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더나은미래 창간 2주년 특집] ‘더 나은 미래’ 그 후… “아이들은 아직도 꿈꾸고 있다”

“도움받고 나니… 그분들처럼 베푸는 삶 살겠다는 소망 생겼어요”

◇발달장애 딛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한 김동균군

“자, 들어가라.”

“안 틀려” “다 외웠어”라는 혼잣말을 몇 번이고 되뇌던 김동균(21·발달장애2급)군이 한국예술종합학교 4층 관악합주실로 들어선다. 합주실을 가득 채운 120명 학우들의 눈과 귀가 마지막 7번째 발표자인 김군에게로 집중된다. 자리를 정돈한 김군과 윤효린(35) 반주선생님이 살짝 시선을 맞추는가 싶더니, 이내 ‘카르멘(Carmen)’의 선율이 합주실을 가득 메운다. 서정적으로 진행되던 플루트 연주가 빨라지자, 김군은 몸을 움직이며 감정을 표현한다. 때로 연미복 자락이 펄럭인다. “와. 잘한다”라는 소곤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5분여의 연주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지난 4월 27일 김군의 첫 발표수업(목관악기 워크숍)은 그렇게 끝이 났다. 살짝 상기된 얼굴로 강의실을 나서던 김군은 “우와, 잘했어!”라는 기자의 말에 “잘했어. 잘했어”라고 되풀이한다. 작년 말 발달장애를 딛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사연(본지 2011년 11월 8일자)으로 많은 독자들을 감동시켰던 김동균군의 꿈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수업과 오케스트라(하트하트 오케스트라) 활동을 병행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하루 4시간 이상의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 어머니 성은희(47)씨는 “학교 친구들이 동균이한테 말도 많이 걸어주고, 밥도 같이 먹으려고 하는 등 굉장히 호의적인데, 동균이 장애 특성상 동균이가 좀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금껏 힘든 부분들을 이겨내고 성장해온 만큼 대학생활에도 변화가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오광호 교수는 “동균이를 처음 뽑았을 때 사실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며 “꿋꿋이 견디고 잘 따라와 줘서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오고 싶다는 꿈. 이제는 그 꿈을 이룬 김군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리 높여 외친다. “풀루티스트(Flautist, 플루트 주자)요~” “플루티스트는 짱이에요!!”

미상_사진_더나은미래_김동균군혜린양은진양이보희양_2012◇어머니의 방임으로 중학교 때 가출한 혜린이

“많은 사람들이 제 사연을 보고 후원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오셨어요. 저를 모르는 분들도 돕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의 방임을 견디다 못해 중학교 때 스스로 집을 뛰쳐나온 사연(본지 2010년 12월 14일자)이 소개된 혜린이(가명ㆍ21)는 그 사이 여대생이 되어 있었다. 혜린이는 지면에 소개된 것이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회복지사가 되어 전 세계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던 꿈을 가진 혜린이는 그 바람대로 전주 예수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4월 27일 오전, 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혜린이는 생기 발랄한, 여느 여대생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조별 과제에 필요한 참고서적을 찾기 위해 학교에 들렀다는 혜린이는 “평일 학교수업을 마치면 대부분의 시간은 과제를 하는 데 써요”라고 했다. 혜린이를 돌보고 있는 굿네이버스 한송이 간사는 “새벽까지 혼자 과제 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본다”고 귀띔한다. 혜린이는 입학 때부터 줄곧 성적 장학금은 받고 있다. 이번 여름 방학 때는 캄보디아와 베트남 봉사활동에 나서 꿈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당장 그룹홈을 나와야 했던 혜린이는 다행히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룹홈에서 지낼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가장 변한 것은 무엇일까. 굿네이버스 한송이 간사는 “이제는 보호를 받는 아이라기보단 이곳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살피고, 그들의 본보기가 될 정도로 성장했다”고 전했다. 유년기에 가장 큰 상처였던 엄마와의 관계는 어떨까. “예전에는 엄마가 많이 밉고, 원망스러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전 열심히 살고 있으니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혜린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미상_그래픽_더나은미래_별_2012◇가야금 인간문화재 꿈꾸던 은진이, 그 후

한복을 빌려 입으며 가야금 병창 인간문화재를 꿈꾸던 아이. 은진(가명ㆍ17·광주예고 2년)의 사연(본지 2010년 12월 28일자)이 처음 소개됐을 때, 독자들은 은진이의 열정과 대견함에 응원을 쏟아냈다. 그 후 2년, 인간문화재를 향한 은진이의 발걸음이 다다른 곳은 어디쯤일까.

2011년 수석 입학한 광주예고에 다니는 은진이는 “요즘 정신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중간고사 기간인 데다, 일 년에 2번 있던 실기시험이 4번으로 늘며, 시험과 실기 준비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은진이는 “실기 연습은 이웃들한테 방해가 되기 때문에 학교에 있을 때 최대한 집중해서 연습해야 되요”라고 했다. 방학 때부터는 한국무용도 새로 배울 계획이다. 민요를 부를 때는 일어서서 무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은진이는 “공부에 재미 붙인 것”을 1순위로 꼽는다.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혼자 공부를 해요. 공부를 제대로 해보니까 재미있고, 성취감도 있어요.”

지난해 8월엔 광주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문화축전에 우리나라를 대표해 참가, 아리랑을 연주하기도 했다. 은진이는 “평소 꿈꿔왔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을 이뤄내고, 국립국악원에도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저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 힘들게 음악 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어요. 멘토가 되어 줄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제가 더 커져야죠.”

◇SK해피쿠킹스쿨 졸업한 이보희양, 지금은 크레페 요리사

지난 2010년, ‘SK해피쿠킹스쿨’ 졸업생으로 소개(본지 2010년 12월 28일자)됐던 이보희(21)양은 현재 롯데백화점(잠실점) 지하 1층에 위치한 크레페전문점 ‘마리옹크레페’에서 일하고 있다. ‘SK해피쿠킹스쿨’은 열정은 있으나 가정형편 등의 이유로 교육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응원하는 청소년 자립 지원책으로, 이양은 3기 졸업생이다.

이양은 “처음에 파스타 전문점에 취직해, 샐러드부터 피자, 파스타까지 주방의 여러 파트를 경험했다”고 전했다. 좋아하는 요리를 실컷 할 수 있었지만, 후유증도 있었다. 파스타 가게의 팬(Pan)이 너무 무거워 손목 건초염에 걸린 것이다. “하나씩 들어도 무거운 기구를 바쁠 때면 두 개씩 들고 일하다 보니 무리가 갔던 것”이라고 전했다.

3개월여의 손목 치료를 마친 이양은 올 2월 ‘마리옹크레페’ 오픈 멤버로 합류했다. 이양은 “국내 디저트 문화가 다른 나라, 특히 일본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며 “디저트 분야를 배워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양의 꿈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요리학교를 세우는 것.

“예전에는 주방에만 있어서 손님 대하는 법을 알 수가 없었는데, 여기선 서비스도 같이 해야 해요. 어렵지만 훌륭한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경험이죠. 지금은 큰 꿈에 다가가기 위해 작은 꿈들을 이뤄나가고 있는 단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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