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해외 변호사 ‘쌤’들과 영어 퀴즈… 시골 아이들 “공부 욕심 생겼어요”

[삼성사회봉사단 ‘드림클래스 여름 캠프’ 현장을 가다] 저소득층 학업 돕는 캠프, 이번엔 전남 중학생들 초청
삼성 ‘드림클래스’는…
평일·주말·방학 교실로 진행… 대학생 강사에겐 장학금, 아이들에겐 학습 기회 제공

“What is this?(이것은 무엇일까요?)”

문제가 나오자, 학생 100여명이 강당 앞에 설치된 하얀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했다. “Before phone card came out, you needed this to make a phone call(공중전화 카드가 나오기 전, 전화를 걸기 위해선 이 물건이 필요했습니다).” 사물을 맞추는 문제였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학생들이 “너무 어려워요”, “힌트 좀 주세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영어 문제를 읽어내려 가던 김종연 삼성SDI 수석변호사가 “마지막 힌트”라며 “자동판매기에서 물건을 살 때도 이것이 필요합니다”고 보충 설명을 해준다. 머리를 긁적이던 학생들이 그제야 스케치북 위에 글자를 적어내려 간다.

“다 적었으면 머리 위로 스케치북을 들어주세요. 자~ 하나, 둘, 셋. 네~ 정답은 ‘동전(coin)’입니다.”

지난 8월 10일, 전남 읍면 도서 지역 중학생들이 ‘삼성 드림클래스 여름 캠프’에서 삼성그룹 소속 해외 변호사가 준비한 영어 골든벨에 참여하여 정답을 적은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모습.
지난 8월 10일, 전남 읍면 도서 지역 중학생들이 ‘삼성 드림클래스 여름 캠프’에서 삼성그룹 소속 해외 변호사가 준비한 영어 골든벨에 참여하여 정답을 적은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모습.

지난 8월 10일, 서울대학교 종합교육연구동에서 열린 ‘도전! 영어 골든벨’ 현장. 정답이 발표될 때마다 희비가 엇갈린다. 문학, 스포츠,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상식 문제가 줄지어 나왔다. 속담을 묻는 23번 문제에 이르자 두 명만이 남았고, 여수 화양중 1학년에 재학 중인 정혜성군이 최종 우승자가 됐다. “골든벨 재미있었나요?” 김종연 변호사의 질문에 학생들은 “아쉬워요. 더 풀어볼래요”, “문제 더 없어요?”라고 입을 모은다.

“제가 미국에 갈 때만 해도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어요. 실수를 해도 계속 부딪치고 노력한 결과, 미국 변호사 자격증까지 딸 수 있게 됐죠.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두려워하지 말고, 즐기세요.”

김종연 변호사뿐만 아니다. 이날 삼성그룹의 해외 변호사 25명은 2·3명씩 짝을 이뤄 영어 낱말 퀴즈, 토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진행했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영어의 벽을 허물고, 꿈을 키웠다.

이는 삼성사회봉사단이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17일까지 서울대학교에서 진행한 ‘드림클래스 여름 캠프’의 특별 강의 프로그램이었다. 삼성은 3월부터 저소득층 중학생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드림클래스’ 사업을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습 기회를 놓친 중학생들을 선발해, 우수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드림클래스’는 평일에 이뤄지는 방과 후 학습 교실, 주말 교실, 여름 캠프 등 세 가지 유형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전국 21개 주요 도시 중학생 5000명이 교육 혜택을 받고 있다. 참여 학생의 95%가 기초생활수급자, 저소득층 한부모가정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다. 이지현 삼성사회봉사단 과장은 “국내 통계 자료를 보니 섬 지역이 많은 전라남도 중학생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했다”면서 “이번 여름 캠프는 전라남도 읍·면·도서 지역 중학교 1,2학년 300명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삼성 드림클래스 여름 캠프’에 참가한 전남 읍면 도서 중학생들이 서초동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체험형 홍보관 딜라이트를 견학하고 있는 모습.
‘삼성 드림클래스 여름 캠프’에 참가한 전남 읍면 도서 중학생들이 서초동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체험형 홍보관 딜라이트를 견학하고 있는 모습.

여름 캠프에 참가한 배규현(14)군은 전남 여수 시내에서 배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연도라는 섬에 산다. 배군이 다니는 여남중 연도분교장의 전교생은 13명.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복식수업(한 교실에서 두 학년 이상을 함께 묶어 수업하는 방식)’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한 과목을 두 시간 이상 듣게 되고,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단다. 배군은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가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온 느낌”이라면서 “여름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이 공부를 너무 잘해서 놀랐고, 나도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소를 보였다.

‘드림클래스’의 강사진은 중학교 인근에 소재한 주요 대학 재학생들로 구성된다. 학업 성적, 봉사 정신, 리더십이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고, 이들에겐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등록금 마련 기회가 적은 드림클래스에 투입된 대학생 강사 수만 무려 3000명에 이른다. 특히 이번 여름 캠프 강사 60명은 전부 서울대 재학생으로 구성했다. 대학생 2명이 중학생 10명의 담임을 맡아 3주 동안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진로 상담은 물론, 별도 학습을 원하는 학생들에겐 1대1 과외도 이뤄졌다.

한채란(24·서울대 사범대학 생물교육과)씨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소득에 따라 수학·영어 과목에서 특히 격차가 벌어진다는 통계를 접한 적 있었는데, 가르쳐보니 아이들의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기회가 부족했던 것이었다”면서 “놀랄 정도로 이해가 빠르고, 열심히 하려는 열정이 느껴져서 가르치는 내내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비슷한 경험을 통해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강사도 많았다. 충남 태안에서 자란 김은덕(23·서울대 정치학과)씨는 “시골 마을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공부해야 했기에, 나만의 자기주도학습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면서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아이들이 시행착오 없이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노하우를 전수했다”고 전했다.

삼성은 지금까지 영·유아(어린이집), 초등학생(공부방 지원),고등학생(열린 장학금 사업)을 위한 교육 지원 활동을 펼쳤지만,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러나 ‘드림클래스’를 통해 삼성은 이제 미취학 아동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교육 지원이 가능해졌다. ‘드림클래스 여름 캠프’ 역시 연간 중학생 6000명에게 기회를 확대할 예정이다.

서준희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은 “드림클래스는 학습 의지가 있지만 다양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은 중학생들에게 내일을 향한 꿈을 선물할 것”이라며 “교육복지를 통해 사회 양극화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앞으로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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