애나 기능적인 제약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 또 고령화로 청력이나 시력에 문제가 생긴 이들이 보조공학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20세기 초 47세였던 평균수명은 오늘날 75세가 됐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 장애를 입는 군인들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디자인이 아닌, 모두에게 유용한 ‘보편적인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방문의 원형 손잡이를, 누르는 ‘레버형’으로 바꾼다고 해보자. 비장애인들도 손이 자유롭지 못할 때 이를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휠체어를 위해 만든 경사로 덕분에 일반인도 캐리어를 쉽게 이용할 수 있지 않나.”

-한국은 보조기구와 관련된 ‘시장’이 열악하다. 미국이나 유럽은 ‘시장이 성숙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미국 시장이 상대적으로 성숙했다고는 하나, 실상은 한국과 비슷하다. 보조기구에 오래 몸담은 회사 수도 적고, 한번 생겼다가 사라지는 케이스도 많다. 연구개발한 제품이 상용화되어 판매까지 이뤄지는 케이스가 5%도 채 안 된다. 보조기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실제 필요한 사람들이 구매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도 변함없다.

최근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량 제작을 가능케 하는 기술들이 생겨나고 있다. 종이에 프린트하듯이 물건을 복사하는 기능을 가진 ‘3D프린팅’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게 가능해졌다.

미국에는 ‘메이커무브먼트(Maker Movement)’라고 해서 사람들이 자기가 필요한 것을 직접 제작해 사용하는 움직임도 있다. ‘AT 솔루션스닷컴(AT Soutions.com)’이란 사이트에 우리가 기술이나 정보를 올리면, 필요한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직접 제작해 볼 수도 있고, 그걸 판매할 수도 있다. 인터넷을 통해 자체 제작한 것을 널리 보급할 수도 있다. 제작하는 방법도, 투자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벤처캐피털에 가서 돈을 빌렸는데, 요즘은 ‘킥스타터'(kickstarter.com, 미국의 소셜펀딩사이트)처럼 소규모 종자돈을 받아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방법들이 생겨나고 있다.”

-모바일과 로봇공학 발전 등 보조공학의 미래를 이끌 기술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10년 후 보조기구는 어디까지 발전할 것으로 보는가.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불가능은 없을 것이다. 이 분야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장벽이다. 장애를 가진 분들은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원하는데, 사회가 그런 분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노인들을 봐라. 기능적인 제약이 아무리 많아도,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허리가 불편하고, 다리에 힘이 없다”고 말하지, “장애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안 좋기 때문에 그 부류에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 나의 어머니가 지금 92세이신데, 지팡이를 처음 사용할 때 굉장히 거부반응을 느끼셨다. 편하게 사용하시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는 시간이 그만큼 걸린 것이다.

전동휠체어가 필요한 많은 분이 고집스럽게 수동을 고집하기도 한다.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은 ‘심한 장애’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다양성에 달려있다고 본다. 장애·비장애 문제를 떠나 모든 다양성을 수용해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재활공학자뿐만 아니라, 인문학 전문가나 예술가, 교육자들도 함께해줘야 한다. 장애에 붙는 부정적인 인식, 기능 제약이 갖는 편견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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