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자원봉사로 왕따 이겨낸 소모라양

“중학교 입학 후 매일 울었는데…” 나눔은 ‘팔자’도 바꾼다
아무도 아는 체 안 하고 밥도 늘 혼자 먹었는데
복지관 학습지도 봉사 후 자존감 생겨 성격 밝아져
먼저 다가가고 배려하니 친구들이 알아주더라

‘왕따’. 집단 따돌림을 일컫는 이 용어가 알려지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이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해질 것을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왕따 문제는 전문가들도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혀를 내두른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피해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지상에 소개되고 있으며, 가해학생의 처리, 학교와 교육청의 배상 문제 등 후폭풍도 거세다.

방승호 강서 위(Wee)센터장은 “나눔이 가장 기본적이자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조언한다. 방승호 센터장은 “나눔은 ‘팔자가 바뀌는 것’으로, 나눔을 통해 마음이 열리고, 자존감이 생긴다”며 “왕따의 상처를 나눔과 봉사로 이겨낸 사례가 적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상_사진_자원봉사_소모라_2012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신목종합사회복지관. 이곳에서 4년째 정기적인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소모라(18·사진)양은 나눔으로 팔자가 바뀐 ‘산 증인’이다. 소모라양은 중학교 1학년 내내 왕따와 이간질에 시달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왔는데, 오자마자 교내 학급회장에 뽑혔던 게 원인이었죠.” 이전까지 회장을 도맡았던 아이를 중심으로, 모라양에 대한 ‘텃세’가 시작됐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당찼던 모라의 행동은 오히려 아이들을 자극했다. “저에 대해 ‘성격파탄자다’ ‘뒤에서 친구들 욕하는 애다’라는 온갖 나쁜 말이 돌았고, 친구들이 절 멀리하는 게 느껴졌어요.”

모라양이 중학교 들어가자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을 정도로 왕따는 심해졌다. 사생대회나 소풍 같은 데도 늘 혼자 다녀야 했다. 마음 터놓을 친구조차 없는 낯선 동네에서 모라양은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정말 아무도 없다고 느꼈어요. 매일 울었고, 공책에 죽고 싶다고 썼죠. 사실 그것마저 누가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모라양의 삶은 우연히 접한 자원봉사를 통해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학교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봉사에 흥미를 느낀 모라양이 직접 집 근처 신목종합사회복지관을 찾은 것이 그 시발점이다. “교실에 앉아 있어도, 아무도 아는 체를 안 했어요. 존재감이 없다는 마음에 괴로웠는데, 저를 찾아주고, 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만나면서, 제 자존감을 회복하게 됐죠.”

모라양은 2009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복지관에서 저소득층과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학습지도와 음악수업을 맡고 있다. 10여명 내외의 아동에게 리코더와 핸드벨 합주를 지도한다. 신목종합사회복지관의 우희선 사회복지사는 “자원봉사자들의 경우 학생이 대부분이라 시험 한 달 전부터는 봉사참여가 줄어들지만 모라 학생은 시험 일주 전까지 빠짐없이 참석할 정도로 책임감이 강하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매우 좋다”고 말했다.

미상_그래픽_왕따_돌_2012모라양은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스스로 ‘나는 쓸모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한다. 복지관 측은 모라양이 재능을 갖고 있던 음악수업 한 강좌를 통째로 맡기며 신뢰감을 표현했다. 모라양의 변화는 친구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소모라양은 “억울한 일이 있어도, 대응 자체를 꺼렸는데, 성격이 밝아지고 자신감을 가지면서, 먼저 다가가고, 더 배려하도록 노력했다”며 “결국 나중에는 친구들이 다 알아주더라”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무렵, 모라양은 한 친구로부터 쪽지를 받았다. 쪽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소문이 너무 안 좋아서, 나쁜 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참 좋은 애인 것 같아. 친하게 지내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