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나눔의 리더를 찾아서] ② 이순동 한국자원봉사문화 이사장

“자원봉사 문화 업그레이드 위해 ’30년 홍보 달인’ 재능 나눌 것”
자원봉사 참여율 20% 한계… 시혜로 여기는 인식 때문… 이런 문화토양틀 깨야
여행·콘서트 접목… “봉사는 즐겁다” 개념 확산… 기업·NGO 함께 성장해야

일간지 기자를 거쳐 삼성에서 30년 가까이 홍보·커뮤니케이션을 책임졌던 이순동(65) 한국자원봉사문화 이사장은 ‘나눔’을 통해 제3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비영리민간단체인 한국자원봉사문화 이사장직을 맡아 “자원봉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겠다”고 나섰다. 올해는 15년 동안 유지해오던 ‘볼런티어21’이란 이름도 한국자원봉사문화로 바꾸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지난 14일 서울 역삼동의 사무실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신문사 기자로, 삼성의 홍보·광고 책임자로, 이제 비영리민간단체(NPO)의 리더로 변신했습니다. 제3의 인생을 사는 소감이 궁금합니다.

“홍보를 하는 사람은 뒤에 숨어야 해요. 그런데 이제 자원봉사문화를 홍보하려니 안 나설 수가 없네요(웃음). 기업이나 비영리단체나 리더가 하는 일은 비슷해요. 인력과 재원을 적당히 운영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기업이 ‘이윤’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지향하는 데 반해, 비영리 분야는 근본적으로 이타적이잖아요. 남을 돕기 위한 일 아닙니까. 봉급을 받느냐 안 받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영리기업에선 금전적으로 보상받았지만, 비영리단체에선 봉급은 안 받아도 자기 성취를 심리적으로 보상받으니까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나눔이죠.”

미상_사진_나눔의리더를찾아서_이순동한국자원봉사문화이사장_2012―2009년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을 맡았고, 이후 삼성미소금융재단 이사장직도 맡으셨는데요. 자원봉사나 나눔 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습니까.

“기업 홍보를 하면서 처음에는 판촉으로 홍보하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이미지 전쟁이 시작되었어요. 판촉이나 이미지는 ‘감정’적인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평판’의 시대예요. 이미지는 좋지만 평판이 나쁜 기업이 있어요. 기업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려면 평판이 좋아져야 하니까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많이 홍보했어요.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이란 책에도 나오듯, 사랑받는 기업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잖아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홍보하면서 나눔과 자원봉사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공교롭게도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이 길로 들어선 거죠.”

―우리나라의 자원봉사 역사를 보면,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등 국가적인 행사를 치르며 관심이 높아지다 1990년대 전국 지자체에 자원봉사센터가 설치되면서 인프라가 완성되고, 2000년대에는 태안 기름유출사건에서 보듯 능동적인 사회참여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참여율 20%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원봉사 하면 40~50대 중년 여성들이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이미지로만 생각해요. 자원봉사라는 개념을 바꿔보려 합니다. ‘의병’도 ‘새마을 지도자’도 다 자원봉사였어요. 예전에 하천에 다리 놓기 운동할 때 정부가 나선 게 아니라 주민이 나섰잖아요. 자원봉사는 크게 보면 큰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내 손으로 직접 하자는 거예요. 2005년 이후 자원봉사 참여율이 20%대에서 머무는 이유는 자원봉사를 단순한 시혜로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시혜를 베풀면 우월의식을 갖게 되죠. 반면, 많은 사람이 자원봉사를 싫어하는 이유는 ‘사회지도층도 아닌데 자원봉사할 여유가 없다’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자원봉사가 시민의 의무 아닙니까. 베푸는 것이 의무입니다. 이런 문화토양을 짜기 위해 저는 ‘자원봉사’가 아니라 ‘자원공사(공익적인 일을 돈을 안 받고 하는 일이라는 뜻)’라고 부르자고 했어요. 재미도 있고, 창의적이잖아요.”

미상_그래픽_나눔의리더를찾아서_의자꽃_2012―한국자원봉사문화는 15년 동안 자원봉사 역사를 이끌어온 단체인데, 아직도 비영리단체는 재원이나 인력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합니다.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사무실이 좁아서 저도 놀랐어요. 어차피 저도 사무실을 내야 할 입장이라 이곳 제 사무실을 자원봉사문화 연구소처럼 쓰고 있어요. 복지분야가 아닌 자원봉사 쪽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기도 어렵고, 기업에서는 자체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추세로 바뀌다 보니 힘들어요. 저희는 바쁜 현대인을 위한 도시형 자원봉사 프로그램인 ‘핸즈온’, 자원봉사와 여행을 접목한 ‘볼런투어’, 즐거운 자원봉사인 ‘볼런테인먼트 캠페인’ 등을 통해 유연하고 즐거운 자원봉사 개념을 확산시키려 하고 있어요. 자원봉사 영화제도 가능하고, 자원봉사 콘서트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뉴욕의 유명 카바레 홍보담당자가 자기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어느 날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들어주는 NGO를 만들었대요. 인터넷을 통해 기부자 이름으로 만들어진 아프리카 우물을 직접 볼 수 있게 했더니 엄청난 기부금이 들어왔대요. 아직 NGO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부족해요. 광고나 PR 하는 후배들한테 ‘이 분야가 정말 당신네들이 필요한 파트니 도와달라’고 하죠.”

―기업 사회공헌이 늘어나면서 NGO와 파트너십을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업 사회공헌담당자들은 ‘NGO의 신뢰성’을 의심하고, NGO에서는 ‘기업 사회공헌의 진정성’을 의심합니다. 기업과 비영리민간단체, 두 곳을 함께 경험해보니 어떤 파트너십이 필요한 것 같습니까.

“1987년에 이건희 회장이 삼성 어린이집을 만들 당시, 직접 달동네를 몇 군데 찾아갔어요. 가보니 이건 돈을 좀 나눠주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란 결론이 났어요. 부부가 맞벌이를 해서 달동네를 탈출하려고 해도 애 때문에 일을 못한다는 거예요. 어린이집이나 삼성사회봉사단을 만든 것도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자유 시장경제에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란 이유였어요. 기업의 일차적 책임은 이익을 내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 자유 시장경제가 허물어지면 기업이 설 땅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사회공헌을 성실하게 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사회공헌 비용이 2조원이고 미국이나 일본보다 두 배나 많은데도, 대기업 사회공헌 인식은 매우 낮게 나와요. 기업과 사회를 어떻게 공존시킬지, 기업이 성장하되 NGO의 협조를 받아서 같이 해나가야겠죠. 기업에서도 NGO를 지원해주고, 사회공헌 프로젝트의 파트너가 되기도 하면서 NGO 조직도 커 나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은퇴 이후에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픈 이들을 위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은퇴세대들이 오갈 데가 없잖아요. 사회적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할 일이 너무나 많아요. 사회복지도 정부가 다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잖아요. 민간 부문에서 해결하도록 해야죠. 사회복지, 자원봉사 등 ‘나눔’에선 사회적 직업의 영역이 많아요. 후배들한테도 3D 업종에 있지 말고, 여기가 ‘블루오션’이니 빨리 오라고 합니다.”

대담=박란희 편집장

정리=김경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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