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희망 허브] 저소득층 의료비 現 지원 실태

긴급의료비 기준 강화
희귀 난치성질환자… 늘어나는 건 한숨뿐

2012년 개정된 보건복지부의 긴급의료지원사업은 저소득층의 의료 사각지대를 확대시킬 우려를 낳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2012년 개정된 보건복지부의 긴급의료지원사업은 저소득층의 의료 사각지대를 확대시킬 우려를 낳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지난 4월 10일, 서울시내의 한 대형병원에서 퇴원절차를 밟는 독거노인 김문형(가명·74세)씨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일주일 전, 복부대동맥류로 응급수술을 받았다. 복부대동맥류는 인체 내 가장 큰 대동맥인 복부대동맥의 혈관벽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질병이다. 병원비는 총 300만원. 매달 40만원가량 받는 기초생활수급비로는 충당이 불가능했다. 김씨는 “지난해 같은 병으로 응급수술을 받았던 노인정 친구는 정부로부터 수술비와 입원비 등 300만원을 지원받았는데, 올해 갑자기 지원이 끊겼다”고 울먹였다. 문의를 해봤지만 병원 측은 김씨에게 “의료보험 혜택이 되는 본인부담금을 제외한 나머지 210만원을 결제해야 한다”고 답변해왔다. “형편이 어려운 건 똑같은데, 불과 몇 개월 차이로 지원을 못 받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항의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어렵사리 빌린 돈으로 퇴원을 마친 김씨는 지금도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무슨 일일까.

◇보건복지부, 긴급의료비 지원 기준 대폭 강화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초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해진 저소득층에게 일시적으로 생계비나 교육비, 의료비를 지원하는 긴급복지지원 대상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지침으로 인해 ‘만성 희귀 난치성질환을 앓는 저소득층’이 대거 피해를 당하고 있다. 지원대상이 확대된 반면, 의료비 지원기준은 한층 강화됐기 때문이다. 새 기준에 따르면 ▲같은 질병으로는 긴급의료비를 딱 한번만 지원받을 수 있고 ▲의료비 감당이 곤란한 만성질환자에게 예외적으로 긴급의료비를 지원하던 조항을 생명에 지장을 초래하는 시급성이 인정되는 경우로 기준을 축소했으며 ▲의료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비급여 항목(상급 병실료, 비급여 선택진료료)에 대한 지원은 제외됐다.

문제는 희귀 난치성질환의 경우 대부분 만성질환이라는 점이다. 이선애(가명·44세)씨는 지난 1년간 두 차례의 고비를 겪었다. 작년 7월, 희귀 난치성질환인 확장성심근병증을 앓고 있던 아들 수호(가명·13)군이 수술을 받은 데 이어, 올 4월 그녀 역시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척추기형 희귀 질환인 치상돌기분리증이었다. 다행히 모자(母子) 모두 수술 경과는 좋았지만, 이씨는 하루에 100만원씩 쌓이는 병원비 걱정에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이라 전세금을 빼고도 6000만원이 부족했다. 긴급의료비를 지원받고 싶었지만 “희귀 난치성질환은 만성질환에 속하기 때문에 ‘생명에 지장을 초래하는 시급성’이 없다”며 거부당했다. 이 모자(母子)의 경우, 보건소에서 지원하는 ‘134종의 희귀 난치성질환자’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대다수의 희귀 난치성질환자들이 134종에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긴급의료지원사업 개정 후 희귀 난치성질환자들이 사각지대로 몰렸다”고 지적했다.

◇희귀 난치성질환 등 만성질환자, 사각으로 몰려

이뿐 아니다. 희귀 난치성질환과 같은 중대 질병이나 위험한 수술의 경우, 대부분 대형병원에서 비급여 선택진료로 이뤄진다. 서울의 한 병원 사회복지사는 “법 개정 이후 희귀 난치성질환자들이 긴급의료비를 지원받을 길이 막혀버렸다”며 “저소득층의 경우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 도움을 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병원이 갑자기 지원을 줄였다”며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관계자는 “희귀 난치성질환자가 몰리는 대형병원 스무 군데 중 절반 이상이 전화를 해 재단의 도움을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아동의 경우는 그나마 낫다. NGO나 각 민간재단에서 어린이 환자를 위한 모금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인’ 희귀 난치성질환자다. 한 병원의 사회복지사는 “각 지자체에서 담당하는 다른 특수사업들도 복지부 지침을 따라가고 있어, 저소득 가정의 의료비 지원 방법을 고민하던 지자체들도 무조건 긴급의료비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개정안 때문에 실무자도 환자도 운다

복지부 민생안정과 관계자는 이번 개정에 대해 “지난해까지 저소득층의 생계, 주거 지원에 비해 의료비 지원이 과다하게 많이 지원돼 왔다”며 “한정된 예산 안에서 생계나 주거 등 다른 긴급한 지원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복지부가 긴급지원사업으로 지출한 455억4200만원 중 저소득층의 긴급의료비로 지원된 부분은 무려 93%(424억1800만원)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이 수치야말로 저소득층의 의료비 지원이 가장 절실함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의료정책 전문가들은 “생계와 주거, 교육적 혜택도 중요하지만, 저소득 가정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건 바로 의료비 지원”이라며 “민간과 협력해 저소득층의 의료 사각을 메우는 보완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월세·식비 등의 생활비 지출과 달리 의료비는 미리 예상하는 것도, 절약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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