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월)

북경 토토의 작업실_문화예술 교육 단비… “영화를 향한 꿈, 레디~~~ 액션!”

CJ CGV, 중국 현지 맞춤 청소년 대상 영화창작교육
제작 과정서 자연스레사회 이슈·역사 공부 협동심까지 배우게 돼
한국·중국 학생 공동 작업 ‘문화 교류의 장’ 역할도

“레디(Ready), 액션(Action)!”

카메라 버튼이 눌리고 녹화가 시작되자, 리우뽀(16)군의 얼굴이 경직되기 시작한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조심스레 눌러보지만, 이내 실수를 하고 만다.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는 리우뽀군의 모습에 진지한 얼굴로 피아노를 응시하던 배우들이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메이요우 관시~부야오 진장(沒有關係 不要緊張·괜찮아~긴장하지마).” 격려의 말이 쏟아졌다. 리우뽀군이 긴장을 풀기 위해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두 손을 건반 위로 천천히 올렸다. 매끄러운 연주가 이어졌다. 감독이 사인을 내리자, 짱안징(15)양이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를 펄럭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멜로디에 따라 사뿐사뿐 스텝을 밟는 짱안징의 동작이 카메라 렌즈 안에 클로즈업 되면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지난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중국 북경 광거문 중학교에서 진행된 ‘2012 북경 토토의 작업실’ 현장. 6조 영화 ‘그해 여름’에서 여자 주인공 역할을 맡은 짱인징양은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지만 배우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주연을 맡았다”면서 “영화 감독에겐 촬영 기술뿐만 아니라 배우와 소통하는 능력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1 지난 8월 13일부터 5일간 북경에서 열린 CGV의 사회공헌 사업 ‘2012 북경 토토의 작업실’의 모습. 2 영화 감독, 배우의 꿈을 품은 중학생들이 방송실에서 분장을 한 채, 촬영하고 있다. 3 2012 런던올림픽 에피소드를 전하는 4조 영화 ‘캠퍼스 DJ’를 촬영하는 학생들이 신아람 선수의 펜싱 경기 ‘잃어버린 1초’ 사건을 재연하고 있다.
1 지난 8월 13일부터 5일간 북경에서 열린 CGV의 사회공헌 사업 ‘2012 북경 토토의 작업실’의 모습. 2 영화 감독, 배우의 꿈을 품은 중학생들이 방송실에서 분장을 한 채, 촬영하고 있다. 3 2012 런던올림픽 에피소드를 전하는 4조 영화 ‘캠퍼스 DJ’를 촬영하는 학생들이 신아람 선수의 펜싱 경기 ‘잃어버린 1초’ 사건을 재연하고 있다.

◇중국 현지 고려한 ‘맞춤형’ 영화 교육 프로그램 개발

아직까지 중국 내에서 청소년 대상 문화예술교육은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 프로그램의 멘토강사 다이첸즈씨도 지난해 여름, 청소년을 대상으로 영화·애니메이션 교육 봉사를 시도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수혜자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사를 해보니 중국 학부모들이 문화·예술 교육에 들이는 시간 자체를 아까워했어요. 그 시간에 차라리 영어·수학 공부를 시키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 때문에 아직 중국 내에서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을 지속적으로 해오거나 성공한 단체가 거의 없습니다. 성적·성공을 위한 주입식 교육은 공부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립니다. 이번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는데, 6명 중 5명이 ‘공부’라고 답했습니다. 안타까웠어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재미있게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북경 토토의 작업실’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토토의 작업실’은 CJ CGV가 국내에서 2008년부터 진행한 영화창작교육 프로그램이다. 지역의 작은 분교와 지역아동센터에서 3년간 청소년 영화창작교육 노하우를 쌓은 CGV는 지난해부터 북경으로 그 규모를 확대했다. 조정은 CGV 사회공헌팀 과장은 “시나리오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사회 이슈와 역사를 접하게 되고, 스토리를 만드는 중에 작문 공부를, 촬영 중엔 ‘협력’을, 제작 과정에선 ‘인내’를 배우게 된다”면서 “국내 문화공헌 경험을 살려 중국 청소년들에게도 새로운 방식의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지에 맞는 영화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강사진 구성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작년에는 한국 멘토 10명이 북경을 방문해 토토의 작업실을 진행했지만, 올해는 중국 감독(6명) 혹은 중국에 유학 온 한국인 감독(3명)으로만 구성했다.

중국 최연소 유망감독에 선정된 리관이 감독을 비롯해 모두 중국 내에서 꼽히는 유명 감독인 데다가, 한중 문화교류에 관심이 많고, 평소 저소득층 대상 영화교육 또는 기부·봉사를 실천해 온 인재들이었다. 중국어로 교재도 만들었다. 지난 4년간 토토의 작업실을 진행하면서 쌓인 청소년 영화 교육 노하우를 고스란히 담았다.

◇만족을 넘어 한중 문화교류로 발전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토토의 작업실’은 한국을 넘어 중국으로, 기업의 사회공헌을 넘어 국가 간의 문화교류 사업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북경 토토의 작업실’에 참여한 수찌아르(14)군은 “작년에 영화 제작의 재미를 알게 되고부터 배우의 꿈을 갖게 됐다”면서 “교재가 있고, 중국어로 수업을 들으니 작년보다 빨리, 더 많은 내용을 배우게 돼서 좋다”며 내년에도 참가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번 ‘2012 북경 토토의 작업실’은 한중 수교 20주년의 취지를 살려, 중국 청소년(중고생) 30명과 한국 청소년(중국 유학생) 15명이 총 8조로 나뉘어 영화를 제작했다. 시나리오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들은 한국과 중국 문화의 공통 분모를 찾고, 촬영을 통해 하나가 됐다. 학생 선발과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장소 및 네트워크는 중국 공산당 산하 청소년 정책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공청단 내의 소년선봉대가 적극 지원했다.

왕시 공청단 대표는 “지난해 북경 토토의 작업실이 중국 내에서 굉장히 이슈가 됐다”면서 “최근 청소년 문화활동 지원을 확대한 중국 정부에게 CGV의 문화공헌사업이 롤모델이 됐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토토의 작업실을 통해 한국의 청소년 문화교육 노하우를 배우고, 한중 문화교류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어서 기쁘다”고 덧붙였다.

8월 13일부터 4일간 학생들이 멘토와 함께 열심히 제작한 8편의 영화들은 8월 17일, 북경에 위치한 CGV 장타이루에서 상영됐다.

과거로 돌아가 여자친구를 구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타임라인(Time Line)’, 학교 폭력을 풍자한 액션 코믹 ‘한여름의 캠퍼스’, 청춘 로맨스 ‘첫사랑(First love in childhood)’, 런던올림픽 소식을 전하는 ‘캠퍼스 DJ’,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다룬 ‘대답’, 음악의 꿈을 되찾는 청춘 드라마 ‘그해 여름’,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 되는 꿈을 꾸는 애니메이션 ‘어떤 하루(One day)’, 학교 공포물 ‘원한과 사랑’ 등 작품마다 학생들의 끼와 개성이 가득했다. 한편, 이번 상영회에는 영화 ‘7광구’로 사랑을 받은 김지훈 감독과 배우 하지원이 특별 멘토로 참석했다.

김지훈 감독은 상영 전 30분간 진행된 미니 특강을 통해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행복한 영화,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라”는 조언을 남겼다. 상영 후 영화 ‘대답’을 찍은 5조에게 특별상(미래의 유망주상)을 수여한 하지원은 “모든 작품이 다 훌륭하고 아이디어도 신선했다”면서 “지금 가진 꿈을 앞으로 계속 피워 나가시길 응원하겠다”고 격려했다.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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